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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키 Jan 12. 2023

숨 고르며 준비 작업 마무리에 들어간다.

제대로 진짜로 일하기 위해

내 짐을 실은 컨테이너가 12월 30일 부산항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11월 1일에 더블린 항을 떠났다 했으니 거의 꼭 두 달만이었다. 해를 넘기지 않고 찾아와 준 컨테이너가 반갑고 고마웠다. 새해 이틀째 날부터 서류 준비에 몰두하고 사흘째 되던 날에는 아침 일찍 ktx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 통관절차를 밟았다. 다음 날 괴산집으로 탑차가 도착할 수 있도록 관세사님과 손발 맞춰 일하고 저녁 늦게 ktx를 다시 타고 오송역에 내려 주차해 둔 내 착한 차를 타고 정이 다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새해 나흘 째  이른 아침에는, 부산에서 괴산까지 밤새도록 달려온 탑차를 마을 어귀에 일단 세워놓도록 했다. 그리고는 집수리해 주시던 동네 아저씨 두 분과 함께 그분들의 트럭으로 박스들을 옮겨 싣고 우리 집으로 나르는 대작업을 한 시간 반 만에 끝냈다.


컨테이너 입항에서 우리 집으로 짐이 안착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이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제까지 치렀던 서너 번의 통관절차 중 이토록 신속하고 쉽게 이루어졌던 적이 없었어서, 바짝 긴장했었던 내가 오히려 허탈했을 정도였다.


집안 곳곳, 아니 마당까지 점령한 엄청난 양의 박스들을 그대로 둔 채, 그날 저녁때는 감사턱으로 아저씨 친구들까지 불러, 차 타고 7분 거리의 사리면으로 나가 치맥판을 벌였다.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기꺼이 달려 나와 함께 짐을 옮겨준 게 정말 고마워서였는데... 마냥 즐겁고 기분 좋일상적 술판이 되었다.  맥주는 달고 치킨은 맛있고 그들의 식견으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는 건 흥미로웠고... 늦은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판이 끝났다. 


알딸딸하게 좋은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와 집 안팎 여기저기 구석구석 가득 쌓여있는 박스들을 보는 게 꿈같기만 했다. 드디어, 지난 4년간 정신없이 사들였던 앤틱들이 내 곁에 와있는 거다. 이제부터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얘네들과 함께, 오랫동안 내가 꿈꾸었던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거다. 오매불망 바라던 일이었지만, 진짜로 이루어지다니... 신기하고 좋아서 거듭거듭 감사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잠자리에 드는 몸과 마음이 더없이 가볍고 산뜻했다. 


그다음 날(1월 5일)부터 어제(11일)까지 이웃집 아줌마 두 분과 함께 꼬박 일주일을 무지하게 빡세게 일해서 언박싱을 끝냈다. 없는 돈에 인건비로 나간 액수가 엄청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 혼자서 할라치면 두 달이 걸려도 다 못했을 거고 나는 거의 반 죽음이 될 수도 있었을 테니까. 통관비와 출장경비, 인건비등 그 무지막지한 액수의 돈이 내 통장에 들어왔었다는 게 기적이었다. 그건 사랑하는 사람들의 응원이었다. 아니 늘 돌보시는 주님의 은혜였다.


언박싱의 설렘이 중노동을 견디게 해 주었다. 200개가 넘는 박스 속에는  귀한 앤틱 그릇들과 그림들이 들어 있었다,  나를 만나러 그 속에서 두 달 이상을  잘 버틴 온갖 종류의 앤틱 혹은 빈티지 소품들이 반갑게 괴산 공간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94년 벨기에로 이주한 이후부터 야금야금 모은 것들과 지난 2019년부터 시작한 앤틱 셀러로서 구매한 것들이었다.


아일랜드 디너리(deanery:대성당 주임사제의 사택)와 우리 개인 집 곳곳에 널려있었던 그릇들은 지난 3월에 내가 가서 꼼꼼히 포장해 정리해 두었었고 미쳐 손도 못 댔던 그림과 가구들은 그 이후 폴이 짬짬이 포장했었다. 할 일이 태산처럼 늘 쌓여있는 폴이 기어코 틈을 만들어내 아들내미와 함께 컨테이너에 싣고는 승리에 찬 목소리로 내게 전화해 주었던 게 어제 같았는데...  


내일부터는 엄청 나온 포장 뽁뽁이들을 모아서 저장하는 일과 빈 박스 풀어서 정리하는 일을 시작하려 한다. 그 일이 끝나면 액자커버들 벗겨내는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거 같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정리하기에 들어가는 거다. 방방이 쌓아놓기만 한 이 친구들을 어떻게 분류 정리해서 디스플레이할 것인지 나만의 독특한 인테리어 감각과 공간 사용을 위한 현실적 합리적 사고를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방마다 주제 혹은 연대 아니 국가와 브랜드명을 정해줘야 할 거 같다. 대략 정해놓고 이리저리 옮기면서 공간을 구성하다 보면 그들만의 리그가 저절로 형성될 거라고 믿어본다. 복잡하다거나 번잡스럽지 않아야 하는 게 핵심이다. 카운슬링 공간과 앤틱숖 공간을 자연스럽게 구분하면서 서로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묘수를 써야 한다.


흥미로운 도전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거다. 공간 꾸미기와 상담과 앤틱딜링! 주변 사람 모두들 돈도 없이 힘든 일도 혼자 해야 하는 내가 걱정이라지만 그래도 해볼 만한 멋진 일 아닌가? 이제까지 이루어진 것도 사실 기적 같은 일이었는데 또 다른 기적들이 자꾸자꾸 일어날 거라는 걸 못 믿을 것도 없지 않은가?!


착한 가격의 클래식한 유럽앤틱으로 일상용품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도록 이 공간을 꾸미는 거다. 그럴듯한 가게 모습이 잡힐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해볼 만한 일이다. 상담과 트레이닝에 집중하는 동안 백그라운드에서 분위기 잡아주는 앤틱들은 천천히 임자들을 만나서 떠나갈 거고 난 그걸 기꺼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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