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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나 Dec 03. 2018

그 쪽은 어디에서 왔어요?

- 깔라만시 이야기

요즘에는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어디 사람이냐고 물어온다. 그래서 “어디서 온 것 같아요?” 하고 되물으면 또 한 번 고개를 갸웃한다. ‘잘 모르겠는데…’ 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붙어 지내다보니 온갖 사투리가 입에 묻어버렸고, 게다가 제주도 농촌 토박이 어르신들이랑 어울려 지내다보니 제주도 사투리까지 입에 붙어버린 탓이다. 어떤 때는 순천 사투리가 튀어나와 “이거 했다 아니에요?” 하질 않나 “니 이거 했나” 하고 대구 사투리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제주도 사투리가 입에 배어 “밥은 먹언” 하며 말끄트머리마저 다 댕강 났으니 사람들이 듣기엔 영 이상할 만도 하다. 게다가 정작 진짜 대구에서 온 친구들은 내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 그건 경상도 사투리가 아니라고 딱 잘라 선을 그으니 내 말투는 출처가 흐려지고 만다.  

그러다 문득 이 낯설고 불분명한 말투가 지금의 나에게는 썩 잘 어울리고, 어쩌면 지금의 나를 닮은 것 같아 좋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살고 싶었던 인생은 꼭 이런 모양이었을 거라고 말이다. 지금의 나는, 그동안 내가 상상하고 꿈꿔왔던 나의 모습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있으니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인생은 내가 살고 싶었던 인생임에 틀림없고, 나는 내 인생이 꽤나 마음에 든다.’ 그동안 이렇게 말을 하는 게, 내 마음에 확신을 가지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요즘에는 깔라만시가 좋다고 다들 난리다.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깔라만시가 들어간 상품들을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은데, 인터넷에 ‘깔라만시’를 검색해보니, ‘신이 주신 선물’, ‘자연의 품격’이라고 한다. 그런 “깔라만시가 어디에 좋은 건데?” 하고 물으면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냐. 다들 좋다고 난리다.”고 한다. 그래서 “뭐가 좋은데?”하고 다시 물으면 “피로회복에도 좋고, 피부에도 좋은데 확실한 것은 몸에 좋다는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이럴 때 ‘대체 왜 좋다는 건지 모르겠는데?’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기가 어려웠다. 분명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수많은 전문가들의 인증을 거쳤을 테고, 주변 사람들도 다 좋다고 생각하는 데다 또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도 깔라만시가 몸에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확신이 없었으니까. 막상 나도 일 년 이상 꾸준히 먹어봤더니 정말로 좋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나는 깔라만시가 좋은지 안 좋은지 알 수 없으나 다들 좋다고 하니까 어쩐지 좋은 것 같다는 함정에 빠지고 만다.

아닌 것 같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도처에 깔려 있는 깔라만시 음료를 한두 번씩 남들을 따라 마시게 되고, 마시고보니 어쩐지 내 몸 어딘가에는 분명 좋은 것 같다는 모호한 생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깔라만시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맛도 별로 안 끌리고, 정확히 나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계속해서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라는 이유로 나에게는 좋은지 좋지 않은지 스스로 확신도 판단도 할 수 없는 깔라만시를 무턱대고 계속 먹으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깔라만시를 먹는 사람들은 다 바보야.’하고 말하려는 것도 아닌데 정말로 좋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할 것이다. 살다보면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들도 많으니까.

다만 나에게는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것에 ‘그게 정말 좋은 게 맞아?’하고 한 번 더 생각하는 버릇이 있고, 기어이 내가 다 해보고 그게 좋은지 안 좋은지를 말하는 성격이 있는 것 같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내 뜻대로 살겠다고 마음먹고는 평생 동안 벗어난 적 없던 서울을 등지고 제주도 농촌 마을로 들어온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게다가 남들이 다 좋다고 생각하는 회사를 두고 덜컥 이곳 농촌에 내려와 지내는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나에게 이곳에서 지내는 것에 확신이 있느냐고 물으면 그것도 확신할 수 없는데, ‘나도 살아보니 막상 농촌보다 도시가 더 좋더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왔는데, 이제 내려온 지 1년밖에 안 되어 농촌이 딱 내게 맞는 옷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다만 나는 아직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니까 다양한 것들을 경험해보고 싶고, 내가 스스로 나에게는 어떻게 사는 게 맞더라, 이렇게 뒤엉켜 살다보니 결국 이곳저곳이 다 섞인 말투가 내 말투더라, 하는 것들을 내 나름으로 정해나가고 싶을 따름인 것이다. 지금은 길을 잃은 것처럼 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놈인지가 보이지 않는 데다, 남들과 비슷하게 갖추지 않은 모양새가 이래저래 엉성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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