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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나 Mar 10. 2019

농촌은 이래서

ㅡ 청수리 이장님 감자밭 농사


지난 주말, 청수리 이장님께 SOS 전화가 왔다. 감자밭 수확이 급한데 일손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설이 지나고 일이 뜸했던 차였기에 흔쾌히 사람을 모아 출발했다. 지난 토요일, 나는 다섯 명의 친구들과 함께 감자밭에 다녀왔다.



이장님이 트랙터를 몰아 밭을 갈고 지나가면 감자들이 밭 위로 떠오른다.


그럼 우리는 쪼그리고 앉아 트랙터를 따라 가며 감자를 줍는다.


"트랙터를 몰고 갈 테니까, 감자를 주우면 돼"

하고 이장님이 말하신다. 트랙터는 벌써 저만큼 가버렸다.


우리는 어리둥절해 있다가 일단 감자를 이렇게 엉성하게 길을 따라 모아두었다.

"흠집이 나거나 상한 감자는 어떻게 해?" 하고 한 친구가 묻자 다른 친구가 대답한다.

"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집어 던져버려."


귤은 상품성이 없는 파지를 종종 그렇게 처리하곤 한다.


그렇게 800평 남짓한 밭을 한 바퀴 다 돌아갈 때쯤 이장님이 오셔서 작업한 걸 보더니 잔뜩 뿔이 나셔서 한 마디 하신다.


'감자를 저쪽 끝에다 모아두어야지, 이렇게 밭 한 가운데에다 엉성하게 모아두면 트랙터가 지나가면서 밭 위로 올라온 감자를 다 부순다'는 것이었다. 상하거나 흠집이 난 것들도 다 전분 공장에 보낼 수 있으니 잘 모아두라고 한다.


이런 일이 제법 익숙해 우리는 그저 '죄송합니다'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하고 허리를 연신 수그리면서 열심히 주워둔 감자를 한 번 더 주워 모아 밭 끝에다 쌓아둔다.


어른들은 밭일에 능숙한 할머니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훨씬 능률이 좋다. 몇십년 씩 감자밭 일을 해왔던 할머니들은 따로 어떤 이야기를 전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이다. 장갑도 미리 알아서 챙겨오고 개인 도구도 구비되어 있다. 반면에 우리는 일을 시키려고 하면 제대로 준비된 것도 없는 데다 하나하나 다 일러주어야 하며, 기껏 일러주어도 분명 말할 때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제주 말을 태반은 못 알아들어 다시 가보면 엉뚱한 행동을 하고 있거나 멀뚱히 서있곤 한다.


어른들의 입장을 이제는 꽤나 이해해버린 우리는 그러려니 하고 작업 속도가 이미 많이 뒤쳐진 것을 알고 손을 더 빠르게 놀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속에서 또 한 번 답답함이 차오르기도 한다. 매번 밭일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꼭 심술을 부리는 것처럼 일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다. 그나마 한 번 보여주고는 '이렇게 하면 돼' 하면 양반이고, '저기서 하면 돼'도 다행이다. '일 하러 왔으면서 가만히 서서 뭐하느냐'는 말이나 '얼씨구' 같은 말을 들으면서 일을 시작할 때도 태반이다.

어른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누군가에게 일을 알려주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며, 어떻게 알려주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인은 밭일을 배운 것이 너무 오래되어 버렸고, 익숙해졌으며 그동안 누군가에게 밭일을 일러 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모자란 사람이라도 주변 모두가 할 줄 아는 단순한 밭일을 매번 우리에게 맡기기만 하면 이놈들은 엉뚱한 짓을 하며 헤매고 있으니 이해가 잘 가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농사를 지을 줄 아는 사람들끼리만 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친구들이 감자 줍는 중이에요


주변 어른들이 하나 둘씩 밭을 줄여나가고 있다. 농사를 지을 여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농산물 유통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탓에 밭떼기로 싸게 넘겨버린 농산물 값은 계속 떨어지고 나이가 들어 망가지기 시작한 몸은 예전처럼 마음대로 움직이지가 않는다. 방법은 불법으로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최대한 저렴한 값에 인력을 활용하는 것이나 아니면 조금 고생이더라도 몸을 더 부지런히 놀리는 것. 매일 근육통과 관절염에 시달리면서도 악착같이 밭을 지켜내는 모습은 내게 조금은 낯선 모습이다. 아직은 그저 평생을 일궈온 밭을 미련없이 내치기에도 어려울 것이다, 라고 아득한 마음으로 지켜볼 뿐이다.


그러니까,

대안이 필요한 것 같다.


감자밭 위로 떠오른 감자를 줍고, 다시 주우면서 계속해서 생각했다.

설을 쇠느라 시기를 놓친 감자들은 퍼렇게 멍이 들었고, 너무 커져서 상품성이 떨어져 버렸다.

이렇게 상품성이 떨어진 감자들은 헐값에 전분공장으로 보내진다.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해 오후 5시에 마감하는 일이었고, 우리가 받기로 한 일당은 5만 5천 원이었다.


"이렇게 농사 지어서 남는 게 있을까?"

옆에서 함께 작업하던 지영언니가 묻는다.

"얼씨구, 일당 5만 원 받으면서 별 걱정을 다한다. 노예가 밭 주인 걱정하는 소리해."


우리가 농담처럼 주고받는 말들 속에도 담긴 모순이 너무 많아서 이 문제를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 지 짐작조차 가질 않는다. 결국 이 많은 감자들이 다 파지가 되어 전분공장으로 간다.

이날 작업한 800평짜리 밭 2개에서 상품성이 있는 감자는 고작 총 10kg짜리 12박스가 나왔다.


초록 망에 옮겨 담은 파지들


일손이 부족한 탓에 감자밭을 계속해서 관리해주지 못한 탓이라고 했다.

멀쩡한 감자가 너무 아까웠는데, 상품성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멀쩡한 것도 많아 먹기에는 무리가 없는 것들도 많았다.

"같은 값이면 더 좋은 상품을 사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욕심 때문에 이렇게 됐어." 하고 지영언니가 말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파지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져서 저렴한 값에 파지를 찾는 소비자들도 많아졌다. 쿠팡이나 티몬 같은 사이트에도 이제는 파지들이 종종 눈에 띈다. 문제는 농민들이 파지를 넘기는 값은 전분 공장이나 쿠팡이나 비슷비슷하며, 그 파지를 판매하는 것이 농민들에게는 예전과 다름없이 큰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파지를 선별해 판매한다 해도 대기업이 파지를 유통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거야.

우리는 그냥 좋은 일을 하는 작은 판매자 정도로라도 살아남으면 다행이겠지."

나도 대기업에서 일을 해보았지만, 대기업의 시스템은 탐이 날 정도로 너무나 효율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력이 낭비되는 시간도, 갈등도 최소화할 수 이루어져 되어 있다. 반면에 이 농촌의 시스템은 비효율적이며 많은 노동력을 소모한다. 갈등도 잦다.


설상가상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장님 눈 와요!"

내가 말하자 이장님이 답한다.

"너네 어린 애들은 눈을 좋아하잖아"


실성한 사람처럼 실소가 터지고 말았다. 내 웃음에 다들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여기저기서 까르르 웃음꽃이 피었다. 웃고 보니 또 재밌는 일 같기도 하다. 결국 내리는 눈을 맞으면서 일을 하는데 이장님이 다가와 물으신다.

"힘드냐?"

"아니요오"

힘든 기색을 내는 건지 감추려는 건지 애매하게 말끝을 흐린다. 나는 사실 아직 밭일이 힘들다.

"이거 가지고 뭘 힘들다고. 너네도 참..."

이장님이 물끄러미 나를 지켜보시더니 이제 작업을 멈추라고 하신다. 일당은 그대로 주신다고 한다.

멋쩍어져서 뒷머리를 긁는다. 생각해보니 더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대신 내일은 애들 더 많이 데리고 와."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 동안 밭 세 개를 돌며 감자를 파내고, 또 새로 감자를 심고 비닐을 덮었다.


알고보니 감자밭은 원래 그냥 두려고 했던 땅이었다고 한다.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밭이라 굳이 안 건드릴 예정이었다고. 그 땅에서 이장님은 굳이 상품성이 없는 감자를 건져내고, 또 다시 감자를 심는다. 며칠 일을 나가면서 속으로 어림 짐작으로 각종 장비와 인건비만 계산해봐도 분명 이건 본전치기도 안 된다. 수확한 감자는 전부 파지고, 날이 흐리거나 이장님 컨디션에 따라 일은 금방 끝이 나고 만다. 매일 식당에 가서 아침 점심 밥을 챙겨주시고 오후에는 꼭 참도 챙겨주신다.

농사 지어보려고 와 있는 애들이 어렵게 지낸다는 소문을 어디서 전해들으신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이장님은 우리에게 일을 주려고 일부러 이 밭을 움직이고 있었다. 일이 서툰 우리에게 일을 가르쳐 주려고 한 것이다.


이장님이 점심을 챙겨먹다 넌지시 그래, 요즘에는 먹고 살 만 하느냐고 물으신다.


농촌에는 시스템이 없는 게 아니라, 도시와는 다른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정이 담긴 마음 같은 것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시스템이 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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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감자 농사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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