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의 아침식사는 특별하다.
2010년 1월 내 생애 가장 춥게 기억되는 영국 겨울
30대 후반인 나에게 있어 가장 춥고 배고팠던 때를 떠올려보면 결혼 후 신랑과 함께 영국 땅을 다시 밟았던 겨울일 것이다. 부동산을 통해 렌트하기로 구두 계약한 집이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요즘 말로 멘붕~~ 생각만 해도 아찔~~ 설마 설마 하고는 왔지만 실제로 “집이 없다”라는 현실에 눈앞이 캄캄~ 아무도 모르는 낯선 영국 겨울... 우리는 어찌 해야 할꼬.. 당장 의지할 곳이란 일주일 동안 머물렀던 B&B..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집 계약 전까지 B&B(Bed and Breakfast)에 더 머물기로 했다. 다행히도 우리의 예상과 바람처럼 주인 아주머니는 너무나 친절하고 좋으셨다. 영국에 도착한 첫 날, 집 계약이 파기되어 오갈데 없는 심신은 깨끗하고 따뜻한 B&B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아주머니는 영국의 대표 아침 식사인 “English Breakfast”를 준비해 주셨다. 원래 집 떠나면 배고프지 않나? 우리는 거한 아침식사(fully English Breakfast; 계란 프라이, 베이컨, 소시지, 콩, 버섯, 토마토)와 과일, 시리얼, 요거트, 토스트와 쨈, 마멀레이드, 버터, 우유, 주스 커피와 차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먹어치웠다. 하지만 그 곳에 머무는 기간 내내 아침마다 똑같은 아침식사가 제공되다 보니 난 바로 질려 포기....
“전 오늘 아침 안 먹을래요.”
영국 아줌마는 바로 “그래. 잘 생각했다. 그렇게 매일 먹으면 너 뚱뚱해져”
속으로 ‘쟤네들 엄청 먹는다’ 그러신 것 같다.
참고로 신랑은 일주일 머무는 동안 단 하루도 안 빼먹고
아침 식사를 모두 다 챙겨 먹었다지요.
생애에 가장 춥고 배고팠던 2010년 영국 겨울, 아침마다 우리는 B&B 주인 아주머니가 제공해 주신 풍성한 아침식사를 먹고 하루 종일 집을 보러 돌아다녀도 속이 든든해 추위도 덜 느끼고, 힘이 났다. 운이 좋게도 좋은 주인을 만나 새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우리 집의 아침 식단은 한 달 내내 English breakfast였다는 사실~~
물론 신랑의 일리 있는 주장과 설득 끝에, 자신이 직접 아침을 맡는다는 조건으로 나는 그 식단을 따르기로 했다. 우리 신랑이 이 식단을 아침으로 먹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추위를 이길 만큼 속이 든든해, 점심을 가볍게 샌드위치만 먹어도 오후 늦게까지 배가 고프지 않은 것... 게다가 신랑 말에 따르면 메인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를 보면 합리적인 재료의 구성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베이컨과 햄의 산성 물질을 토마토로 산화시키고 버섯, 계란, 콩 등 필수 영양소가 듬뿍 들어갔다는 주장!! 문제는 나에게는 좀 무거운 아침식사라서 그리 좋아하진 않다. 단, 신랑이 준비해주면 맛있게 먹을 수 있죠. ^^
먼저 메인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소시지, 베이컨을 준비한다. (단, 취향에 맞게 smoked 또는 unsmoked로 구입) 제일 먼저 소시지를 프라이팬에 굽는다. 불이 세면 겉이 먼저 타 버리니까 중불로 돌려주면서 약 7~8분 정도... 그리고 난 다음에 계란과 베이컨을 소시지를 옆에서~ 한 10~12분 정도 지나면 소시지, 베이컨, 계란이 적당하게 익었을 것이다. 이때, 버섯과 토마토를 올리브 오일과 후추를 조금 뿌리면서 살짝 익혀준다. 이 때 버섯과 토마토가 너무 익으면 보기에도 안 좋고, 씹는 맛이 없다. 특히 토마토의 영양소도 많이 사라진다고 하니 적당히 구워야 한다.
그동안 나는 콩과 토스트를 준비합니다. 콩은 먹을 만큼 접시나 그릇에 부어 전자레인지에 약 1~2분 (양에 따라 차이가 있음) 정도 돌려주면 된다. 빵은 2분 정도 토스터에 구워주면 되지요. 그리고 빵은 기호에 맞게 버터나 쨈을 발라서 먹는다. 우리는 종종 선데이 마켓에서 구입한 쨈을 먹는데 홈메이드라서 그런지 훨씬 맛있다. 시나몬 양이 물씬 나면서 달짝지근한 건포도가 씹히는 맛이다. 구운 빵에 듬뿍 발라서 먹으니 맛있네요. ^^
영국의 아침식사는 영국뿐만 아니라 영어권 나라에서는 인기 메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솔직히 영국인들의 가정에서는 아침식사를 꼭 이렇게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대부분이 시리얼이나 토스트를 간단하게 먹는 경향이 더 큰 것 같다. 이제는 English Breakfast가 단순한 아침 식사에서 벗어나 국제 음식 메뉴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것~
요즘도 신랑은 영국에서 먹은 English Breakfast의 맛을 잊지 못해, 이태원에 가서 먹고 오기도 하는 English breakfast 마니아다. 꼭 아침에만 먹는 음식이 아닌 특정한 때에 상관없이 애용하는 음식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브런치를 파는 곳들이 생기면서 느긋하게 차와 함께 먹는 브런치 메뉴가 많이 생겼던데... 거기 보면 대부분이 베이컨, 계란 프라이 등으로 English Breakfast 메뉴와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의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이겠지만, English breakfasts는 B&B아침식사는 물론이고 Pub과 같이 영국 음식이 주로 제공되는 레스토랑에 가면 만날 수 있다. 또한 아일랜드에 가면 Irish breakfast, 웨일스에 가면 Welsh breakfast, 스코틀랜드에 가면 Scottish breakfast로 불리고 있으니 이 곳으로 여행하시는 분들은 꼭 지역에 맞게 부르자. 대부분 사용하는 재료는 비슷해 보이나, 그 지역 특산재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또 다른 독특한 맛과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내가 추천하는 곳은 English Breakfast만 주로 만드는 레스토랑이다. 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요리사가 조리하느냐에 따라 그 재료와 스타일 등은 차이가 날 수 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English Breakfast를 좋아한다면, Pub이나 레스토랑을 두루 다니시면서 이 메뉴를 맛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차이가 있겠지만, 약 3~7 파운드 내외로 먹을 수 있으며, 기호에 맞는 재료를 사용해 저희처럼 home-made English breakfast를 직접 만들어 드셔도 좋을 것 같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먹었던 잊을 수 없는 Scottish Breakfast
우리 부부에게 영국인의 아침식사는 참 특별하다. 낯선 영국에서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준 음식이었다. 지금도 우리는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던 2010년의 겨울을 회상하면서 English breakfast를 먹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