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일러가 있는 드라마 'D.P.' 후기
“군대 안 왔으면 탈영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
"그게 의미가 있냐"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꽤나 강렬하게 다가온 대사다.
치매 할머니를 위해 살갗이 찢기며 철조망을 넘어야 했던 허치도는 입대하지 않았다면 담을 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이너한 취미와 유약한 성격 탓에 괴롭힘 당한 조석봉은 군대에 오지 않았다면 상냥한 미술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D.P.들은 군대에 오지 않았다면 '병'으로서 탈영'병'을 체포하러 다니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악인으로 보이는 황장수도 사회에 있었다면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고 꽤나 열심히 살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많은 성인 남성들이 복마전 같은 군대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불가항력이다. 군대라는 딱딱한 틀에 밀어 넣기에는 이들의 성격이, 인간관계가, 삶의 모양이 너무 다양하다. 어딘가 삐죽 튀어나와 그 부분이 난도질당하거나, 자신을 틀에 온전히 맞추지 못해 어떤 부분이 비어있을 수밖에 없다.
군 관계자는 'D.P.'에 대해 “2014년 일선 부대에서 있었던 부조리라고 보기에는 좀 심하다. 전반적인 느낌으로는 2000년대 중반 정도 일을 극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불성설이다. 군 내에서 일어난 사고는 2014년 28사단 ‘윤 일병 사건’이나 22사단 ‘임 병장 사건’ 같은 사례가 있다. 극의 배경이 되는 2014년, 우리는 극적인 일이 현실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봤다.
"1953. 이 수통 6.25 때 쓰던 거라고. 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
'군대라는 조직이 문제다'는 식의 접근이 떨떠름하지만, D.P.를 다 보고 나니 "그래도 우리 잘해보자!" 따위의 꼬꼬마 텔레토비 동산 같은 말은 입에 못 담겠다. 수직적인 체계, 사고가 나면 건전한 피드백보다는 이 잡듯 책임자를 색출해내는 특성은 군대를 더욱 폐쇄적인 조직으로 만든다. 국방부가 D.P.의 흥행을 보고는 '병영문화는 개선되고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던데,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고통이 가려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D.P.의 고발은 적절했다 할 수 있겠다.
다만 "억지로 군대에 온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어떻게 해야 우리가 불행해지지 않을지 고민해보자고, 군대가 좋아졌지만 더 좋아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어렵겠지만 해보자고." 이런 것들을 항상 고민해야 할 것 같다.
후반으로 갈수록 조석봉의 흑화가 지나치게 빨리 진행된 감은 있지만, D.P.는 여러모로 좋은 작품이었던 것 같다. 모든 INFP들을 팬으로 얻게 될 구교환, 쩔어있는 중사를 피부로까지 연기한 김성균, 존재감 뿜뿜 원지안 등 배우들의 발견이 있었다. 프라이머리의 음악에 한 아이가 자라 입대하는 과정을 보여준 오프닝은 정말 가슴이 먹먹했다. 단 한 번도 오프닝을 스킵하지 않았다.
원작을 인상 깊게 본 사람으로서 시즌 2가 나올 때까지 숨을 참을 예정이다. '그 여자' 에피소드의 문영옥은 또 나올지, 폐급 이병 안준호를 사랑으로 보듬어주는 천사 상병 한호열에게는 어떤 배경이 있을지, 여러 가지가 궁금하다. 안준호의 가정사도 그렇게 마무리지을 건 아닌 것 같고, 진급한 안준호도 보고 싶다.©(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