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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지 Apr 26. 2018

진정한 자신을 꿈꾸던 한 마리의 새

영화 <레이디버드>를 보고


10대 후반을 돌이켜 보게 되는 장면들, 거기에 극에 활력을 불어넣은 웃음 유발 코드까지. 많은 폭소를 연발했고 예상치 못한 교훈을 얻어갔다. 시얼샤 로넌은 '레이디버드' 그 자체였다. 이 작품은 감독 그레타 거윅의<프란시스 하> 이전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한다. <프란시스 하> 각본에도 그레타 거윅이 참여했다고 하는데, 여성의 주체의식과 자유의지에 대한 그녀의 관심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레이디버드>를 보며 그레타 거윅의 연출과 글 실력에 감탄했다. 연기도 잘하는 거윅 배우님, 이렇게 연출까지 잘하기 있나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성숙했던 10대 크리스틴

그 시절 나 또한 나와는 다른 부류의 친구들 세계가 궁금했고, 결이 맞지 않는 친구를 외면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생각했을 땐 그런 나 자신이 실망스러웠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그런 행동과 상황 모두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봄 직한 일이었음에 놀라움과 안도가 몰려왔다. 한창 예민한 시기인 10대 후반. 그 시절 크리스틴의 그 마음들 모두 이해된다. 반항기가 절정에 달하는 그러한 시기에도 용수철처럼 다시 돌아올 수 있던 건, 늘 그녀 곁을 지키는 가족 덕분이었다.



가족, 가족, 그리고 가족

<콜미바이유어네임>에 이어 마인드가 훌륭한 부모님을 영화에서 또 만났다. 어머니와 딸 사이에서만 느껴지는 어떠한 애틋함이 모녀의 대화에서 느껴진다. 어머니는 무심히, 퉁명스럽게 말하지만, 그 속에서 크리스틴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개인적으로 모녀가 함께 쇼핑하는 장면이 가장 흐뭇했다.

어머니가 냉정하고 객관적이었다면, 다정하고 자상했던 크리스틴의 아버지. 우울증을 겪고 있지만 가족 구성원 모두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잘 느껴졌다. 심지어 아들과 같은 면접을 보게 됐지만, 자신은 가망이 없으니 아들을 응원하는 쿨한 면모를 보이기도.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인 크리스틴의 오빠 미구엘은 삶에 의미를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대학에 합격하고 나자,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아버지까지 직장을 찾아 나서는 모습에서 온 가족이 어두운 그늘을 걷어내고 나오려는 시도가 보였다. 크리스틴이 점점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며 아버지와 오빠도 자극을 받은 것이 아닐까. 가까운 사람의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에너지는 나에게도 전달된다는 사실이 와닿는 순간이다.



bird의 쉼터이자 성장의 자양분- 가족, 동료

히스패닉 혼혈인 오빠 미구엘과 크리스틴의 첫 남자친구이자 게이인 대니 등 사회적 소수자인 등장인물들이 인상적이다. 크리스틴의 단짝친구인 줄리가 다소 체격 있는 모습에 자신감이 없던 설정도 외모로 모든 걸 평가하는 행태에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감독의 의도라 생각한다.

수업시간에 자신을 칭찬하던 남자 수학 선생님을 남몰래 좋아하던 줄리.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여학생이라는 설정을 미국 영화에서 보다니, 새삼 신기했다. 거기에 한창 감수성이 풍부한 10대 소녀에게 자상하고 잘 생긴 남자 선생님이라니! 국적 불문하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수학 선생님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내심 속으로 아쉬워하던 줄리의 모습에 공감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줄리와 잘 지내던 크리스틴은 어느 날부터 줄리를 등지고 다른 무리와 어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러한 크리스틴도 결국은 줄리의 순수한 진심과 가치를 알고 돌아왔다. 미구엘, 대니, 줄리 모두 크리스틴의 정신적 성숙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 좋은 가족이자 동료였다.  


레이디버드의 두 번째 남자친구 역할로 나온 티모시 샬라메는 누구와 있건 그만의 분위기가 압도적인 배우다. <콜미바이유어네임>의 엘리오와는 또 다른 매력에 넋을 잃고 보았다. 역시 아카데미 최연소 남우주연상 후보다운 분위기였다. 이번 작품에서는 크리스틴이 대니와 헤어진 후 반한 남자친구로 등장했다. 그는 어딘가 외로워 보이고 퇴폐적인 미에서 반할 수밖에 없는 매력이 느껴지던 소년이자, 자신의 거짓말을 너무나 뻔뻔하게 부정하는 영락없는 10대 철부지 소년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크리스틴이 자신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lady를 향해 나아가는 극의 말미

크리스틴이 자신을 “레이디버드”라 지칭했을 때, 그녀가 생각했던 뜻은 부모와 고향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였을 것이다. 보통의 10대들은 하루빨리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길 꿈꾸니까. 극의 말미, 크리스틴은 새로 알게 된 친구에게 자신을 더 이상 레이디버드라 소개하지 않고 크리스틴이라 말한다. 바로 이 순간이 주인공 크리스틴이 어른에 대해 어렴풋이 깨달은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lady를 꿈꾸던 bird 한 마리" 내가 생각한 제목은 이런 뜻이다. 결국 lady는 타인의 기준이 아닌 본인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당당한 크리스틴을 의미하고, bird는 매일 진정한 자신을 꿈꾸던 미성숙했던 10대 크리스틴이라 볼 수 있다. 그녀는 스무 살이 되던 해 고향을 떠난 타지에서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익숙한 공간과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된 순간, 온통 낯선 것투성이인 곳에서 인간은 한 뼘 더 성장하기 마련이다. 크리스틴의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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