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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지 Sep 26. 2018

힘든 현재를 잊는 방식 -<명당>

브런치 무비패스 02.

마치 2013년도의 영화 <관상>의 주 소재가 얼굴이 아닌 땅으로 바뀐듯한 느낌이었다. 영화 <명당>은 인물 간의 갈등이나 결말이 <관상>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지만, 땅의 자리가 이토록 조선 시대 왕가 귀족에게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점에서 새롭다.




* 해당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에 선정되어 관람한 영화 <명당>에 관한 리뷰입니다.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명당>



진짜 악인은 누구인가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오르는 생각은 진짜 악인은 누구이고, 선한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극의 초반에서 중반 내내, 후에 흥선대원군이 되는 흥선(지성)과 천재 지관 박재상(조승우)은 장동김씨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한 명당자리를 찾아 나선다. 흥선의 아버지 김좌근(백윤식)이 속한 장동김씨 세력은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살생도 쉽게 하는 무자비한 세력이다. 무엇보다 영화 속 조선 시대 왕(헌종)은 그저 허수아비일 뿐이고 모든 권한과 세력은 김좌근에게 있었다.

이쯤 되면 흥선과 박재상은 악인을 제어하기 위한 선인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극의 후반부에 풍수가 정만인이 ‘가야사’가 명당임을 흥선에게 알려주고, 이곳을 향한 흥선의 진짜 야심이 나타난다. 본인의 야심을 위해 박재상을 이용했던 점 또한 함께 드러난다. 박재상은 어떻게 보면 흥선에게 이용당했지만, 본인도 장동김씨의 세력을 무너뜨리길 원했다. 그 마음의 기저에는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잃게 한 복수심이 있었다. 어쩌면 애초부터 악인vs선인의 구도는 존재하지 않고, 본인의 이기심을 위해 명당을 좇는 자들의 이야기일 수 있다. 그동안 드라마를 통해 선한 이미지가 강했던 배우 지성은 이번 영화를 통해 왕위를 향한 야심을 지닌 냉혈한 역할로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고 여겨진다.



그동안 잘 알려진 역사 속 사실- ‘흥선대원군’과 ‘가야사’

영화 속에서 지성이 연기한 흥선은 익히 알려진 흥선대원군-이하응이다. 안동김씨 세력이 활개 치던 철종 시대에, 안동 김씨 가문은 조금이라도 왕의 자질이 보이는 왕족을 제거하거나 혐의를 씌웠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하응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건달처럼 행세하는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도 흥선은 장동김씨 세력 앞에서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상갓집 개’라고 불린다. 어린 시절부터 귀한 왕족 대접을 받으며 자라왔을 것이라 여겨진 흥선대원군이 그런 건달 행세를 했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는다.

영화에서 실제 역사를 반영한 설정은 이뿐만이 아니다.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는 본래 경기도 연천에 있었으나, ‘정만인’이라는 풍수가의 조언을 듣고 충남 예산군 덕산면으로 이전했다는 일화가 존재한다. 남연군의 묘를 이전한 충남 예산군 덕산면의 본래 터에는 가야사가 있었다고 한다. 풍수가 '정만인'은 영화 속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등장한다.


배우 지성이 연기한 '흥선군'



아쉬움이 남았던 ‘초선’과 ‘김병기’

정만인은 흥선에게 가야사 터를 말해주며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자리임을 알린다. 흥선이 그곳으로 향했을 때, 김좌근의 수하였으나 김좌근을 죽인 김병기(김성균)가 나타나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뜻을 보인다. 하지만 다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흥선과 김병기는 가야사를 차지하기 위한 칼부림을 시작한다. 많은 병사가 희생된 후, 돌연 김병기는 가야사 장악을 포기한다. 흥선에게 제안한 것을 얻어내고, 쿨하게 퇴장하는 김병기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쉽게 포기할 것이었다면 애초에 병사들을 이끌고 오지 않았어도 되지 않은가. 무자비하게 살생을 하는 배우 김성균의 연기는 일품이었으나, 앞서 말한 부분과 그 이후 인물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다소 아쉬웠다. 그보다 더욱 다소 아쉬움이 남는 인물이 바로 ‘초선’이다. 초선은 흥선의 곁에서 장동김씨 세력의 몰락을 바라는 또 한 명의 인물이다. 기녀 초선을 연기한 배우 문채원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김병기에게 얻은 정보를 흥선에게 제공하는 역할에 그친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좌) 배우 문채원이 연기한 '초선', (우) 배우 김성균이 연기한 '김병기'




명당자리를 차지하려는 김좌근을 연기한 백윤식의 연기는 짧은 등장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눈앞에서 피가 난무하는 상황에도 무덤덤한 표정을 짓는 모습, 웃으며 왕의 무력함을 말하는 모습에서 연륜과 내공이 느껴졌다. 김좌근이 그토록 찾고 있던 명당 가야사. 풍수가 정만인의 말대로 철종 이후에 고종과 순종이 2대에 걸쳐 조선을 통치했지만, 이 두 왕이 가야사 자리에서 배출되었다고 하는 것은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다.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세습은 이전에도 있던 것이고, 결론적으로 조선이 멸망하게 되었으니 가야사 터는 명당이라 할 수 없다. 그저 그 시절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지관이라는 존재가 명당에 신뢰성을 더해 주었고, 그것에 집착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심적으로 모두가 힘들었던 조선 시대 말기였으니 말이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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