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화 May 02. 2023

뷰티풀 보이

집이라는 곳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흰 거품을 터트리며 다가오는 파도에 비틀리며 바닷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기분 말입니다. 방향을 잃고 그렇게 가라앉는 순간이면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가닥이 잡히지 않습니다.

시야는 흐려지고 몸은 물살에 묶여 점점 무거워지는 그럴 때,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고통의 순간에 우리의 바람은 늘 한 가지였습니다. 지금 이 고통을 벗어나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죠. 고통이 없는 안락한 어딘가로 말입니다.


그런 안락한 곳, 돌아가고 싶은 곳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집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편안하게 몸을 쉴 수 있기에 집이 떠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호텔이나 리조트처럼 몸이 쉴 수 있는 곳은 많습니다. 그러나 삶에서 마주하는 고통의 순간에 떠오르는 곳은 그런 곳이 아닌 다른 사람 눈에는 특별할 것 없을 수 있는 집이라는 곳이죠. 우리에게 집의 의의는 물질이 아닌 정신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힘들 때 돌아가 쉬고 싶은 정신적인 공간으로써의 집이란 무엇일까요? 집이란 마음의 노동의 없는 곳입니다. 마음에 더하고 채울 필요나 의무가 없는 곳이죠. 그리고 그곳은 닉이 간절히 원했으나 도착할 수 없었던 목적지 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닉이 아버지와 해변에서 서핑을 즐기는 장면이 있습니다. 거친 파도 너머로 닉이 사라지자 걱정하며 닉을 애타게 부르던 아버지는 닉이 멋지게 파도를 가르며 돌아오자 기뻐하며 방긋 웃습니다.

파도를 가르며 돌아오는 닉의 모습은 아버지가 닉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앞으로의 삶도 그렇게 파도라는 고난을 가르며 길을 찾는 사람이 되길 바랐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되어 닉이 행복하길 바랐는지, 아니면 그런 모습이 되어 자신을 자랑스럽게 해 주길 바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이던 그 기대는 부담이 되어 몸을 무겁게 만들고, 서핑 보드에서 넘어져 삶이라는 바다의 파도에 뒤엉키게 만들고 말았죠.


아버지가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이런 아버지의 기대는 닉에게 집이라는 공간의 정신적 의의를 희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곳을 집이라고 부르고 그곳에서 잠을 자고 쉬지만, 닉의 정신은 그곳에서 쉴 수 없는 것입니다. 쉴 새 없이 아버지의 기대를 채워야 하고, 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한심한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를 비워야 합니다. 그러나 홀로 채우고 비우는 일은 너무나 버겁고 힘든 일이죠.


닉이 약물에 기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약물을 하면 채우고 비우는 것이 너무나 간단하니까요. 약물을 하면 모든 것이 채워지고 모든 것이 비워져, 더 이상 더할 것도 덜 것도 없는 온전한 마음이 됩니다. 비로소 마음이 누워 쉴 수 있는 닉의 집은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마약을 넣는 주사기 끝의 바늘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작은 집에 기대어 버티는 닉은 위태롭습니다. 재활원과 여러 도시를 전전하는 모습은 기댈 집이 없는 닉의 정신적인 방황을 보여줍니다. 돌아갈 곳이 없기에 계속해서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방황은 혼돈에서 태어난 인간의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불완전하게 태어났기에 필연적으로 짊어져야 하는 고통 말입니다. 인간은 홀로 완전할 수 없습니다. 완전히 채울 수도, 비울 수도 없는 인간은 그렇기에 집이라는 혼돈 속에 잠시라도 쉴 수 있는 곳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집이라는 곳은 스스로 만들 수도 없고,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집을 이룰 수 있는 타인의 존재가 필요하니까요. 그렇기에 우리는 마음이 온전할 수 있는 곳, 집을 함께 만들어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을 때까지 방황하고 또 방황합니다. 닉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방황은 깁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영원하게 느껴지는 고난입니다. 언젠가는 이 고난이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이라면 마음이 함께 있는 누군가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있기에 서로가 서로의 마음이 쉬어 갈 수 있는 집이 되어 줄 수 있는 누군가 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해피투게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