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화 Aug 05. 2023

중경삼림

고독의 영원

숲 속에 영원한 공터는 없습니다. 텅 빈 흙 위에는 언젠가 잡초와 이끼가 무성해지고, 꽃밭이 되기도, 나무가 무성한 깊은 골짜기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공터를 견디지 못합니다.


중경삼림은 사람과 고독을 이야기합니다. 누군가를 가까이할 때 가장 두려운 일은 무엇일까요? 전 채워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누군가로 인해 너무 가득 채워진 마음은 언젠가 비워내야 할 순간을 떠올리게 하고, 그 순간에 선고될 고통을 실감 나게 합니다.


중경삼림은 채워지고 비워지길 반복하는 마음이라는 방을 2개의 파트로 나눠 이야기합니다. 각각의 파트는 모두 마음의 전경을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서 다른 형태의 고독을 다루고 있죠. 


마음의 전경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변화하지 않고 마냥 비워진 마음은 버려진 것과 다를 바 없어, 음습한 어둠이 자리 잡기 쉽습니다. 우리는 본능으로 어둠이 똬리를 트는 것을 알기에, 계속해서 마음을 무언가로 채우고 변화시킵니다. 


1부는 비워진 직후를 나타냅니다. 서서히 비워내고 정리한 것이 아닌, 강도가 든 듯 갑작스럽게 어질러지고 비워진 마음이죠. 혼란스럽고 고독한 마음을 견딜 수 없는 인간은 다시 마음을 채워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마냥 쉽게 채워질 수 있는 것일까요?


일방적인 이별을 선고받은 기억이 있다면 알 것입니다. 갑작스럽게 버려지는 고통 말입니다. 곧바로 누군가를 만난도, 또 헤어진 전 애인과 다시 만나도, 어질러지고 버려진 마음은 금세 치워지지 못합니다. 어질러진 마음을 정리하면 그 틈바구니에 어느새 자리 잡은 고독이 말을 걸어옵니다. 다시 돌아온 마음의 귀향자를 반기는 것이죠.


2부는 어떨까요? 2부는 변화를 다룹니다. 누군가 떠났을 때, 마음은 곧바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방 안에 가득한 떠난 이의 흔적은 하나하나 손으로 담아 치워야 합니다. 그 과정은 쓰라리고, 오랫동안 지속됩니다. 우리가 사는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떠났다면, 남겨진 이는 떠난 이의 흔적을 하나씩 정리하며 싫어도 떠난 이를 떠올려야 합니다. 


2부는 떠난 이의 흔적이 타인의 개입으로 정리되는 과정을 다룹니다. 타인은 은밀하게, 자신의 존재로 떠난 이의 흔적을 대체합니다. 그러나 주인의 의지로 변화하지 않는 집은 무언갈 변화시킬 힘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주인은 떠난 이를 정리하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도움을 받겠지만, 은밀하게 자신을 채워 넣는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죠. 


이는 굉장히 수동적인 형태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자신으로 대체하고 싶지만, 상대가 그걸 정말 원하는지는 알 수 없기에 은밀하게 동의 없이 상대의 마음을 자신의 부분으로 정리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길 바라며 속삭입니다. 그러나 속삭임은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법입니다. 


누군가를 마음에 들이는 일은 행복하면서도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독이 두려워 우리의 마음을 공터로 두지는 못합니다. 계속해서 사랑할 것이고, 다시 어질러지고 비어버릴 마음을 걱정할 것이며, 떠나지 않고 우리를 바라보는 고독의 시선을 애써 외면할 것입니다. 


땀이 나고, 여러 소음에 시끄러운 어딘가, 타인과 타인이 부딪히고 스치는 도시라는 숲 속에서, 사람이라는 나무 하나하나는 그렇게 영원히 고독합니다. 


우리는 고독과 늘 함께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갈 것입니다. 어질러진 마음을 치우고 있노라면 내일이 어느새 발치에 있을 테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졸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