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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욱 Jan 10. 2022

[서평] 스토리텔링 애니멀

읽은 기간 : 2022. 1. 7. ~ 2022. 1. 8.

읽은 방법 : 리디북스 앱 + 아이패드 프로&오닉스 북스 리프


여타 유인원과 달리 현재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야기’였다고 주장하는 책.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많은 과학적 근거와 역사적 사례가 동원되는데, 모든 내용이 흥미로웠고 어느 것 하나 버릴 내용이 없었다. 


그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은 ‘삶에서 일어날 법한 여러 가지 문제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내 삶에 도움이 되는 해결 방법을 미리 연습해보기’이다. 여기에 포함되는 사례로는 [유아기 아동들의 놀이에서 나타나는 각종 ‘말썽’의 상황 / 우리가 좋아하는 소설 등 여러 픽션에 존재하는 ‘문제 해결의 서사’ / 잠든 사이 꿈에서 맞닥뜨리는 각종 ‘문제’ 상황]가 있다. 그 모든 경우에서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문제를 미리 경험하고, 경험함으로써 익숙해지거나 대비하고, 때로는 해결책도 미리 연습’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이 꿈이나 흉내 놀이나 픽션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마치 인간의 손가락이 진화한 목적이 딱 한 가지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야기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로는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집단의 도덕 기준과 금기 기준을 만들어간다’는 점이 제시된다. 두드러지는 사례는 종교이고, 국가의 역사도 근본적으로는 여기에 해당한다. 종교인이 따르는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과 국가나 민족이 공유하는 ‘민족 신화 혹은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생각해보라.


수만 년간 이야기는 언제나 고도의 공동체 활동이었다는 점이 함께 언급된다. 넷플릭스는커녕 영화관도 인쇄물도 없던 시절을 생각해보자. 이야기는 그것을 말해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했고, 이야기꾼 앞에는 청중이 한 명일 때보단 여러 명일 때가 더 많았을 것이다. 인쇄와 영상과 통신의 기술 발전으로 최근 몇백 년 사이에 이야기가 사적 영역으로 들어오긴 했다만, 공동체적 성질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시공간을 초월하는 공동체가 등장했다고도 볼 수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전 세계 20대와 30대 중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이야기에서 완전히 단절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지난해 우리가 목도한 전세계적 오징어 게임 열풍은 무엇인가? 마셜 맥루언이 말한 ‘지구촌’ 개념이 이런 의미이며, 기술은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같은 매체를 접하게 함으로써 전 세계를 아우르는 마을의 주민이 되게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범주에 들어가는 또 다른 한 가지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바로 ‘나 스스로와 내 삶에 대한 기억’이다. 


사실, 인간의 기억은 매우 쉽게 왜곡되고 조작된다. 심지어 없던 사실도 생생한 기억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사실 여부를 잣대로 하자면 기억은 형편 없는 이야기 저장소이다.


그러나 기억의 목적이 애초에 ‘사실’과 무관하다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라면?


내 삶과 나 스스로에 대한 기억도 사실은 ‘이야기’의 한 갈래라는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보자.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서 우리는 계속해서 그 이야기를 수정한다고 한다. 편집 방침은 ‘내 서사시의 영웅은 나’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끊임 없이 사실과 달라진다. 그리고 그 덕에 사람들은 ‘개인 신화’ 속 주인공으로서 건강한 자아를 유지하고 자기 삶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과거의 내가 한 일에 대해선 그게 무엇이든 합당한 근거와 이유가 마련되고, 단점은 축소되고, 의미 없던 사건은 ‘나의 위대한 여정’의 출발점 혹은 중요한 변곡점이 된다. 


지금까지 소개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생물학, 심리학, 뇌과학, 신경 과학의 다양한 연구 및 실험 사례가 무수히 등장한다. 그리고 그 사례와 함께 역사적 사례, 문학 작품, 대중문화 작품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예견한 ‘이야기의 미래’가 무척 흥미로웠다. 요즘 말로 하자면 딱 ‘메타버스’인 것 같다. 이 책의 초판은 미국에서 2012년에 출간됐다. 그러니까 10년 전 책이라는 말이다. 그런 책에서 아래와 같은 서술이 나온다.  


“스토리텔링은 향후 50년간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롤플레잉 게임의 방식을 차용한 쌍방향 픽션은 괴짜나 즐기는 주변부 장르에서 벗어나 주류에 진입할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라프 게이머처럼 상상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캐릭터를 구상하고 직접 연기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무대는 현실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일 것이다.” (라프LARP = 코스프레와 롤플레잉의 결합과 같은 것)


“MMORPG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 요람기일 뿐이므로 앞으로 수십 년 뒤에는 컴퓨터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홀로소설의 수준에 점차 가까워질 것이다” (홀로소설 = 스타트렉 시리즈에 나오는, ‘홀로데크’에 기반한 소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스토리텔링과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새로운 점을 다각도로 고찰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나의 지난 독서와도 접점이 많았다. 집단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이야기는 ‘사피엔스’를 떠올리게 했고, 수집된 정보를 어떻게든 꿰어 맞추어 선후관계나 인과관계를 만들어낸다는 건 ‘인간의 흑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자신과 집단의 과거에 대해 사실과는 다른 기억을 만들어내는 건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생각났다. 꿈에 대한 서술을 읽으면서는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하는가’의 꿈에 대한 설명도 떠올랐다. 게다가 번역도 너무나 맛깔나는 책이었다. 노승영 번역가의 소셜 계정도 팔로우했다. 어느 면으로 생각해도 만족스러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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