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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해 May 11. 2020

DAY + 25 / ST. BENEDICT’S

 어제에 이어 오늘도 종일 비가 내리고 우중충했다. 새벽녘에 잠들었는데 날씨 덕에 늦게까지 잤다. 아직 바선생과의 정신적 이별을 하지 못해서 잠들기가 힘들었다. 싸리비가 계속 내리다가 이따금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 때문인지 잠을 잘 못 자선지 기분이 바닥을 기어 다녔다. 집에 있던 것들로 대강 요기를 하고 시간을 죽였다. 집에 있기도, 바이러스 와중에 밖을 돌아다니기도 싫은 마음이었다. 그저 시간을 버리는 것에 괜한 죄책감이 밀려오며 억지로라도 텐션을 올리고 싶었다. 할 수 있는 액티비티를 찾아보다가 문득 성당에 가기로 했다. 마침 주일이었고 며칠 전 골목 산책을 하며 봤던 근처 성당에 미사가 있었던 게 생각났다.

 확인을 해보니 노트르담 대학의 성 베네딕트 성당은 일요일에 미사가 3번이나 행해졌고, 드물게 저녁에 청년 미사가 있는 성당이었다. (이곳에서 본 여태까지의 성당은 많아야 오전에 두 대의 미사가 있었다.) 외국에서 미사를 하는 건 처음이라 두려웠지만, 미사는 어쨌든 큰 틀 안에서 같으려니 하는 믿음으로 집을 나섰다. 일단 나서야 했다. 환기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지도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가방을 챙겨 길을 나섰다. 불과 며칠 전에도 지났던 길인데 그 사이 신호등 체계가 달라져있었다. 기존에는 수동식 보행 신호등을 운행해서 버튼을 눌러야 보행신호를 받을 수 있는 형식이었는데, 바이러스로 인해 음성인식 기능으로 바뀌어 있었다. 버튼 위로 동그랗게 안내 스티커가 있었다. 보행신호를 위해서는 "green go"라고 외쳐야 했다. 소리 내어 외치고 나니 왠지 모를 웃음이 나왔다.

 "Green go!"


 미사 10분 전에 도착한 성당엔 이미 몇 명이 앉아 있었다. 입구 양쪽으로 놓인 성수는 바이러스로 인해 닫혀있었다. 무릎을 꿇을 수 있는 형식의 의자가 놓여있었고, 몇몇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신자들이 이따금 움직이며 제대를 향해 무릎 인사를 했다. 그들의 방식대로 해야 하나 망설였지만 그냥 익숙한 대로 기도손을 하고 고개를 숙이는 형식으로 예를 갖추었다. 외국에서의 본격적인 미사 참여는 처음이어서 겁을 먹었다. 거기다 무릎을 꿇는 형식을 취하는 미사는 몇 번 안 해 봐서 눈치껏 해보려고 뒤 쪽으로 자리하고 앉았다. 암. 모를 땐 따라 하면 중간은 가는 거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의 못 알아들었다. 독서와 복음은 한국 앱으로 미리 읽어 본 데다 주보를 보며 들어 대충 알아들었지만, 강론은 대체로 알 수가 없었다. 영어의 부족함을 느끼며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잘 들으려고 집중하니 한국에서 나도 모르게 딴생각을 하며 흘려듣는 것보다 더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온통 낯선 것들이었지만, 큰 틀에 익숙해서 미사가 주는 경건함에 온 몸이 빠져들었다. 시끄럽게 흔들리던 마음에 진정을 찾았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영어 미사 용어랑 신자들 화답 공부하고 와야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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