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명품 가방 쇼핑

그러니까 애써 명품을 무시하던 내가 무턱대고 가방을 지른 이유

by 주먹토끼

명품: 원가에 비해 너무나도 높게 책정되어 있는 사치품. 사실 이 생각은 아직도 유효하다. 나는 명품이 제 아무리 질이 좋다고 하더라고, 제 아무리 브랜드의 명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생각한다. 명품 가방 하나를 살 돈으로는 디자이너 가방을 몇 개 족히 10개는 넘게 살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훌쩍 떠난 도쿄의 긴자의 M 백화점으로 가 무턱대고 가방을 하나 사버렸다. 나는 왜 충동적으로 가방을 구매했을까. 사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크레이프 케이크 마냥 레이어가 쌓였던 것 같다.


한국 나이로 29살이나 먹으니 이제는 그동안 안 보이던 것들도 눈에 밟히게 된다.

오랜만에 간 동창 결혼식에서 친구들이 다 좋은 가방 하나씩은 들고 다니더라. (타격 -5)

나보다 4살 어린 직장 후배는 가지고 다니는 명품 가방이 매일 바뀐다. (타격 -10)

마침 계획해 둔 일본 여행이었는데 엔화의 환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동기 +10)

일본 여행 전날 밤 남자친구랑 헤어졌다. (타격 -20)

아무리 생각해도 누구한테 선물을 받기보다는 내가 나 자신에게 좋은 선물 하나 하는 게 더 빠르고 좋아 보였다. (동기+100)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나는 명품 중에서 그렇게 비싸지도 않은 가방을 하나 손에 넣게 된다. 그동안 명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줄을 서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내가 되다니. 나 자신이 낯설었다. 그래도 명품 쇼핑 초보인 티가 팍팍 났을 내게 직원분들은 매우 친절하셔서 (물론 누가 봐도 돈 쓰러 온 사람에게 안친절할 이유도 없지만) 긴장을 살짝 풀며 공식홈페이지에서 찜 해두었던 가방 두어 가지를 매장에서 조심스럽게 매 보았다.


신중해야 했다. 내 인생에 이렇게 다시 크게 돈 쓸 일은 당분간 또 없을 테니까. 이 가방은 무조건 오래오래 들고 다니고 싶었고 그만큼 내 라이프스타일고 내 자아를 잘 반영해야 했다. 입에 사탕발린 직원의 말 대신 충실한 조언을 해 줄 쇼핑 메이트가 없어 오로지 혼자 판단을 해야 해서 여려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더욱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내가 고민을 했던 디자인은 호보백 대 버킷백. 버킷백은 이거 저거 다 들어갈 것 같은 용량이었지만 다소 캐주얼해 보이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호보백은 버킷백에 비해 용량은 적었지만 어딘가 더 세련되어 보였다. 무엇보다도 친한 친구가 같은 브랜드의 버킷백을 들고 다니는 것을 봐서 괜히 같은 날에 들었다가 '따라 샀다'는 오해는 받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바는 명료했다. 나는 직원에게 호보백을 구매하겠다고 했다.


가방을 구입하기 위해 카드를 내미는 그 순간도 내게는 낯선 느낌이었다. 물건 하나에 이토록 비싼 값을 줘본 적이 없어 생경했다. 이 쇼핑백을 받는 순간, 나의 1회 차 월급의 상당한 부분이 한 번에 사라진다. 몇 주전 봤던 사주가 용하긴 한가보다. 짠순이지만 자기한테만큼은 돈 잘 쓴다고. 카드가 무사히 긁히고 쇼핑백을 받아 집에 돌아올 때까지도 기분이 이상했다. 환불도 안되는데 괜한 돈을 썼나 싶기도 했지만 인간은 또 망각의 동물 아니겠는가. 사라진 돈은 곧 없던 것이 되어 잊혔다. 내 손에 남은 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구매한 명품 가방 하나. 명품이라 그런지 가죽임에도 불구하고 엄청 가벼워서 맘에 들기는 엄청 들었다. 이제 중요한 자리에는 이 가방이 나와 늘 함께 하게 되겠지.


나는 이 가방을 단순한 허영과 충동의 산물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며 돈을 차곡차곡 모아 온 나에 대한 대견함과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선물을 하나쯤 해 줄 수 있다는 뿌듯함. 이 감정을 간직한 채 가방을 메고 다니고 싶다. 누가 뭐라 해도, 이건 내가 피땀눈물로 돈 벌어서 산 첫 명품 가방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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