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의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
뮤지컬을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만큼 자주 보지는 못한다. 배우와 스태프들이 매회 일궈내는 공연은 그만한 값을 지불해야 마땅하겠지만 내 주머니사정은 그걸 봐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가끔 뮤지컬바에 간다. 뮤지컬바에서 내 테이블을 웨이팅 해주던 분이 어느새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는 투잡을 동시에 뛰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나오는 뮤지컬 넘버는 랜덤이고 아주 긴 시간 공연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나 배우들을 정말 근접한 곳에서 지켜볼 수 있고, 무엇보다도 간단한 음식과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렇게 뮤지컬 바에 갔던 하루, 머리를 길게 땋은 한 여배우가 뮤지컬 레드북에 나오는 넘버, <사랑은 마치>를 부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배우는 무대 위에 올라서서 관객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여러분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마도 뮤지컬을 좋아하는 누군가가 구성원으로 있는 듯한 가족과 함께 공연장을 찾아왔을 한 꼬마 아이는 "사랑은 사랑이에요."라고 당차게 답했다. 와인을 두 병 째 홀짝거리던 30대 후반쯤 보이던 부부의 남편은 "사랑은 얄미운 마음"이라고 답했다. 위트 있는 대답에 여기저기서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 질문에는 답이 있지는 않겠지만 '나는 사랑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와 '나는 어떨 때 이 감정은 사랑이라고 느끼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됐다. 나는 저 배우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했을까.
사랑은 마치 마치 오늘의 날씨처럼
흐렸다 환해지고 추웠다 따뜻해져
사랑은 마치 마치 노을 진 하늘처럼
노랗게 물들었다 빨갛게 피어나죠
사랑은 마치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끝없이 자라나고 새롭게 변해가죠
사랑은 마치 우리의 만남처럼
예상할 순 없지만 기대하게 만들죠
- 뮤지컬 레드북 <사랑은 마치> 中
노래에서는 사랑을 '오늘의 날씨'와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이라고 비유한다. 사랑은 늘 변화하고 자라난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나 보다. 정말 멋진 비유다. 사랑에는 시작도 있지만, 끝도 있다. 또 사랑은 변화무쌍해서 정말 마치 날씨와 같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날도 있지만 호수처럼 잔잔한 날도 있다.
나에게 있어 중요한 사랑의 속성 중 하나는 '나도 모르는 희생'이다. 사랑을 하면 때때로 나보다도 상대가 더 우선순위가 높아지는 순간들이 생긴다. 꽤나 남에게 무신경하고 스스로도 자아가 비대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게 사랑이다. 조금이라도 더 맞춰주고 싶고, 배려하고 싶고, 상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사랑은 마치 '바다' 같다고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나도 깊고 넓어서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사랑에 대한 본인만의 정의가 있는 사람과 사랑하고 싶다. 그만큼 사랑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 봤다는 증거일 테니까. 실컷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때 내가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조금 더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