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생각하자
어릴 적부터 난 남들 앞에 서는 걸 좋아했다. 그렇다고 얼굴이 철판이라 그런 자리가 아무렇지도 않았던 게 아니라 오히려 부끄럼이 매우 많은 편이었는데 그걸 극복하고자 정면돌파를 시도한 것이다. 좀 변태 같지만 무대에 오르기 전 심장이 쪼그라드는 고통을 즐겼다고나 할까. 반장, 과대표 등 자진해서 감투도 많이 썼고 장기자랑 시간엔 시키지 않아도 앞에 나가 있곤 했다. 수많은 실패 경험을 통해 얻은 ‘장기자랑에서 살아남는 노하우’가 있다면 딱 하나, 뭘 하든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것.
- 군대 훈련소에서의 일이다. 종교활동이 있는 일요일, 지난주에는 교회에 다녀왔기 때문에 이번엔 절에 가보기로 했다. 스님 말씀 시간에 숙면을 하고 나니 막바지에 장기자랑이 열렸다. 초코파이를 준다길래 곧바로 튀어 나갔다. 수많은 군인들 앞에 13명의 초코파이 러버들이 무대에 올라왔다. 난 여느 때처럼 순서 젤 끝으로 가 섰다. 상대를 관찰하고 작전을 세우기 위해서다. 사회자가 각자 자기소개를 시킨 후 댄스 음악을 틀어주면 몸을 흔드는 미션.
“충성! X 중대 X 소대 XX번 훈련병 김훈련!”
하고 첫 친구가 멋들어지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러자 다들 약속이나 한 듯 경례 자세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뒤로 갈수록 목소리는 더 커지고 경례 각도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과장된 몸짓에 맞춰 관객들의 반응도 더 뜨거워졌다. 그러다 내 눈앞에 마이크가 나타났다. 그 순간 난 사회자의 마이크를 빼앗아 쥐고는 비트박스를 넣었다. 그리고 랩으로 조교들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절도 있는 경례와 큰 목소리의 관등성명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내게 폭발적인 반응을 보냈고 난 그 날 우리 중대 전체에 초코파이와 맛스타를 돌릴 수 있었다.
- 이번엔 대학교 1학년 2학기 첫 수업 시간. 전공 수업이 듣기 싫어 내 마음대로 예술대학의 ‘영화의 이해’라는 수업에 들어갔다. 교수님은 수업 중 과제로, 6명씩 짝을 만들고 조 이름을 지어 발표하라고 하셨다. 덜컥 조장이 됐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영부영하다 주어진 시간은 금방 지나버렸고 각 조장은 강의실 앞에 불려 나왔다. 일단 이번에도 맨 마지막에 섰다. 앞에서 ‘조조’, ‘따조’, ‘오빠저거사조’ 등이 나왔다. 나는 아직 조 이름을 생각해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차례 직전, 번쩍 섬광이 지나갔다.
교수님으로부터 마이크를 받아 든 나는,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하고 운을 뗀 뒤 윤도현의 ‘사랑 Two’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널 만나면, 말없이 있어도 또 하나의 나처럼 편안했던 거야”
처음에 어리둥절하던 학생들도 이내 내 노래에 맞춰 팔을 흔들어줬다.
큰 강의실이 콘서트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내겐 너무 소중한 너. 내겐 너무 행복한 너어” 노래를 끝까지 부른 후
“... 조”입니다 하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큰 박수가 쏟아졌다. 그리고 교수님께 덧붙였다.
“교수님 저희 조 이름이 좀 길지만 어렵게 생각해낸 거니 꼭 Full name으로 불러주십시오”. 그 후 우리 조가 불릴 때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우리 조는 최고 점수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