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 고개 숙인 스탠드를 가만히 바라본다. 새벽 내내 불을 밝히던 눈부신 ‘기능’을 멈추자, 나지막한 스탠드는 순식간에 차가운 금속의 ‘질감’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더 이상 무언가를 밝히는 도구가 아니라, 창문 넘어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조형물이 된다.
사물은 기능이 멈추는 순간, 아주 자연스럽게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 휴식한다. 군더더기가 없고, 망설임이 전혀 없다.
‘나’는 어떤가?
하루 종일 누군가의 리더, 누군가의 부하, 혹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계처럼 기능하다가 문을 나서지만, ‘나’의 내면은 스위치를 끈 기계처럼 금방 고요해지지 않는다.
몸은 퇴근했지만, 마음속 엔진은 여전히 열기를 뿜으며 덜덜거리고 있다. 그 진동이 익숙할때도 되었지만, 여전히 어색해서 곧장 ‘나’에게로 돌아오지 못한다.
텅 빈 방에 홀로 남겨진 ‘나’라는 존재가 너무 낯설고 두렵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소리로 적막을 메우거나, 술잔의 소란함 속에 ‘나’를 숨기거나, 스마트폰의 타임라인 속을 목적 없이 배회한다.
‘도구’로서의 쓸모가 다한 뒤, 아무런 타이틀 없는 벌거벗은 ‘나’를 마주하는 일. 그것이 두려워 자꾸만 다른 ‘도구’가 되기를 자처하며 서성이는지도 모르겠다.
스탠드처럼만 살고 싶지 않다면, 도구로서의 삶이 끝나는 지점에서야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여행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거다.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은 기능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 그리고 소란스러운 세상의 소리를 끄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용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랬다. 늘 그랬다.
사물의 ‘사물성’은 평화로운 멈춤이지만, 인간의 ‘인간성’은 멈춤 뒤에 찾아오는 고독을 견뎌낼 때 비로소 회복된다. ❤️
_내 마음의 한 문장
“기계는 멈추면 고철이 되지만, 사람은 멈추는 순간 비로소 꽃이 된다. 흔들리는 ‘나’를 견디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