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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Jun 20. 2024

풀냄새 가득한 이국의 순수함

<다우렌의 결혼>


카자흐스탄에 사는 고려인들의 결혼문화를 다큐멘터리에 담으려 출국한 승주와 영태. 하지만 연출을 맡기로 했던 현지 출신 감독이 어이없는 자동차 사고를 당해 촬영 자체가 위기에 빠진다. 결국 조연출이던 승주가 실질적인 연출을 맡게 된 상황. 그러나 불행은 연이어 찾아온다고, 주 촬영지로 점찍어둔 사티 마을에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가 전무한 상황. 이에 항상 진실만을 담는다는 다큐멘터리의 법도까지 어겨가며, 승주는 카메라 앞에서 다우렌이라는 새 이름으로 고려인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남은 건 이제 가짜 신랑에 이어 가짜 신부를 구하는 일. 허나 유일무이한 가짜 신부 후보 아디나는 이 가짜 결혼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데...


사실 <다우렌의 결혼>은 뭔가 허술한 영화처럼 보인다. 미장센이나 편집적 감각은 무언가 학생이 졸업 작품으로 만든 영화처럼 느껴지고, 왕도적이다 못해 뻔한 전개에 인물들 사이 관계 또한 뭔가 급작스러워 보인다. 그러니까 솔직히 세련되고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는 말. 가뜩이나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의 여러 오리지널 작품들이 한없이 자극을 추구하고 있는 요즘 마당엔 더더욱 밍밍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웃긴 건 그게 이 영화의 매력으로도 작용한다는 점이다. 분명 <다우렌의 결혼>은 허술한 지점이 있다. 무언가 촌스럽고 투박한 면모가 있다. 그런데 그 부분이 마냥 촌스럽고 투박하다기 보다는, 무언가 순수하게 다가왔다. 탁 트인 평야와 평화로운 시골 분위기를 간직한 카자흐스탄이라는 이국에서, 한없이 차분한 두 남녀 주인공의 순수하고 순박한 로맨스. 여기에 프레임 곳곳을 한껏 여유부리며 채워나가는 시골 마을 사람들의 정 역시 그 순수함과 순박함에 한 몫을 더하고. 


극 초반, 승주는 다른 다큐멘터리의 후반 작업을 하다 출연한 사람들의 본명을 알지 못해 그들 이름을 자기 멋대로 적어 자막으로 넣는다. 그랬던 그가, 비록 게오르기 삼촌의 추천이긴 했지만 스스로 다우렌이라는 이름을 직접 골라 쥐었다는 점은 뭔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름은 정체성이고 정체성은 곧 진심이다. 남의 작업물만을 만들며 언젠가부터 내보이지 못했던 진심. 승주는 다우렌이 되어 그 진심을 해방시키고, 결국엔 자신만의 작업물을 위해 새로 길도 나선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나선 승주가, 또 자신만의 길을 나선 아디나를 우연히 만나 조우하는 장면은 그래서 얕은 동시에 깊은 감흥을 남긴다. 


풀냄새 가득한 이국의 순수함이 내내 감도는 영화. 앞서 말했듯 무척이나 촌스럽고 투박한 영화이지만, 아무래도 그래서 <다우렌의 결혼>이 기분좋은 시골내음을 간직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영화적 재미 자체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극장 문을 나설 때 그 시골내음 하나만은 은은히 코끝을 간질이던 영화. <다우렌의 결혼>엔 무언가 순수한 매력이 있었다. 


<다우렌의 결혼> / 임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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