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EKOON Jun 29. 2024

기쁨과 불안, 모두 나를 위한

<인사이드 아웃 2>


<인사이드 아웃>의 속편을 만듦에 있어 픽사에게 사춘기란 감정은 결코 그냥 지나칠 순 없는 그 무엇이었을 테다. 1편의 결말부에서도 농담 섞어 예고했던 바가 있지만, 정말로 그 사춘기가 라일리에게 찾아와버렸다. 마냥 기쁘고 슬펐던 유년 시절과는 달리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들을 마구 느끼게 되는 시기. 자기 스스로도 자신이 왜 이러는 건지 알 수 없고 통제하기 힘든 시절. 그렇게 라일리의 머릿속 본부에 터를 잡고 있던 전편의 다섯 감정들은 사춘기란 전시 상황에 직면한다. 


전편에서는 기쁨이와 슬픔이가 대립각을 세웠었는데, 속편에서는 기쁨이와 불안이의 적대가 두드러진다. 어찌보면 불안이의 등장과 그 구도는 불가항력적이다. 불안이란 감정이 아주 0에 수렴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어린 시절엔 그보다 기쁨이 설 자리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기쁨은 언제나 과거와 현재에만 머물러있다. 기뻤던 어제, 그리고 기쁜 오늘. 기쁨이는 그렇게 지나갔거나 현재 지나치는 일들에 있어 조종간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불안이의 시선은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에 머물러 있다. 불안의 기본 시제는 미래이니까. 우리네 삶에 '불안했던 과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지나간 일로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 우리는 아직 다가오지 않을 일들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 그리고 그건 아무래도 어린 아이보단 어른일 때 더 두드러진다. 마냥 즐기고 누리기에는, 이제 책임지고 돌보아야할 것들이 한층 더 많아지는. 극중 기쁨이의 말마따나,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기쁨이 줄어들고 불안이 늘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편이 기쁨과 슬픔 등의 여러 감정들 사이에서 중재를 끌어냈듯, <인사이드 아웃 2> 역시 불안 또한 끌어안으며 그 모든 감정과 기억과 경험들이 모두 뒤섞여 한 명의 개인을 만들어내는 거라 읍소한다. 적당한 기쁨과 적당한 불안. 그 밖의 감정들 역시 적당히 서로를 둘러메고 끌어 안아야만 한 개인의 정체성이 비로소 자리잡을 수 있다. 기쁨이는 자존감을, 불안이는 준비성과 겸손을 꾸려내며 라일리를 하나의 준성인으로 가꿔낸다. 그리고 영화가 더 상세히 설명을 안 해서 그렇지, 이 둘 뿐만 아니라 다른 감정들 역시 라일리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데에 당연히 필요한 존재들일 것이고. 


불안이가 악당처럼만 묘사되지 않아 역설적으로 기뻤다. 기쁨이와 슬픔이 등이 모두 그랬듯이, 불안이 또한 오직 라일리를 위해서만 헌신한다. 라일리가 실패하진 않을까? 라일리가 망신을 당하진 않을까? 라일리가 결국 잘못 되면 어떡하지? 물론 그 과도한 불안 때문에 불안이가 일순간 라일리를 위기에 빠뜨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그조차 다 라일리를 위한 마음이었다 생각하니 괜스레 안쓰러워지기도 했다. 


전편을 보고나서, 왜인지 우울하거나 무서워질 때면 가끔씩 내 머릿속의 기쁨이와 슬픔이와 버럭이와 까칠이와 소심이를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그에 이어 속편까지 보고나니, 나의 그 유치한 상상 속 감정 친구들이 좀 더 늘어난 것 같아 어쩐지 좀 더 든든해졌다. 나의 불안아, 너는 지금 불안하구나. 어쩌면 네 덕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가끔씩은 기쁨이와 손을 맞잡아 보는 건 어떨까?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너무 숨 가빠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나의 불안아, 나를 이토록 아껴줘서 고마워. 


<인사이드 아웃 2> / 켈시 만


작가의 이전글 슬픔이 기쁨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경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