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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Jul 09. 2024

포기할 수 없다 vs 포기해야만 한다

<탈주>


개연성과 관련해 세부적인 부분들에서 덜컹거린다. 제아무리 오래 준비한 계획이라 하더라도, 세상에 마상에 탈북이 그리도 쉽단 말인가. 주인공인 규남이 매설된 지뢰들을 쉽사리 찾아내고, 또 남조선으로 가는 최단 루트를 뚫어내는 상황 등이 모두 쉽게만 그려진다. 또 이건 장르 영화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한데, 그토록 많은 총알들이 빗발치는 와중에도 규남이 그 중 단 한 발도 맞지 않는다는 것 역시 납득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규남이 주인공인 이상 어쩔 수 없는 묘사란 거 안다. 하지만 그 또한 연출로 어느 정도 변명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탈주>는 그를 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말할 건 여전히 많다. 위기 상황에서 웬 유랑민들을 만나 도움받는 타이밍이라든가, 결정적인 순간에 목걸이 하나 걸고 넘어지며 목숨을 쉽게 버리는 인물이 있다든가, 주머니에 넣고 다닌 라디오는 왜 갑자기 혼자서 전원이 켜지는가 등등. 


그러나 <탈주>는 기세로 몰아붙이며 그냥 달려나간다. 상술한 개연성의 아쉬움들도, 사실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볼 당시엔 바로바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러니까 <탈주>는 그런 개연성의 아쉬움들을 따로 생각할 틈을 허용치 않으며 뛰고 또 뛴다. 밤마다 몰래 내무반을 나서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내는 규남의 모습부터, 그 이후 쭉 이어지는 탈주의 과정들이 모두 빠르고 빨라 좋은 리듬감 안에 얹혀져 있는 느낌. 때때로 어떤 영화들은 특유의 기세로 자신의 단점을 숨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탈주>는 적어도 내게 있어 그걸 잘해낸 영화처럼 보였던 거고. 


영화는 '탈주'라는 단순한 플롯 하나만 보고 달린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두 인물의 구도까지 단순하진 않았다. 그 정도로 규남과 현상의 구도는 단순하되 복잡해 흥미롭다. 두 인물 간의 관계만 두고 봤을 때, <탈주>는 결코 꿈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자와 그동안 많은 꿈들을 포기해왔던 자의 생사를 건 대결로 읽혀든다. 그 선곡이 조금 유치하긴 해도, 규남은 행복하자는 남조선 노래의 가사를 품에 안은채 오직 행복해지기 위해 자신의 꿈과 목숨을 건다. 설령 그 꿈에 있어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 안에서 얻는 것들이 있겠지. 실패할 자유 또한 누리고 싶다는 선언. 반면 현상의 상황은 좀 더 복잡하다. 그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피아니스트라는 꿈도, 정확히 발설하기는 어려운 과거의 사랑도 모두 포기한 사람이다. 더더군다나 그 과거의 사랑이라는 게 아무래도 동성간의 그것이었던 듯 한데, 그렇다면 좀 더 나아가 규남은 스스로의 정체성마저 포기한 사람이 되는 거겠지. 


그렇게 <탈주>는 결코 꿈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자와 그동안 많은 꿈들을 포기해왔던 자의 구도를 끝까지 부여잡는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야 드러나는 진실. 알고보니 결코 포기할 수 없다던 그 남자에게 그 꿈을 처음 심어줬던 사람 또한, 바로 그동안 많이도 포기해왔던 자였다는 것. 아마 그래서 현상은 규남을 그냥 보내줄 수 밖에 없었나보다. 그래서 현상은 그토록 규남을 두고 떠날 수 밖에 없었나보다. 


<탈주> / 이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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