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오브 도그>
연약하고 순진한 내면을 숨기기 위해 고슴도치처럼 스스로에게 가시장막을 드리운 남자.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이 완벽하게 정의 되고 분리 되던 그 옛날 미 서부 개척시대에서, 그 중간쯤 어딘가를 서성이던 남자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러니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이야기. 그런데 안타까운 건, 본인도 그런 삶을 살고 있었으면서 정작 남들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남자의 순수한 태도다. 공감으로 얻은 사랑을 통해 파멸 해버린 남자. 그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리고 누구 때문에 그리 된 건지 이후에도 전혀 알 수 없으리라.
주인공 필에 대해, 영화는 철두철미한 면모를 선보인다. 영화에 따르면 필은 카리스마와 터프함이 넘치다못해 사소한 일에도 쉽게 폭발하는 사람이고, 주위 사람들을 말 다루듯 거칠게 대하며, 그 당시 기준 조금이라도 여성스럽게 구는 남자에게는 대놓고 모욕감을 준다. 과부를 비하하고 동생을 무시하는 것은 기본인 남자. 여기에 종이로 만든 꽃을 손가락으로 거칠게 다루는 익스트림 클로즈업은 이 필이라는 남자를 다루는 데에 있어 <파워 오브 도그>가 행하는 확인사살처럼 보인다. 아, 이 남자는 전형적인 남성주의자고 마초구나.
그러나 필의 편을 조금 들자면, 남성주의자는 그가 아니라 그 시대였다. 남자가 남성의 일을, 여자가 여성의 일을 하는 게 당연했고 또 그래야만 했던 시대.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필의 그러한 대책없는 면모들이 모두 용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알고보면 그 역시 유약한 영혼이었던 것이다. 그는 '계집'과 '호모'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남들이 자신을 그렇게 보는 순간 그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선택했다, 남성주의자 마초의 길을. 실은 그 당시의 남들이 '계집'과 '호모'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였음에도.
평소에는 비밀을 감추고 살아가다 자신만의 성역에서 만큼은 모든 걸 드러내는 필. 옛 사랑은 보드라운 손수건을 통해 추억되고, 더러운 육신은 시원한 강물로써 씻겨진다. 하지만 필의 이 성역 안으로 동생의 새아들 피터가 들어서면서부터, 모든 것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필에게 그랬듯, 피터 역시도 철저한 태도로 묘사한다. 피터는 '계집', '호모'로 불리는 소년이고 종이공예와 그림 그리기를 즐긴다. 1920년의 몬태나에서는 썩 여성스러운 취미. 어쨌거나 순수하고 순진해보이는 일면을 선보이는 피터. 그러나 사실 <파워 오브 도그>는 공평했다. 영화는 피터의 모든 측면에 대해서 솔직했거든. 영화의 시작을 여는 피터의 내레이션과 중반부 토끼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주인공들의 결말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 되었던 것이다. 하여튼 필은 피터에게 사랑 이전의 공감을 느낀다. 보지 못하면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보지 못해도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그 누구도 보지 못하는 산맥 속의 짖는 개를, 피터는 필과 함께 본다. 아, 우리 둘은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구나. 그렇게 필은 마음을 연다.
사랑으로 인한 파멸은 천둥과 번개 등의 재앙처럼 크고 확실하게 도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이다. 오히려 시나브로 침잠해가는 파멸도 있다. <파워 오브 도그>는 그러하다. 자기 자신을 숨기기에 급급 했던 필은 결코 피터의 진짜 속내와 정체를 알아채지 못했다. 어쩌면 자기 스스로를 숨기는 데에 모든 감각과 체력을 이미 다 썼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 조심이던 그. 그러나 자신과 비슷한 피터의 모습을 통해 느낀 사랑에 만큼은 조심할 수 없었던 그. 그는 그랬기에 죽음을 맞았다. 바로 그런 결말 때문에, <파워 오브 도그>는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독특한 사랑 영화로 남는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했던 <이미테이션 게임>. 그 영화 속 초기 컴퓨터가 내던 '딸각' 소리들은 알고보면 모두 사랑이었지. 어쩌면 필에게는 힘겹게 꼬던 그 밧줄이 사랑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