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동하 Jul 22. 2019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아트인문학

아트 인문학

이 책은 미술사의 흐름을 하나의 일관된 관점으로 엮어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역사적 배경을 함께 알 수 있도록 적어놓은 대단히 훌륭한 도서다. 읽을수록 작가는 천년의 역사를 함께하셨나 라는 의문이 절로 든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모든 위대한 탄생이 그러하듯, 새로운 관점이 미술의 흐름을 바꾸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한다. 변화를 꾀한 혁신가들은 이전 시대에는 '너드(Nerd)'취급을 받고,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이후에는 '천재' 취급을 받는다. 내가 예술에 관심이 많은 이유 중 하나이다.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기존의 틀을 깨고 나온 역사의 흐름을 볼 수 있기 때문.


내가 존경하는 이진하 디자이너님의 세미나에 갔을 때 들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창의적인 사람이란 자신의 생각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누구나 다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좋아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거기서 그칠 뿐, 나아가질 않는다. 다소 안정적이지 않고 외부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를 실행시키기 시작하고, 이 생각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생겨나기 시작한다. 백 명 중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던 그 아이디어가 한두 명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이는 점차 커져 100명에게 공감을 얻기 시작하면 더 이상 그 아이디어는 '환상'이 아닌 '혁신'이라는 타이틀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나는 작가의 에필로그에 반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시대의 교육 방향에 있어서 작가님은 무엇보다 '통찰'이 혁신을 이끌어내며, 이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교육방식의 개선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나는 '통찰'은 시대의 혁신에 있어서 필수적이지만, 그보단 '실행'이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통찰'을 늘리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보다도 '실행'을 유도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실행을 '확대'시키는 것보다는 '방해'하는 요인들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것이 대학 교육 방식이다. 


대학생들의 대부분은 대학교를 다니며 '졸업'이라는 중간 목표를 두어 생활하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라는 최종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하나의 척도로 여겨지는 학점에 예민해하고 목숨 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본다. 이는 모두 취직을 바라보며 '보다 안정적인' 방향을 추구하는 본능이기도 하고 남들과 다름을 본능적으로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대학의 본질을 잊는다는 것이다. 대학의 본질이자 입학 목적을 생각했을 때 대학이 '공부를 할 수 있는 곳' 이란 사실을 잊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언제부턴가 대학은 '공부하기 위한 곳'이 아닌 '취직하기 위한 곳'으로 간주되고 있다. 혹은 더 나아가 선택이 아닌 '필수' 교육의 연장선인 듯 의무감을 가지며 생활한다.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듣기보단, 취직을 위해 선택하는 현실 속으로.. 


내가 생각하는 대학은 공부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매개라 생각한다. 심지어 현시점에서 전자의 효력은 약해지고 있다.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이 발달하며 그 특성은 대체되기 시작하고 단지 물리적인 공간을 의미하는, 즉, 대학의 경계를 허무는  Coursera, EdX, MOOC 등의 온라인 대학 강의도 급속도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강의'에 대한 정의는 통념에서 벗어난 개념으로 자리 잡혀야 한다. 수강신청을 통해 이루어지는 강의는 교수와 학생과의 계약 관계로 이루어진 지식의 전달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교수의 갑질은 용납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학의 본질로부터 벗어나 취직을 위한 중간 과정으로 인식하게 되면, 더 자세히 말해 취직을 시켜주는 곳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학점이라는 중간 절차에 의해 갑질의 관계가 생성될 수밖에 없다. 이는 오히려 근본적인 공부를 추구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안 좋은 환경을 만드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취직을 목표로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자신의 뜻을 취직으로 목표 삼아 자신의 관심분야에 맞게 공부를 해 나가는 곳으로써 대학을 발판으로 삼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며 이상적인 절차이다. 대학은 자신의 관심사를 찾을 수 있게 다양한 활동을 제시하고 관심분야를 보다 쉽게 공부해나갈 수 있도록 인프라를 제시해 주는 곳임을 잊지 않아야 더 나은 대학교육을 같이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으로 돌아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길 수 있도록 마련해 주기 위해선 사회 분위기가 많은 역할을 한다고 본다. 아직까지는 우리나라는 과도기로서 모순적인 분위기가 많이 형성되어 있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많은 준비된 혁신가들, 꿈나무들이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많이 주춤하는 것 같다. 물론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너드' 취급을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사랑하고 실현하는 사람이 결국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모범적인 인물로 칭송을 받게 된다. 지금까지 많은 혁신가들도 그러하다.


'창의적 인재'를 만든다며 이러한 혁신가들을 소개하고 인재를 발굴하고자 노력하는 방법은 단순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강조하며 독창성, 창의성만 요구한다. 또한 창의력이 없다면 안된다는 통념을 형성하여 오히려 진입장벽을 만든다.  


창의력을 기르는 방법을 강조하기보단, 실행력을 북돋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은 독특한 상상력을 가지고 창의력을 발휘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행을 하기까지 다른 사람의 시선이라는 장벽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남들과 다름을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지 못한다면 과학 노벨수상자는 물론, 혁신가는 배출하는 것은 많이 어렵지 않을까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