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니 Sep 28. 2023

창작의 스타일을 넓혀가는 과정

매거진 Yawny Routine 10월호 <내일이 기대되는 삶> 비하인드

개강+추석연휴가 겹치는 바람에 과연 10월 달력을 제때 만들 수 있을까 걱정됐지만,

다행히 9월 달력을 마감하자마자 바로 10월 달력에 대한 기획을 마쳐둔 덕분에 생각보다 순조롭게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1. 주제 및 메세지 선정


혼자 쓰는 일기와는 다르게, 매거진에 실리는 글은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한 글이기 때문에 긍정적이거나 유쾌한 방향으로 메세지를 잡는다.

좋은 메세지를 고민하다보면 자연스레 내 주변 사람들이 떠오르면서 그들에게 해주고싶은 말을 생각하게 된다. 9월까지는 그렇게 주변의 특정 사람들을 대상으로 메세지를 잡아왔다.


그러다가 10월 달력을 만들어야하는 9월에 들어서면서, 대학원 생활 시작을 앞두고 나는 미래에 대한 미친듯한 긴장과 불안에 휩싸였다.

남들에게 건네는 희망찬 메세지는 고사하고 10월 달력을 만들수는 있을까 자신이 없어졌었다^___ㅠ...

하지만 다행히도(?) 9월 달력을 광역딜로 여기저기 뿌리면서 다음호를 약속하는 바람에, 10월부터 바로 휴재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강제성 덕분에 간신히 주제 기획에 들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좋지 않았고, 지금 긍정의 메세지가 가장 필요한 건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0월의 메세지를 받는 사람은 나로 결정.

내가 타인이라면, 타인이 된 나는 나에게 어떤 말을 가장 듣고싶을까.

사실 내가 불안한 이유는 '극단적인 최악을 걱정하기 때문'이었다.

그 극단적인 최악의 상황에서 나는 아주 작은 일도 해결할 수 없는 무기력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정말 말그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냥 방구석에 꼼짝 없이 누워있기만 한 모습이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그렇지는 않다는 것도 사실 안다.

그러니 나는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고민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은 몰라도 그 때 가면 진짜 저렇게 무능해질지도 모르잖아'라고 호도해버리는 것이다.


왜 실현되지도 않을, 말도 안되는 상황을 가정하면서 나는 나를 괴롭히고 있는가?

그건 근본적으로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능력치와 잠재력은 어느 정도고, 그걸 바탕으로 이 정도는 해나갈 수 있을거야-라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는 다가오는 알 수 없는 미래를 해쳐나갈 용기가 생길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이 말을 해주기로 했다.

"적어도 그동안 너에 대해 알아온 만큼은 너의 (생존)능력을 믿어줘"


2. 본문 메세지 작성


주제와 메세지가 정해지자마자, 본문 초안은 신 내린 듯 한번에 완성했다.

나에게 필요한 말은 내가 제일 잘 알고, 내 고민의 답도 사실은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일기로 글쓰기를 연명해온 나에게는 나를 상대로 하는 글을 쓰는게 제일 쉬웠다.


다만 9월과 이번 10월은 글의 결론이 너무 억지로 훈훈한 방향으로 마무리되는 느낌이 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완급조절하는게 어려웠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글의 톤은 시니컬하고 자조적이면서 위트있는 분위기를 내는 것이다.

고민을 주욱 늘어놓고는 아무런 결론을 짓지 않고, 위에서 쌓아둔 논리를 와르르 무너뜨려버리는 마무리를 좋아한다.


희망찬 메세지도 써본 사람이 잘쓰지, 안써본 사람이 써보려하니 처음에는 다소 투박하고 촌스러울 수 밖에.

그래도 괜찮아. 점점 나아지겠지. 지금 내 감성으로는 여기까지가 최선인 것 같다.


3. 이미지 컨셉 기획 & 스케치


이번 호는 드로잉 말고 타이포나 도형으로 표지를 꾸미고 싶었다. 일러스트가 포인트가 됐던 지난 호에서 분위기를 환기 해보고 싶어서.

그런데 내일에 대한 기대, 나에 대한 확신 같은 관념적인 걸 이미지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서 계속 막힌 채 진전이 나가질 않았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를 압축하고 압축해서 추상적인 그래픽으로 표현하는게 더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기획 단계에서 막힌채 학교도 개강하면서 정신없는 나날 속 시간은 계속 지나갔다...


그러다 문득 우주가 떠올랐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우주적인 것들에 끌리기 시작했는데(침투부 속 궤도 영상을 보고 나서부터..?),

미지의 영역,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영역이 우리에게 신비감과 공포감이라는 감정을 동시에 주는게 흥미롭기 때문이다. (문과에게 우주를 알려주면 이렇게 된다)

나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우주를 보고 느끼는 신비와 공포의 양가감정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번 호는 우주를 표현해보기로 결정.


이미지 스케치를 하는데, 아까 말했던 것처럼 좀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싶은데 자꾸 내러티브적인 구상만 떠올랐다. 뭔소리냐면, 좀 돌려서 말하고 싶은데 자꾸 직설적인 말만 떠오르는 상황.

평소의 어조나 성격이 그림에도 반영이 되는 것 같다.


좀 더 붙잡고 있으면 보다 비유적인 표현이 떠올랐겠지만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이번 호는 직설적인 표현으로 가기로했다. 어쩌면 그게 지금의 내 스타일을 제일 잘 녹여내는 방식인거니까.

시간이 더 흐르고 더 많은 시도를 해볼 수록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스타일은 점차 넓어지겠지.


그렇게 미래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우주 속 소녀를 그리기로 했다.


4. 일러스트 채색


내가 표현하고 싶은 이미지는 어두운 배경에 몽환적이고 빛나는 계단 이미지였다.

처음에는 형광색 몇 개를 그라디언트 효과로 넣으려고 했다. 컬러칩북을 보니까 CMYK로도 별색 없이 형광 인쇄가 어느 정도 구현되는 것 같길래.

그런데 바보같이 '형광색'에만 꽂혀서 배색에 대한 구상은 없이 형광색이면 다 때려넣었더니 너무 촌스러워진 것이다...ㅎㅎㅎ 게다가 집 프린터기로 인쇄해봤더니 왜 컬러칩처럼 쨍한 색상이 안나오는지..ㅎㅎㅎㅎㅎ내가 뭘 놓쳤나.


여튼 제대로 구체화 하지도 하지 않고 조급하게 색상부터 때려넣었던 나를 반성하며 다시 '어떤 이미지를 그릴 것인가?'에 대한 구상을 시작했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건 이런 용암 같은 물결 무늬였다. 

발을 넣으면 빠져버리지는 않을지, 발이 녹아버리지는 않을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가늠이 안되는 무서운 계단이지만, 이것 외에는 발을 디딜 곳이 없는 상황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런 기획을 토대로 어두운 우주 배경과, 그에 대비되는 밝고 영롱하지만 알 수 없는 계단의 이미지를 그리기로 했다.

완성본. 역시 RGB가 쨍하고 좋다. 출력본은 이렇게 영롱한 느낌이 안난다ㅠ_ㅠ

처음에는 배경을 어두운 단색으로 깔려고했는데, 막상 보니 조금 허전한 느낌이 들어서 남색 계열의 구름을 표현하고, 행성에는 질감과 그라데이션을 넣어주었다.

그리고 대망의 계단...은 결국 이미지를 받아서 사용^*^

욕심 같아서는 직접 그리고 싶었지만, 활용할 수 있는 건 활용하기로 했다. 직접 그리는 것보다 소스를 사용하는게 표현하고자하는 이미지가 더 잘 구현되었기 때문에.


소스 활용은 어느 범위까지 용인할 것인가?하는 물음에, 단순히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가 아닌, 소스로 인해 작업물의 퀄리티가 올라갈 때만 사용하기로 나만의 기준도 세웠다.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자료보다 직접 만드는게 더 퀄리티가 있는 곳에 공수를 들이기로.


사실 처음에는 더 근접한 구도로 그렸었는데, 우주의 거대함이 잘 표현이 안 된 것 같아 계단과 사람의 크기를 줄였다.

근데 지금 보니까 여백도 너무 많고 계단의 오묘함이 약해진 것 같아 살짝 후회되기도^____^;


5. 내지 편집


이미지가 주인공이 아닌 곳의 이미지 작업이 제일 어렵다. 

우주적인 이미지를 본문에도 끌고가고 싶어서 배경을 어둡게 깔고 글씨는 흰색으로 넣었다.

집 프린트로 해보니까 글씨가 잘 안보이길래 서체 굵기를 한껏 올렸는데, 실제 출력물을 받아보니 너무 굵어서 촌스러워졌다..ㅠ_ㅠ


6. 용지와 인쇄


지난번과 다르게 이번에는 최대한 쨍한 느낌을 내고 싶어서 광택이 있는 랑데뷰 용지를 골랐다. 색감은 마음에 드는데 너무 미끌거려서 당황..ㅋㅋㅋㅋㅋ거의 코팅지 같다.

두께는 고민하다가 160g으로 했는데, 두 번 접지를 하기엔 좋지만 퀄리티 면에서는 조금 아쉽다.

활용도와 퀄리티를 높이려면 언젠가 2회 접지하는 형식을 바꾸긴해야되는데 쉽지가 않다ㅠ_ㅠ


어두운 색상으로 인쇄하면 문제가, 오시를 넣으면 잉크가 벗겨진다는 것이다.

8월에 스노우지로 인쇄했을 때는 오시를 안넣고 접지만해도 잉크가 벗겨졌는데, 이번에는 오시를 안넣고 그냥 접으면 잉크가 벗겨지진 않는다. 근데 깔끔하게 안접혀...

어두운 색상으로 작업하려면 접지되는 면을 확실하게 분할해서 레이아웃을 짜야될 것 같다ㅠ_ㅠ


그리고..이번에 정말 치명적인 실수를 해버렸다.

바로 한글날 빨간표시를 안한 것...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든 공휴일을 누락한 것도 아니고, 추석 연휴와 개천절은 표시했으면서 한글날은 빼먹은 것이다.

이 매거진의 실질적인 용도는 달력인데 근본적인 것을 놓치다니ㅠ^ㅠ 기본에 충실하자고 반성반성

결국 견출지 사서 모두 스티커 작업행.

회사 다닐때 종종 패키지 데이터가 잘못되면 스티커 작업을 진행했었는데 나와서도 이러고 있네^___^


6. 마무리와 회고


이번 달력을 작업하면서 글도, 이미지도 나의 스타일에서 벗어나보려고 했지만 멀리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의 내 작업물이 메세지를 전하는 방식은 다소 투박하고, 직설적이고, 촌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엄청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이걸 어떻게 남들한테 주나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말을 붙잡고 가기로 했다.

한 번에 너무 성장하려고도, 드라마틱하게 바뀌려고도 하지 말고 조금씩 점진적으로 나의 범위를 넓혀나가기로 다짐하며-

다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이번 작업물이지만 무사히 잘 마무리했음에 의의를 두기로했다.

더 성장할 내일을 기대하며^_______________^ 10월호 회고 끝.



매거진의 이전글 쓸데없더라도 하고 싶은 것에 최선을 다해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