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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Oct 10. 2021

취향에 관하여-시그니처 커피를 시키는 것

제주 애월, 카페 <까미노>에서의 시간

취향이 있는 사람은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자주 가는 여행지가 있고, 가면 꼭 들르는 가게가 있는 사람.


세상 대부분의 것들이 새롭던 때의 나는 호불호가 딱히 없었고, 모든게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그래서 무얼할지 갈팡질팡하던 나에게 '여기는 이게 좋더라구'라며 자신의 취향을 꺼내어 보이는 사람이 멋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도 조그맣지만 나만의 세계를 쌓아올리게 되었다.

자주 가는 여행지가 생겼고, 꼭 들르는 가게가 생겼다. 실패하지 않을 계획을 짤 수 있고,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취할 수 있다.

성공 확률은 무려 100%.


그런데 사실 나는 청개구리 심보가 있는 사람인걸까. 예전에는 이런게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런 모습이 되니 고여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든다. 그러니까, 항상 가는 곳만 가고 새로운 시도는 하지 않는, 내가 아는 것만 전부가 되는 사람.


그래서 가끔은 좋아하는 여행지에서 좋아하는 가게를 뒤로하고 새로운 곳을 찾아본다. 카페에서는 언제나 따뜻한 라떼를 마시지만, 그 곳의 시그니처 메뉴를 주문해본다.

그러면 성공 확률은 50%.


100%의 성공법을 알면서 굳이굳이 돌아가는게 맞는 건가 싶기도하다. 나는 효율성과 이윤 극대화가 최선인 제도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이렇게 계산기를 돌리는 식으로 생각하고 만다 - 여행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실패는 최대한 줄이는게 합리적이지 않냐는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공 확률이 100%가 되면 재미가 없다. 여행이란 예상치 못한 이벤트를 기대하는 것, 일상에 지장 없을 소소한 도전들을 마음껏 해볼 수 있는 것이 또 묘미 아닐까.

그리고 50%의 확률로 성공을 이룰 때마다 나의 세계는 조금씩 더 넓어지고 있으니.


-

그러니까 이 글은,

애월에는 이미 내가 아는 내 취향의 까페들이 수두룩했지만,

굳이 지인이 추천해 준 카페를 한 번 가보고,

내 취향은 아닌 그 곳의 시그니처 커피를 괜히 한 번 마셔보고,

이런 일련의 시도들이 나쁘지 않아서 남기는 글.


사장님의 환대도, 탁 트인 통창 너머로 보이는 너른 녹지도,

독특한 이 곳만의 커피도 좋았던 시간(아, 역시나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별거 아닌 것들의 조합인데 왜 이렇게 꿀같은 걸까. 역시 여행이라는 마법 때문이었을까.

내 취향이 아닐 뿐 커피는 훌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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