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서 만나 제주에서 살고 있어요.
[피렌체에서 제주까지]
#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니지만, 베로나
죽느냐 사느냐는 한 끗 차이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렇게 사랑을 했지만, 그 로맨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되었던 로맨틱한 도시 베로나로 우리는 급 여행을 떠났다.
피렌체에 지내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찰나 옆집에 살고 있던 다른 작가님이랑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근교 여행 어디를 가볼까 이야기하다 베로나라는 도시가 생각났다. 베니스 여행 중에 만났던 동생이 베로나에서 마주했던 아름다운 풍경이 좋았다고 말했는데 나는 베로나는 가보질 못해서 그 경험에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로나라는 도시를 찾아봤었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도시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갑자기 베로나 다녀올까? 하고 그는 렌터카를 예약을 했다. 옆집 살고 있는 작가 언니도 같이 가자고 해 우리 셋은 베로나 여행을 함께 하게 되었다.
피렌체에서 세 시간 정도 차를 타고 베로나에 도착했다.
도착 후 우리는 주차장에 렌터카를 주차를 하고 걸어 마을을 둘러보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주차를 주의해야 할 경우가 많다. 특히 피렌체에서 아무 곳이나 주차했다가 벌금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짝꿍은 표지판을 주의 깊게 보거나 꼭 주차장을 찾아 유료주차라도 주차할 곳에 주차를 하는 편이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서 그런지, 주말에는 주차장이 자리가 거의 없었지만, 우리의 자리는 남아있어 얼른 주차를 했다.
베로나에 도착하니 도시가 생각보다 더 생기 넘치는 듯했다..
걷고 또 걸으며 베로나의 정보 하나 없이 둘러보았다.
그저 우리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걷고, 빛이 좋으면 두 작가님들 모델이 되어 그 빛 앞에 멈춰 서기도 했다. 꽃을 좋아하는 내가 꽃 집이 보이면 멈춰 서서 향기도 맡아보고, 에스프레소 바에서 셋이 쪼르륵 서서 에스프레소 한 잔씩 마시기도 했다.
처음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에스프레소의 쓴 커피맛을 몰라 한 잔 사 먹어보고 우웩 이걸 왜 먹는 거야? 하는 얼죽아였다. 첫 여행에선 경험하는 좋아하는 나에게 경험을 위한 첫 시도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마시는 에스프레소 한 잔에 설탕을 넣고 슉슉 저어 그 맛을 음미하고 휴식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엔 맛없는 커피는 없고, 취향에 따라 본인이 좋아하는 커피가 있을 뿐이다. 세상 어떠한 맛있는 음식도 본인 취향이 아니라면 그저 맛없는 음식이 될 테니 말이다. 이렇게 어떠한 문화에 스며든다는 것은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시간을 갖고 지내다 보니 이렇게 써서 못 먹었던 에스프레소를 여행했던 아침마다 곁들어 마시고, 지금은 모카포트를 이용하는 것을 즐긴다.
우리는 계획 없이 베로나의 일몰을 보고 다시 피렌체로 돌아가기로 하고, 계속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가득 있는 곳이 나왔다. 그렇게 사람이 많다는 것은 관광 장소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로나 시내에 줄리엣의 집에는 운명적인 사랑을 이루려는 이들로 가득했다. 줄리엣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운명적인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들 때문에 이 줄리엣 집은 정말 사람들이 가득했다. 베로나를 다녀간 사람들은 모두 사랑을 이루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사랑은 늘 우리의 삶에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사랑 때문에 웃기도 하고 눈물 흘리기도 하니까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줄리엣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며 내 사랑도 이루어지겠지 바랬을 텐데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베로나를 와서 그런지 사람 많았던 줄리엣의 가슴을 만지려고 줄을 서고 싶지는 않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난 줄에서 빠지고 싶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이 여유로울 수 있음을 느끼는 중이다.
어릴 때 불안했던 나의 사랑과는 다르게 서른이 넘은 내 사랑에는 편안함도 함께 있어 너무 좋았다.
우리는 또 걷기 시작했고, 그곳에도 사람들이 옹기종기 다리에 앉아있었다. 그 다리가 폰테 피에트라는 베로나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피렌체에 가장 오래된 다리 폰테 베키오와 비슷했다. 여기서 사람들의 여유로움을 엿볼 수 있었다. 피크닉을 즐기거나, 모두가 앉아 광합성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여유를 유럽 어딜 가도 자주 볼 수 있다. 모습들을 보며 한국사람들은 조금만 더 여유롭게 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빠르게 살고 있는 듯 해 조금은 애잔해지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참 여유로웠는데, 제주에 살고 있는 요즘도 분당에서 병원 다닐 때보다는 여유 롭지만 제주의 삶도 현실인 것은 똑같은 것 같다.
그 날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고 싶어 잠시 눈을 감았다.
쉽게 푸티쿨라로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는 있었지만, 높지 않아 우리는 걸어 계산을 올라 전망대로 향했다. 숨이 차 힘들 때쯤 언제 도착하지 할 때쯤 도착해 사이프러스 나무들 사이에 유럽의 집들과 어우러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마주한 유럽 커플의 키스신까지 아름다웠다. 자유롭게 맘껏 사랑하는 저 커플과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같은 거였으려나, 저 커플은 꼭 이별하지 않길 마음속으로 바라며 뷰가 끝내주는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산 피에트로 성 광장에 올라 일몰을 바라보았다. 해가 질 무렵이 되니 너무나 황홀해지는 순간이 나에게 찾아왔다. 베로나에서 본 일몰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베로나는 피렌체와 베네치아를 섞어놓은 듯한 생각이 들면서 내가 사랑하는 피렌체와 많이 닮아 있었다.
피렌체를 많이 닮아 우리에게도 너무 좋았던 베로나에서 우리 둘 사진이 남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옆집 작가 언니와 함께 동행했기 때문에 우리 둘 사진이 가장 많은 도시이다.
우리 둘은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예쁜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지금은 집에 인화되어 액자에 걸려있다. 이렇게 사진을 인화해서 보기 좋은 곳에 두니 그와 했던 여행이 더 소중했구나 싶다. 베로나가 피렌체를 닮아 너무 친숙하고 좋았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 좋은 점만 닮아가며 앞으로 지금처럼 잘 지내기를 바라본다.
추억은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나에게 주는데, 내 미래를 잘 살기 위해서는 현재를 더 많이 추억거리를 만들어 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