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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묵 Jul 24. 2023

[1화]세 번째 직장, 이번에도 계약연장에 실패했습니다

대리님 죄송하지만 나가주셨으면 합니다.

어느 때와 같이 똑같이 출근을 하고, 똑같이 점심을 먹으며, 똑같이 업무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오전에 무슨 일인지 밑에 있던 부하직원이 돌연 퇴사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실에서 면담 요청이 들어왔다.


"요즘 어때요 업무 하는 거?"

"네 들어온 지 한 달 밖에 안되어서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잘 익히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음... 다름 아니라 대리님. 회사에서는 이제 빠르게 결과를 내야 하는데 들어온 지 한 달이 지나셨는데, 결과물이 조금 아쉽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리님이 계시는 동안 두 명의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나갔어요."

"(아니... 내가 뭐 따로 한 것도 없고, 2주 만에 나갔는데 그게 내 잘못인가)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고민을 해봤는데요, 대리님 죄송하지만 나가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좀 당황스럽습니다. 저도 들어온 지 한 달 밖에 안 됐고 업무를 익혀가는 중입니다. 밑에 직원 분들이 나간 이유를 저에게서 찾는 이유도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당황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가주셨으면 합니다. 최소한의 예우로 이 달 말까지의 급여는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


부푼 마음으로 입사한 세 번째 직장. 입사 한 지 한 달 조금 남짓.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세 번째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잠깐 내 이야기를 해볼까.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4.5년, 직장 생활은 브랜드 마케터로 1.5년 도합 6년을 일했다.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일했을 때는 행사 스케치 촬영을 맡아서 일을 했고,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혼자 벌어서 먹고 살만큼은 벌었었다. 그러던 도중 2020년 2월 코로나 19가 터졌고, 아등바등하며 2년을 버텨보았지만 이전만큼의 벌이가 되지 못했다. 많은 고민 끝에 개인 사업자를 폐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인하우스 포토그래퍼 쪽을 알아보기보단, 지인이 추천해 준 회사에서 브랜드 마케터로 일을 하게 되었다. 시리즈 A투자를 받은 프롭테크 기업에서 일을 시작했고, 기존에 사진업을 하던 것과는 이질적인 부분이 많아 애쓰기 바빴다. 3천 초반으로 적은 연봉이었으나 꾸준히 고정급이 들어오는 게 좋았고 동료들과도 함께 일하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10개월 남짓 일하고 있던 어느 날 올 해까지만 계약을 하고, 따로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회사의 통보가 있었다. 회사의 경영악화도 아니었고, 인사 조정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수십 명의 직원들 사이에서 계약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일하다가 프롭테크 기업에 넘어와서 부동산 관련된 일을 하려니 아무래도 직무가 맞지 않기도 했고, 혼자 일하다가 회사생활을 처음 해보니 미숙한 부분도 많았을 터였다.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실업급여받으며 천천히 생각해 보면 될 일이라 생각했다.


퇴사 후 두어 달 정도 여행을 다녀오고 새로운 회사에 입사했다. 이번엔 미디어 프로덕션 회사였다. 지난 회사와 마찬가지로 브랜드 마케터로 입사했고, 중간중간 사진촬영을 하는 일이었다. 연봉은 이전 회사보다 낮아졌지만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배울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업무에 대해 꾸준히 공부했고, 회사에 있는 도서를 대부분을 읽었으며, 회사 사람들과도 원만하게 지내던 차였다. 내심 이번 회사는 당연히 수습기간 끝나고 계약하자 하겠지 싶었지만... 회사에서는 계약을 종료하자고 통보했다. 미디어 프로덕션에 '브랜드 마케터'가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고 나서 들어온 회사가 지금 회사였다. 이커머스로 과일을 파는 회사였고, 이전에는 브랜드 마케터 직무 자체가 나와 안 맞았을 수 있다는 생각에 프리랜서로 했던 포토그래퍼 직무로 들어왔다. 감사하게도 경력을 인정받아 사원이 아닌 대리직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연봉도 이전 회사에 비해 15% 인상해서 들어왔다. 기존 전임자분이 워낙 잘 촬영해 주셨던 터라 긴장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시간을 갖고 하면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한 달이 조금 지난 어느 날, 해고를 통보받은 것이다.




해고 뒤 남은 건 낮아진 자존감


해고를 통보받고 짐을 싸서 집에 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보통 회사는 인력이 부족하고, 채용이 어렵다고 해서 난리인데 나는 왜 수습기간까지만 일하거나, 계약을 연장하지 못하는 걸까?', '다른 또래 친구들은 번듯이 자리 잡아서 앞자리 연봉이 4를 찍고 있는데 나는 뭐 하는 거지?', '사회 구성원으로서 내가 제대로 일 할 수 있는 걸까?' 등등 나를 갉아먹는 생각들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다시 프리랜서로 돌아가기에는 그때만큼 일이 없어 걱정이기도 했고, 고정수입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정감이 달콤해 잃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생활에서 버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프리랜서를 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주변에서는 "너와 아직 잘 맞는 회사를 찾지 못해서야", "한 달 안에 뭔가를 판단하고 내쫓는 회사가 이상한 거야", "네 잘못이 아니야"와 같은 응원을 해주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성과를 내지 못하고, 회사에서 필요로 하지 않은 인재라는 생각이 괴로웠다. 이런 고민을 여자친구에게 자초지종 이야기 했다.


"조금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때? 네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 해보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충분히 생각해 보고 그다음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


여자친구의 말처럼 조금 시간을 가져보는 게 필요했다. 실업급여가 나올지 안 나올지 불투명한 상황에 (해고로 인한 실업급여는 분명 나오는 게 맞지만, 여러 복잡한 이유로 실업급여가 나올지 안 나올지 불투명하다) 언제까지 데드라인을 가지는 게 좋을지 생각했다. 내가 버틸 수 있는 통장 잔액, 고정지출을 따지고 나니 기준이 생겼다.


PLAN A (실업급여를 받지 못할 경우) : 2023.08.31까지 쉬고, 9월부터는 취업을 알아보거나 프리랜서 일을 시작한다.

PLAN B (실업급여를 받을 경우) : 2023년 동안 쉬면서 프리랜서 일을 시작한다.


두 기준이 생긴 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했다. 한 가지 분명하게 하고 싶었던 것은 실업급여를 받든, 받지 않든 한 달 동안은 취업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조급한 마음을 갖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저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충분히 고민해 보고, 낮아진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된 해고 후, 자존감 회복 프로젝트


앞으로 숱한 고민들을 헤집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다시 취업을 할까? vs 다시 프리랜서로 돌아갈까? vs 사업을 할까? 와 같은 고민일 수도 있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고 뭘 잘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지금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고민들이 시간이 지나 더 튀어나올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와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있을 것 같다는 것. 이유 모를 해고와 부당한 해고 때문에 자존감이 깎이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잘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글이 되기보다는 '저 사람은 세 번이나 연달아 계약 연장에 실패했다는데, 어떻게 극복할까?'와 같이 누군가의 궁금함을 자아내고, 또 그 궁금함을 말미암아 나를 찾아 나서는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시작한『해고 후, 자존감 회복 프로젝트』무언가를 찾아 나설 때까지 시리즈 물로 꾸준히 기록해보고 싶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으나,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 꾸준히 써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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