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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묵 Dec 16. 202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100만 원이 생긴다면

취향 없는 미니멀리스트의 취향소비 에세이

내 소비에는 취향이 없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월급을 받으면 50%를 저축을 해두고, 25% 정도를 고정지출로 사용한다. 나머지 25%로 일상을 살아가는데 취향이 없다 보니, 특히 돈 쓰는데 취향도 재주도 없다 보니 25% 금액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었다. 뭔가 더 써야 하는 날이 있다면 저축금을 줄이고 더 소비하는 달도 있지만 대체로 이 루틴에 맞게살아왔다.


그러던 도중 우연히 회사에서 보너스를 받아 100만 원이 생겼다. 월급도 부수입도 아닌 100만 원이 생기면서 이 돈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고민했다. 물론 저축을 해도 되지만 이 100만 원은 내 취향을 찾는데 쓰고 싶었다. 무작정 돈을 쓴다고 취향이 생길 것 같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갖고 있으면 꼭 필요한데(예를 들면 월세를 낸다거나, 교통비를 낸다거나 등등...)에 쓸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취향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취향소비프로젝트를 만들었고 프로젝트 규칙을 정했다.


<취향 찾기 소비 규칙>

1. 100만 원은 모두 사용한다.

2. 꼭 필요한 곳이 아닌, 여유가 있으면 사고 싶었던 것들 위주로 소비한다. (여기서 꼭 필요한 곳은 고정지출을 말한다.)

3. 돈을 다 사용한 다음에는 소비했던 것들을 정리하고 무엇을 느꼈는지 기록한다.


특히 2번과 3번을 정한 이유는 꼭 필요한데 소비를 하면 내 취향 단서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고, 여윳돈이 생기면 사고 싶었던 것들을 소비하고, 그것들을 기록하면 '내가 돈이 있을 때 이런 걸 구입하고 싶어 했었구나' 알 수 있을 것같았다. 그게 취향이라고 보긴 어렵겠지만 하나의 단서나 혹은 최근에 꽂힌 관심사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될 테니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생각 외로 돈을 쓰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하루면 다 쓸 것 같은 돈은 심사숙고 한 뒤 37일에 걸려서야 모든 소비를 마쳤다. (정확하게는 다 쓰지는 않았고, 어디에 쓸지를 정한 돈도 있지만...) 어디에 돈을 쓰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01. 캐나다 워홀비자 신청(비자신청비 약 36만 원 + 신체검사비 21만 원 = 57만 원)

이 돈은 아직 사용하진 않았고 선정될지 안될지도 모르지만, 캐나다 워홀 선정이 되면 사용할 돈이다. 비자 신청비 36만 원에 신체검사비 21만 원. 그러니까 총 57만 원을 워홀 신청 비용으로 빼두었다. 어떻게 보면 '꼭 필요한 돈'으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애초에 캐나다 워홀은 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었기 때문에 (물론 갑자기 돈이 생겼다고 워홀을 신청한 건 아니지만) '취향소비'로 분류했다.


캐나다 워홀을 생각한 건 올해 7월쯤이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앞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막차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볼까?'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많은 여행을 다녀왔고, 특히 올해 코로나로 멈춰있던 여행을 다시 시작하면서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를 깨달았다. 여행을 하다보니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서 진득하게 살아보며 여행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마침 캐나다가 2024년부터 워킹홀리데이 제한 나이를 35세까지로 하고, 1회에 2년까지 머물 수 있도록 한다는 소식을 듣고 여자친구와 같이 24년도 혹은 25년도 초반에 캐나다 워홀을 가보면 어떨까? 정도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사실 커리어나 여러 현실적인 이유를 대입해 보면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건 불리한 선택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보편적인 길을 걷기 위해 지금 나이에 워홀을 간다는 건 더욱더 불리한 선택이고. 가령 커리어가 중간에 끊긴다거나, 한창 결혼해서 내 집마련을 위해 돈을 모아야 하는 현실적인 루트에서는 멀어지지만 그것보단 인생에서 한 번쯤 해외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 나도 여자친구도 서로 반신반의한 상태이긴 하지만 무언가를 다 내려놓고 새로운 곳으로 나를 던질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기회라 생각하고 있다. 그 선택이 새로운 기회를 열어 줄 수도 있을 테니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과연 나는 끝까지 용기를 낼 수 있을까?



02. 애플워치 (12만 원)

최근에 '건강'에 관심이 생겼다. 잘 걷고, 잘 먹고, 잘 자는 그런 라이프. 그 세 가지만 잘해도 꽤 괜찮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하기 시작하며 건강하고 싶었다. 까닭에 이런저런 운동을 시작했고 지금도 1주에 3~4회는 운동하면서 지내고 있다.


처음 100만 원을 받았을 때 제일 먼저 사야겠다 생각한 것도 '애플워치'였다. 애플워치를 통해 내가 어떻게 운동하고 있고, 칼로리를 얼마나 소비했고 이런 것들이 기록가능하고 무엇보다 링을 완성하는 재미를 느끼고 싶었다. 무언가 목표가 생기면 그걸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사람이라 '매일 링을 완성하자'라는 미션이 생기면 자주 운동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연말이 되어서 링을 완성하지 못한 날도 많지만 그래도 애플워치를 사고 나서 운동량이 증가하고, 목표가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마인드를 갖는 게 12만 원 정도면 충분히 소비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애플워치는 꼭 좋은걸 살 필요는 없다 생각했고, 운동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한 '다짐'을 산 느낌이 커서 새 거보단 중고를찾았다. 당근마켓을 통해 애플워치 SE1을 12만 원에 구입했고, 지금도 잘 쓰고 있다. 다만 가끔씩 애플워치 차는 것을 까먹어서 기록이 아예 안 되는 날도 많다... 충전을 해야 하는 게 귀찮음으로 남아있기도 하고... 아으 귀찮아.

열심히 운동하는 요즘이 좋다!! 덕분에 하기 싫어도 PT를 나가거나, 수영을 하거나, 축구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애플워치 사고 살이 5키로 빠진건 덤!

3. 선물용 엽서제작 (12만 원)

회사 보너스로 100만 원이 생기기도 하고 연말이 다가오기도 해서, 회사사람들과 주변 친구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보너스 받았다고 맛있는 음식을 한 번 사는 건 아깝게 느껴졌다. 그 대신 내가 여행을 좋아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니 그동안 여행했던 풍경을 엽서로 남겨주는 게 더 많은 이들에게 줄 수 있고, 더 의미 있는 선물이 될 것 같아 엽서를 제작했다. 15장 1세트로 하여 총 80세트를 만들어 회사 직원 50세트, 주변 지인들 30세트를 선물하려 하고 있다. 보통 엽서를 제작하면 판매를 하기도 하는데, 이번 엽서는 수량이 조금 부족할 것 같아서 영리적으로 사용하기보단 비영리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용도로만 사용하려 하고 있다.


예전부터 그리 돈을 많이 벌지 않음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걸 좋아했다. 생일이 되면 작은 선물이라도 하려고 했고, 가끔씩 편지를 하기도 했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존재가 기쁨이 되길 바랐고 특히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누군가를 기쁘게 하면 그것만큼 기쁜 게 없었다. 연말에 사람들 만날 일이 많고, 특히 올해 새롭게 알게 된 사람도 많은데 그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면 좋을 것 같아 소비하게 된 비용.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사용한 돈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번에 뽑게 된 여행엽서들. 24살 부터 여행했던 나라들을 그러모아 그 중 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뽑아 만들었다. 나도 한 세트만 가져야지!

4. 전기면도기 (9만 원) + 스킨로션 세트 (7만 원)

의외의 소비로 여겼던 항목. 스킨로션은 거의 떨어져서 사긴 했지만 전기면도기는 사놓고 나서도 좀 의외였다.


조금은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3일에 한 번 정도 면도를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디 호텔에서 받은 면도기를 날만 씻어내 계속 쓰거나 사용한 지 좀 된 면도기를 날 교체 없이 쓰곤 했었다. 면도날을 매 번 교체하는 게 은근히 비싸기도 하고, 위생관념이 적어서 그런 것 일 수도 있겠다. 큰 불편함은 모르고 살았으나, 그럼에도 어느 한 구석에는 이래도 되나..? 싶었던 항목이다.


전기면도기도 제값 주긴 싫어서 당근 마켓으로 미개봉 신상품을 구입했다. 만족도는 최상! 자동으로 소독도 해주는 거라서 편히 쓰고 있고, 위생도 훨씬 나아졌다.


마찬가지로 스킨로션도 올인원으로 하나만 쓰다가 그래도 서른이 넘었는데 외모도 좀 신경 쓰고 싶어서 스킨, 로션, 립밤, 아이크림, 선크림, 마스크팩을 한꺼번에 구매했다. 사놓으니 외출할 때마다 잘 바르고 있고, 1주일에 한 번씩 마스크팩도 꾸준히 하고 있다. 20대는 진짜 관리를 안 했는데, 나도 이제 관리에 관심이 가는구나 싶었던 소비 항목.

이번에 새로 구입한 녀석들 초록색을 좋아해서 스킨로션은 모두 초록으로 맞췄다!

5. 색연필 세트(3만 원)

나를 위해 산 건 아니고, 여자친구에게 필요한 게 있냐 했더니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말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기뻐하며 그림을 이것저것 그리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연말 바쁨 + 회사 일 때문인지 손을 잘 안대는 것 같다. 이왕 사준 김에 나도 한 번 그림을 그려볼까 싶었지만 행동으로 옮기고 있진 않다.


처음 30만 원 정도는 비교적 쉽게 후다닥 구입했지만 이후에는 무엇을 사야 할지 고민이 많아(+마땅히 사고 싶었던 게 없었음) 100만 원을 다 쓰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돈을 다 쓴 이후에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 여윳돈이 있으면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여행이 단편적이라면 새로운 경험을 위해 돈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 최근에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운동에 관해서는 돈 한 푼 안 쓰던 사람인데 운동을 시작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 부끄럽지만 외적으로 자기 관리를 그리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여윳돈이 생기며 나를 가꾸는 것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단 옷과 같은 외적인 것보단 피부 쪽에 관심이 생겼다.

- 내 돈의 일부는 남을 위해 쓸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소소한 선물을 가끔씩 하길 원한다.

- 특히 가까운 이에게 더 선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다만 애인에게 쓴 돈이 적은 것 같아 미안하다. 수치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애인도 그 정도면 된다고 했지만 괜히 숫자에 신경 쓰게 된다. 의외로 남들에게 비치는 시선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라 느낀다.


위와 같은 사실을 새로이(혹은 알고 있었지만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잘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지면 된다고 한다. ‘요즘 어디에 시간을 쓰고 있느냐?’,’ 요즘 새롭게 하고 있는 퍼스널 프로젝트가 무엇이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즘 어디에 돈을 쓰고 있는가?’라고 한다. 소비는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다는 셈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100만 원이 생긴다면‘ 당신의 소비는 어디를 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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