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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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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차원 Jul 20. 2019

내가 처단한 게 악이라고 믿어왔는데,

모교가 테러 위협에 처한 날

이것은 지난밤 꾸었던 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말이 되지 않는 부분이 여럿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일어나자마자 시작한 타이핑은 두 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흐릿해지는 장면들을 붙드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전개와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적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주춤하며 떠나려던 발걸음을 멈춥니다. "개연성 없는 장면에 대해 자꾸만 맥락을 찾으려 하지 않을게요. 제발요." 하 서둘러 덧붙입니다. 그렇게 곁눈질하며 적었습니다.





장면 1.
모교가 테러 위협을 받아 학생들이 위험했다. 나는 테러 조직에 대항할 어떤 조직의 행동대장이었다. 학교에서 고용한 용병들에 더 가까웠지만. 모쪼록 때는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3학년들은 오늘 늦게까지 보충이 있다고 했다. 각 반의 문을 두드리며 어서 짐을 싸라고 소리쳤다. 그중 한 반에 들어가 교단에 서서 상황을 전달했다.
"얘들아, 오늘은 일찍 끝났어, 그러니까 빨리 짐 싸서 집에 가."
테러 위협을 언질 하면 난리 통이 뻔해 그저 일찍 끝난다고 말했던 건데 대부분은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신이 난 몇몇 아이들은 얼른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지만 공부를 제법 한다는 아이들과 친구들과 속닥이는 게 즐거운 아이들은 인상을 찌푸리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얘들아, 왜 안 가니."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그저 불퉁거리는 표정만 지었다. 내가 자기들의 시간을 방해한다는 게 정말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답답함, 그다음은 분노다. 날카롭게 언성을 높였다.
"야, 지금 여기에 강도가 들었어. 아주 죽고 싶어서 환장했지? 빨리 안 나가?"
신경질적으로 교탁을 발로 차 넘어뜨렸다. 그에 놀란 아이들은 부랴부랴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마저도 절반밖에 안 되는 수였다. 키가 작은 여자는 아무리 윽박지르고 발로 가구를 쓰러뜨려도 인간들에게 겁을 주기 어렵지. 지긋지긋하게 겪어봐서 잘 알고 있었다. 딱 봐도 뺀질거리게 생긴 남학생들은 책상 위에 올려둔 내 소지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도 남몰래 수능을 준비하던 터였다.
"선생님도 공부하나 봐요? 왜? 우리 쫓아내고 공부하려고 그러나? 왜 자꾸 나가라는 거예요? 위험하다는 증거 있어요?"
내 책을 들고 비아냥거리는 아이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자, 이제 위험에 처했으니 나갈 수밖에 없겠구나. 얼른 꺼지는 게 좋겠다."
그러나 죽음의 의미를 실감하지 못하는 아이는 시시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래, 그럼 너네들은 교실 문이라도 잘 닫고 있고 여기서 뒤지는 걸로 해. 후회 없는 선택이길 바란다."
열이 받았다. 선의를 무시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고집하다니. 붙잡아 앉혀놓고 설득을 할 시간도 없었다. 반을 나와보니 복도는 더 가관이었다. 누군가 테러 위협을 언질 한 것 같았다. 두려움에 서로를 밀치며 달리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들이 뛰니까 덩달아 내달리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사람을 밟고도 '아차'하는 표정 없이 뛰어가는 저 인간들. 아비규환 속에서 선을 행하고자 했던 마음에 혼란이 찾아왔다. 무엇이 선인가. 테러의 위협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지켜내고 싶었지만 정작 지키고 싶은 인간들은 몇 안 됐다. 내가 보호할 사람을 선택하고도 선이라고 우길 순 없을까. 몇은 그냥 여기서 죽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런 결정은 내가 하면 안 되나. 어쨌든 나는 고용조건에 따라 테러범들만을 죽여야 했다. 죽일 수 있는 권리는 돈이 주는 걸까. 테러범들은 모두가 악인가.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악은 용서해야 하는가.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도 완전한 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나저나 남을 밟고도 제 몸 하나 챙기겠다고 달려가는 저 인간을 잡아다 사과를 하게 만드는 게 선이 아닌가. 나는 애매한 얼굴로 계단 밑에 내려가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일층까지 부축해줄게. 같이 내려가자."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고 어지럼증만 있었던 모양이었다. 일층에 도착하자 아이는 꾸벅 인사를 하고 정문을 향해 절룩거리며 뛰어갔다. 선생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이 난장판에 아이들만 소란이었다. 일정한 크기 이상의 소음이 주기적으로 들리면 백색소음이 되어 귓가에 와 닿지 않았다. 비명은 전투의 웅장한 배경 음악 같았고 나는 천천히 내가 할 일에 대해 생각했다.

장면 2.
우리 편 누군가 테러범 측의 중요한 인물을 잡은 모양이었다. 적들에겐 내부에서 퇴각 신호가 내려졌다. 학교 내외에서 치열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나는 1층 복도 끝 모서리에 숨어 공격을 이어나갔다. 적들을 한 방에 죽이거나 반불구로 만들다 총알이 떨어지면 시체의 몸을 뒤져 무기를 구했다. 계단에서 내려오는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은 "그래, 내가 도울 일이라도?" 하고 물었고, 나는 "무기를 좀 모아주세요" 대답했다. 선생은 어쩐지 흥분한 얼굴로 자신도 전쟁에 낄 수 있는 거냐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자발적 참여까지 막으란 조항은 없었으니까.
"이런 건 돈 주고도 못하는 경험이잖아! 나도 언젠가 누굴 꼭 죽여보고 싶었거든!"
선생은 자기가 무슨 말을 뱉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신이 난 얼굴로 총을 들고 복도에 뛰어가 총알을 쏟아냈다. 때마침 옆에 선 동료가 그 장면을 보더니 열이 받았는지 들으란 듯이 크게 투덜거렸다.
"좆같은 새끼. 저걸 말이라고 하냐. 대체 우리가 왜 테러범만 잡고 있어야 돼? 저런 것도 같이 때려잡으면 안 되는 거냐?"
"그러게."
우리는 주요 테러범들의 얼굴만 알고 있었을 뿐 모든 조직원들은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은 영리하게도 모교의 교복을 입힌 또래의 아이들로 이번 조직을 구성했다. 나는 공격성을 띠거나 두려운 내색을 비추는 인간들을 적으로 간주해 공격을 계속했다. 학생들이라면 아까 그렇게 집에 가라고 방송을 했는데 날 못 알아볼 리가 없다는 게 판단의 기준이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인간들에게 총을 쏘고 폭탄을 투하했다. 지난한 공격에 피로했던 나는 실수를 연발했다. 그때 내가 던진 건 다름 아닌 조명탄이었다. 한 인간이 도망가다 말고 서서 나를 크게 비웃었다.
"이봐,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어휴, 무서울 뻔했네"
나는 돌연 어떤 광기에 휩싸였다. 저 새끼 하나만 조진다는 각오로 그물을 던졌고 바로 서있던 자리에 포박되었다. "왜, 또 눈 감고 있을까?" 끝까지 빈정거리는 저 면상을 피떡이 될 때까지 패고 싶다는 생각을 한 순간, 이게 학생임을 알았다. 집에 가라는 내 말을 안 듣고 까불거리던 아이였다. 더 큰 분노가 찾아왔다. 얘를 여기서 죽여도 어차피 그냥 실수였다고 하면 되지 않나. 아, 아니, 내가 인지조차 못한 실수. 우리가 걷다가 개미를 밟아 죽여도 그걸 모르고 살잖아. 그런 것까지 죄라고 하진 않잖아. 그런 거랑 비슷하게 둘러대면 되겠는데. 나는 몰랐다고.
"자, 이제 네가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잘 찾아봐."
운동장에 폭탄을 서너 개를 무차별적으로 던지고 돌아섰다.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는 적들의 모양새는 여지없이 우습게 다가왔다. 아등바등. 개미 같은 새끼들. 내가 던진 폭탄을 끝으로 사건은 마무리가 되는 듯하였다.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잔챙이들은 조사차 끌려갔다. 테러범보다 죽은 학생의 수가 더 많다는 건 학교 측에게 곤란한 문제였다. 그걸 누가 죽였는지 명확히 확인할 길이 없으니 우리에겐 다행이었다. 일이 끝난 후 남은 건 엄청난 피로 혼란이었다. 그간 내게는 돈을 받았다지만 궁금적으로 선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 과연 내가 처단한 건 악이었을까.

장면 3.
은사님의 퇴직 축하 파티 겸 오늘 사건 마무리에 대한 회식을 교무실에서 한다고 들었다. 그냥 들어가서 쉬게 해 주지. 벌써부터 무슨 공치사를 하겠다고. 우리야 병풍처럼 서 있을 게 뻔했다. 은사님은 계단에서 우연히 마주친 내게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아까 너 준 케이크 있지? 그거 가지고 오면 돼"
내가 전투를 치른 주역이라는 걸 알면서도 참 다정하기도 하지. 정말인지 은사님까지 한심하게 여기고 싶지 않았는데. 선생들은 대체 어디서 쥐새끼처럼 잘 숨어있었는지 너무나 단정한 모습으로 "다들 수고했어요" 하고 웃으며 걸어 나왔다. 물론 전투에 고용된 것은 우리였지만 그 과장된 평온함이 이토록 분한 이유는 대체 뭐였을까. 말씀하신 그 케이크가 어느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는지 너무 잘 알아서 나는 서둘러 학교 근처 빵집에서 하나 사 오기로 했다. 걸어서 15분 남짓이었다. 동료는 같이 가줄까 물었지만 괜찮다며 혼자 가겠다고 말했다. 지금쯤 교무실에서는 행동대장인 나에 대한 처리를 논하고 있을 터였다. 모든 걸 테러범 탓으로 돌리자니 학생들 사상자 수가 너무 많았고, 이것은 우리를 고용한 것이 실패한 대처로 논해져 학교 측에 큰 이미지 실추를 가져다줄 일이었다. 우리 중에서도 한 명쯤은 그 값을 치러야 했다. 살생에 눈이 멀어 그 대상을 분간하지 못한 죄. 매스컴에 오르내리기 좋은 타이틀이다. 옛날 기억을 더듬어 빵집을 향해 걸었다. 거리에는 먼지바람이 가득했다. 그 바람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아서 아이들은 스스로의 멋에 취해 킥보드를 타며 어느 캐릭터를 연기했다. 전쟁을 흉내 냈다.
'이제 평생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살아야 해. 멀쩡한 일상은 물 건너갔어. 나도 이런 일은 언젠가 그만 둘 생각이었는데. 이제 평범한 회사에서는 나를 받아주지 않겠지.'
걱정하면서도 그간 용병 일을 하며 처단한 악을 살인이라 부르지 않는 스스로가 놀라웠다.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모교의 교복이 보일 때마다 움찔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농도 짙은 피곤함에 고작 10여 분을 걷고도 다리가 뻐근해져 왔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더라. 길을 아주 잘못 들어온 것 같은데. 지금 다시 길을 찾아 빵집에 들렀다 교무실에 가면 어쩐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나보다는 케이크를 더 기다리겠지만 그마저도 "그건 그럼 다음에 또 챙기면 되지. 이만 일어나지."라는 말 앞에 주저 없이 가방을 챙길 테니까. 피곤하다.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만 같다. 그래서 길가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웠다. 내가 쓰러진 줄 알고 어떤 여자가 짧게 비명을 지르며 서둘러 달려왔지만 멍하니 눈을 깜빡이는 날 알아채고는 머쓱해진 얼굴로 제 갈 길을 갔다. 분명 하늘을 보고 있는데도 하늘이 어떤 색인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항상 꿈의 중간, 어떤 충격에 의해 현실로 돌아옵니다. 마무리를 지을 수 없다는 게 아쉬우면서도 한시라도 빨리 도망 나올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이 눅눅하고 찝찝한 기분. 불쾌하지요. 지난밤 나는 수백의 목숨을 앗아간 살인마였고 사람들이 이리저리 파편으로 흩날리는 건 참 우습게만 느껴졌습니다. 속으로는 세상 같은 건 얼른 망해버리라고 저주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세상을 구한다는 이념을 내세웠습니다. 대체 무엇으로부터 구하겠다는 건지. 그런 기이한 정의감에 취한 사람들은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세상을 선악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간은 완전히 선하거나 완전히 악하지 않다는 것이 곤란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보다도 강약으로 나누는 것은 어떻습니까. 선한 자가 악한 자에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위해 힘을 쓰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마저도 흑백논리나 다름없어 결과는 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르게 살고 싶은데 어떤 것이 바른 길인지도 좀처럼 가늠되지 않습니다. 참 희한한 꿈을 꾸었습니다, 지난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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