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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율 Aug 23. 2023

오펜하이머

 영화와 소설 (1)


주말, 햇볕을 피해 들어간 영화관에서 Christopher Nolan의 Oppenheimer를 보 나오면서, 최근 보았던 그 어떤 작품보다도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과학에 대한 일말의 환상이 엿보이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Manhattan Project에 참여한 과학자들에 대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조금 더 넓게는 원자 폭탄에 이르는 새로운 물리학을 발견해 나가던 당대 학자들에 대한 차분하고 편안한 시선이, 감히 그들의 후예를 자처하는 내게 감사하게 다가왔다. 


사실 어디 처음 보는 분들이 많은 곳에 가서 저는 물리학 일을 한다고 하면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아왔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흔히 "Opinion Leader"라고 할만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더 심했었다. 아직 젊다고 했을만 한 시절에는 "천재?"라는, 알고 보면 비아냥이 섞인 반응이 올 때도 많았고, 혹은 자기는 왜 과학을 멀리했는지 아무도 묻지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한다. 조금 더 일반적으로 과학자는 특히 물리학자는 괴짜이어야 한다는 편견은 왜 생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상상이 잘 안 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이상한 사람들에 대한 방어기제 일지도 모르겠다. (아닌가요? 대략 반사회적인 스스로부터 반성해야 하나요?^^)


Nolan의 이 영화에서는 구체적인 과학은 자제하면서도, 과학자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새로운 것을 발견하였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유럽에서 핵분열 현상을 발견한 소식이 전해지자 바로 실험실로 뛰어가 이를 재현해 보는 Ernest Lawrence의 모습처럼, 그리고 특히 그럴 리가 없다고 옆에서 참견하다가 실제 붕괴 시그널을 보여주자 다른 상상을 시작하는 이론가 Oppenheimer도... 


프로젝트 초기에 내부적으로 제기되었던, 핵실험하다가 지구의 대기 자체가 연쇄 핵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을 Edward Teller의 입을 통해 언급하는데, 이 계산을 들고 동분서주하며 Einstein에게, Bethe에게 물어보고 검증하는 Oppenheimer의 모습 역시 많이 낯설지 않다. 특히, 결국은 잘못된 계산이었을 터이지만, 그게 잘못됐다고 누구도 Teller를 폄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모두가 과학적 진실을 찾아가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간혹은 이렇게 새로운 길이 열리는게 과학이니까, 그리고 아무리 가능성이 작아보여도 그 걱정을 하는게 과학자이니까.


1960년대 반전/반핵 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에 "Mad Scientist"의 전형으로 알려졌던 이 Edward Teller에 대한 영화적 묘사들 차 단편적인 비난과 거리가 있다. 산스크리트어를 읽고, 굳이 6개월 방문기간 동안 배운 네덜란드어로 세미나를 하는, 일종의 르네상스맨에 가까웠던 Oppenheimer와는 달리 외골수에 가까운, 그래서 세상을 보기보다는 "기술"에 꽂혀 수소 폭탄을 상상하는, 어쩌면 더 과학자 Stereotype에 가까웠던 젊은 날의 그에 대한 시선 역시 차갑지만은 않다. 같은 무게의 TNT 보다 수천 배의 위력을 가진 원자폭탄을 만든 과학자들과 이를 또다시 수천 배 강하게 만들고자 했던 Teller를 이분법으로 나누어 윤리적으로 비난하려 하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굳이 왜?" 정도의 반응이랄까?




원폭투하의 성공을 프로젝트 멤버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리는 장면에서 가득찬 작은 강당은 젊은 에너지로 넘쳐난다. 세계대전의 중압에서 해방된 그들, 바깥세상은 아직 잘 모르고 있지만 그 종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스스로 아는 그들, 아직은 원자 폭탄이 그저 효율이 엄청난 신무기 정도로만 이해되고 있던 시기, 그래서 하루밤의 융단 폭격과 핵무기 하나의 파괴력을 동일 선상에서 이해하던 당시의 그들에게는,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모습이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열렬히 키스를 하고 있는 남녀와, 남들보다 조금 빠른 현실자각에 어둠 속에서 구토를 하고 있는 누군가를 비추어 준다. 모두 보통의 사람들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 감독의 배려일 것이다.


Oppenheimer는 이 강당에서 마치 전장의 장군인 양, 승리에 대하여 이야기하지만, 그리고 원래의 목표였던 독일이 아니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지만, 그의 내부에서 충돌하고 있는 과학의 욕구와 양심의 혼란스러움은, 그의 뒤에 있는 강당 벽의 미친 듯한 흔들림이라는 특이한 영화적 기법을 통해 전달된다.


일본에 투하될 폭탄들에 대한 태도에서도 그의 본모습이 무엇인지 상당히 애매하게 다루어진다. 트럭에 실려가는 fat man과 little boy를 아쉬운 눈으로 바라보는, 그 투하 과정에 대하여 조금 더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는 과연 당시에 무엇을 기대하고 원했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투하에 대한 Groves장군의 전언을 기대했지만 돌아온 것은 라디오로 전해진 트루먼의 대국민 연설을 같이 는 현실이었다. 그의 실망은 무엇에 대한 것일까? 그에게 합당한 대우는 무엇이고 이제 그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이었을까?


실제 역사와 달리 약간 각색이 된 것이라긴 한데, 종전 직후 트루먼과의 첫 만남특히 인상적이다. 원자력에 대한 전 세계적인 공조가 필요하다면서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언급하자, 트루먼 불같이 화를 내면서, 실제 투하를 결정한 책임과 그 무게는 온전히 자기의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를 내쫓는 장면이 있다. 다시는 저 울보(CryBaby)를 데리고 오지 말라는 말과 함께.... 이 마지막 말은 Oppenheimer가 듣는데서 대놓고 하지는 않았을 뿐, Truman이 실제로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장면에서 원자 폭탄이라는 거대한 힘에 대한 Oppenheimer우려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이를 통제하는 것 역시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이라 하는 실은 순진한 과학자를, 닳고 닳은 정치가였을 Truman은 금방 알아차린 것이고, 이 생각을 일거에 짓밟는 장면이다. 이후 어떤 방법으로 건 결국은 그에게 닥쳤을 정치적 폐기라는 운명을 예고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 그 전쟁을 끌고 나간 세계를 움직이는 힘 앞에서는, 그의 양심이라는 것이 아주 미미한 것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몇 년 후 궁지에 몰린 Strauss가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자기 덕분에 Oppenheimer는 그렇게 Trinity까지만 책임을 지어도 되었 강변하는데, 이는 Groves가 군사적인 일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Oppenheimer에게 하던 이야기와 결과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예와 멍에를 동시에 짊어지고 은둔하는 삶과 책임을 지고 미래를 설계하는 삶, 그 어느 쪽 정답일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 선택을 스스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일 뿐, 그리고 일단 열린 "핵"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되돌리 수 없다는 것이 세상의 잔혹한 현실일 뿐, 그에게도 그를 내친 정책가들에게도 선악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Atomic Energy Commission의 위원장이었던, 그리고 미국 정부에서 Oppenheimer의 영향력을 완벽히 잘라낸 Strauss 조차도, 악인이라기보다는 그저 스로의 열등감에 찌든 인물 그려낸다. 사실  세상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던 세기의 천재이면서 시대의 거인이기도 했던 이들 사이에서 열등감을 못 느꼈다면, 그들과 동류가 되길 기대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 아닐까?


Nolan은 그가 Oppenheimer를 적대시하는 계기를, 둘의 첫 만남에 그리고 그 직후 그들이 각기 Einstein과 스쳐가는 장면들에 함축하였다. Oppenheimer와 담소하던 Einstein이 당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이사장이었던 Strauss를  지나는 모습에, 그리고 자신을 겸손하게 소개하는 Strauss에게 "lowly shoe salesman" 이였냐는 Oppenheimer의 농담에,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지만 실은 깊은 상처를 받은 Strauss는 이를 모두 자신의 권위를 갉아먹으려는 그의 계획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의 행동에 본인의 모습을 투영하는, 일상에서도 흔히 보는 모습이다.


한참이 지난 뒤 Oppenheimer를 밀어낸 일이 빌미가 되어 결국 자신의 1958년도 상무장관 상원 청문회에서 낙마한 그에게 한 보좌관이 말하듯이, 이 두 거인은 그저 Strauss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을 뿐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Einstein과 이를 성공시킨 Oppenheimer는 모두 인류 문명에 자신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를 막 깨닫고 있던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핵실험이 대기권에 체인 리액션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초기의 우려가 과학자들의 순진한 걱정이었고, 진짜 문제는 인류가 이 새로운 병기를 어떻게 남용할지, 결국은 자신들이 인류에게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도구를 준 것은 아닐지를 이야기하고 있던 그들은 말이다. 원자력이라는 "불"을 넘겨준 이들, 현세의 Prometheus들은 인류가 과연 스스로를 불태우지 않을 수 있을지 걱정하기 시작한 것이고, 최소한 그 순간에는 Strauss의 자존감 따위를 배려해 줄 정신적인 여유는 없었을 게다.


어쩌면 이 진실 자체가, 굳이 "제독"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Strauss라는 인물의 상상을 벗어난, 오히려 더 큰 모멸이 되겠지만 말이다. 한편, 그가 스스로를 과대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면, 이는 Truman에게 겨난 것으로 묘사되는 Oppenheimer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러나 조금 다른 의미에서 적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가 막바지에 가면서 두 가지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Oppenheimer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소장이 되기 직전 Einstein 그와의 조우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이야기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그에게 상을 주고 칭송하겠지만, 이는 그 자신들을 위한 일이지, 당신을 위해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한다. Oppenheimer와 그의 동료들이 이미 Einstein에게 했었듯이 말이다. 수십 년 간 Einstein 자신이 겪어온 경험을 이제는 그가 겪을 차례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영화 초반에서부터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할 일을 한, 좀 나쁘게 말하면 뒷방 늙은이 취급을  것으로 묘사되는 이 세기의 천재가, 이제 막 자신의 일을 끝낸 또 다른 천재에게 알려주는 관조의 메시지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Oppenheimer의 폐부를 찌르는 대사는, 하지만, 아내 Kitty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미국 정부에서의 그의 영향력을 완벽히 소멸시킨 1954년 청문회의 끝자락에, Kitty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이 이 모든 모욕을 감내하면 그들이 당신을 용서할 줄 알았냐고, 착각하지 말라고..." 여기서 "그들"은 물론, 핵폭탄이라는 상상도 하기 힘든 폭력의 도래를 마주한 인류를 의미하는 것일 터이다. 다만, 이 모욕적인 청문회를 견디면서 이유가 있어서 이를 참아내고 있다던 Oppenheimer의 진짜 의중이 이것이었는지 그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특이한 모습이기도 한데, 그에 대한 서사는 철저히 타인의 입을 통하여 펼쳐진다. 그리고, 감독은 이런 이야기들이 과연 그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인지 아닌지 굳이 파고들지 않는다. 길 수 없는 것이 기정사실이었던 청문회에 들어가는 것도 판단의 부족인지, 혹은 Kitty의 말처럼 스스로를 순교자로 만들고 싶어서인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가 책임을 지고자 했다는 것이다. 처음 맨해튼 프로젝트를 지휘하려 할 때도, 수소폭탄의 제조에 어깃장을 놓을 때에도, 영화의 Oppenheimer는 명확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유대인을 핍박하고 전쟁을 일으킨 나치를 막아야 하는 당위, 그리고 세계 핵무기뒤덮이는 것을 막아야 하는 박함 말이다.


하지만, 물론 삶이 그리고 더더욱 세상이 누군가의 생각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로스알라모스엔 실제 소련스파이가 있었고, 원자폭탄은 처음엔 생각도 못한 아시아에 투하됐고, 소련은 단 4년 만에 미국을 따라잡았며, Teller의 슈퍼, 즉 수소폭탄은 결국 실현되었다. 종전 후 10년 간의 실망과 실패 사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를 행동하게 한 것일 터이다. 설혹 이기지 못하더라도...


아마도 이런 모습이 Prometheus라는 그에 대한 수사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일 터이다. 모든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시작한 일이지만, 물론 세상이 그렇게 단순할리는 없다. 다만, 이 생각에서 시작한 소위 deterence라는 개념이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일어난 전쟁들의 확전을 막은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고, 아직도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리라. Oppenheimer가 원하던 평화로운 세상은 아니었을지라도...




영화를 보면서 또 다른 놀라웠던 것배우진들다. Oppenheimer를 연기한 Cillian Murphy 본인도 최대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놀라운 연기를 을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이 영화를 사실상 반분한 Strauss역 Robert Downey Jr. 의 그 어두운 존재감 역시 계속 기억에 남는다.


사실상 "단역"에 가까운 역할들을 한 대형 배우들의 등장도 영화를 한층 더 깊게 했는데, 단 두 번 등장하는 Niels Bohr의 Kenneth Branagh, 후반의 반전을 열어주 Fermi의 조수 격인 David Hill으로 나오는 Rami Malek,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단 하나의 장면으로 Oppenheimer를 정리해 버린 Truman역의 Gary Oldman이 준 임팩트는 대단했다. 조연급에서 Groves역의 Matt Damon, Tatlock역의 Florence Pugh, Kitty역의 Emily Blunt, 어쩌면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평면적인 악역이라 할 수 있는 Roger Robb역의 Jason Clarke 등등, 웬만한 영화에서 다 주연이었을 이들을, 단역으로 조연으로 끌어 모을 수 있었던 Nolan의 각본과 제작력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영화의 가장 통쾌한 장면은, 의외로, 청문회 말미 증인으로 출석한 Kitty의 모습이었다. 청문회 내내 남편을 압박하고 조롱하던 그녀였지만, 그를 낙마시키기 위해 동원된 Roger Robb이라는 인물이 던지는 악의적이고 부조리한 질문들을 여유 있게 받아치고 뭉개버리는 Kitty에게서, 저렇게 믿음직한 내 편이 있으면 삶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훌륭한 각본의 힘이기도 하지만, Emily Blunt라는 출중한 배우의 힘이기도 하다.


Fermi, Raby, Feynman 20세기 물리학의 영웅들 물론 다수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전후 미국 이론물리학의 대부와도 같았던 그리고 맨해튼 프로젝트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던 Hans Bethe의 존재감이 조금 아쉬웠다. 물론 이런 드라마에서 이야깃거리를 주기에는, 너무나 학자였던 인물인지라... 한참 전, Cornell 대학의 가장 볼품없는 건물이었던 Newman Lab의 3층에서 이분과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데, 당시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자주 출근하던, 특히 간혹 나 같은 초짜 연구원들만 나오는 주말에도 보이던 그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Tom Conti가 연기한 Einstein의 경우엔, 그 인상이 너무 동네 아저씨처럼 표현이 된 것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사실 이런 양반들은 남아 있는 흑백 사진들만 보아도 그 안광이 지면을 뚫고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말이다.




이 영화는 20세기의 역사에도 물리학에도  빠질 수 없는 거인에 대한 솔직하면서도 어쩌면 가장 찬란한 헌사가 아니었을까? 그가 공산주의에 어떤 생각을 가졌건, Tatlock과 어떤 관계이었건, 어떤 거짓말을 했고, 어떤 욕심이 있었는지가 지금 후대에겐 중요하지 않다.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자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2차 세계대전이라는, 한 개인은커녕 대부분의 국가들도 감당할 수 없던 그 혼란 속에서, 해야만 했던 일을 해냈고, 그것을 스스로 업보로 삼았지만, 동시에 철저히 그 시대의 인간이기도 했던 Oppenheimer를 3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밀도 있게 담아낸, "역시 Nolan"이라는 말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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