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ip Pullman은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역시 아동 문학으로 분류되는 His Dark Materials라는 삼부작을 소개하려 하는데, 이 시리즈는 사실 영미권에서 Harry Potter시리즈에 버금가는, 그리고 한때 영국에서는 이를 넘어서는 판매고를 자랑하기도 한 작품이다.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라지만, 훨씬 더 어둡고 성숙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어른 독자들에게도 전혀 모자라지 않은 소설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또 다른 아동문학 시리즈인 C. S. Lewis의 The Chronicles of Narnia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 Narnia 시리즈는 총 7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첫 작품인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를 시작으로 이미 여러 편의 영화로 제작되어 상당한 흥행을 한 적이 있다. 이 원작에 대하여 잘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화된 첫 편을 본 어른들은, 보고 나오면서 묘한 기시감을 느낄 것인데, 이는 물론 이 시리즈의 상징적인 존재인 사자 Aslan 때문이다.
Lewis는 20세기 판타지의 원조이고 최고의 시리즈인 The Lord of the Rings의 저자 J.R.R. Tolkien과 같이, 학자이면서 동시에 소설가로 활동한 영국의 작가이다. 원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으나, 젊은 시절에는 무신론자가 되었다가, Tolkien의 영향으로 30대 초반에 다시 종교에 귀의하였다는데, 그 후 20년 후인 1950년대에 저술된 이 Narnia시리즈는 그의 이런 독실함이 절절히 묻어 나오는, 아이들을 위한 Christian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적인 메시지를 Narnia라는 판타지 세상을 통하여 상당히 성공적으로 풀어낸 경우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첫 권이 후반부가 되면, 그 의도가 너무도 확연히 보이기 시작하고, 독자에 따라서는 실망을 금치 못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거의 모든 권에서 이야기가 클라맥스로 치닫다가 허망하게 해소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물론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하는 결말에서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Pullman이 His Dark Materials을 집필하게 된데 있어서 이 Narnia시리즈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자세히 알기 힘들지만, 결과적으로 이 삼부작이 거의 모든 의미에서 Narnia시리즈의 대척점에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인 Narnia시리즈의 빤히 보이지만 동시에 효과적인 영향력에 Pullman이 불편함을 느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Pullman 스스로 Narnia시리즈와 그 저자인 Lewis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데, (비)종교적인 입장에서의 비판뿐만 아니라 이 작품이 보여주는 "여성"에 대한 혹은 인종적인 비하에 대하여도 대단히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혹시 Narnia시리즈를 읽었다면 Susan이 나중의 책들에서 사라지는지 것이 어떻게 설명되어 있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기독교와 천주교의 급진적인 일부에서는 그를 "사탄"으로까지 치부하기도 한다니, 그의 무신론적인 성향이 범상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His Dark Materials 삼부작의 첫 권인 The Golden Compass (이 첫 권이 원래 제목은 Northern Lights이다. The Golden Compass는 이 책의 미국판 제목인데, 지금은 이 제목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에서는 사실 어떠한 종교적 혹은 비종교적인 메시지도 발견하기 힘들다.
속세의 권력을 가지고 있던 과거의 천주교회를 상기시키는 Magisterium이라는 조직이 거대한 권력으로 묘사되지만, Tolkien이 했듯이 워낙 완벽히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다 보니, 독자들은 그저 이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있는, 동물의 형상을 가진 분신을 지칭하는 말인 dæmon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말인 demon와 같은 발음인 것이 초반부에 좀 묘하게 느껴지겠지만, 아이들을 납치한다고 소문이 나 있는 집시들,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마녀, 하늘을 나는 배, 무엇이라도 만들어내는 대장장이 철갑 곰 등, 어린이를 위한 판타지에서 기대할 만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문제는 이 첫 권의 마지막에서 발생하는데, 책의 초반에 잠깐 나왔다가 사라진, 그리고 이 첫 권에서 소위 "맥거핀" 역할을 하는, 그리고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거대한 권력에 맞선 선인으로 막연히 각인될 것이 틀림없는 Lord Asriel이 저지르는 충격적인 악행에서 책은 끝난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특히 정확한 상황 파악을 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린 것이 분명한 순진무구한 어린이 독자들은 그 충격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마지막 몇 페이지를 채우는 Lord Asriel과 악역이지만 신비롭기까지 한 Marisa Coulter의 대화,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Lyra, 특히 이 셋의 관계가 이때쯤이면 밝혀지는데, 각자의 길로 떠나며 마무리되는 이 장면의 낯섦은 도저히 어린이를 위한 문학에서 기대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사실, 이 첫 권은 Narnia와 비슷한 시기에 역시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이 마지막의 충격을 포함하느냐 마느냐가 아마도 초미의 관심사였을 것이다. 결국 영화에서 빠지게 되었는데, 모든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적당한 길이와 적당한 엔딩을 가지는 적당한 영화를 만들어야만 흥행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한 New Line Cinema의 결정이었다. 사라진 아이를 찾아 구출하는, 흔하디 흔한 할리우드 영화가 되어 버렸고, Pullman이 첫 권을 온전히 투자해서 이룬 세계관은 소설가의 원래의 의도와 아무 상관없이, 그렇게 의미 없이 소비되고 말았다.
소설을 기반으로 하였다가, 무능한 자본의 논리에 그 이야기의 진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흥행에도 실패한 수많은 경우의 대표 격인데,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가진 시리즈의 전체 영화화가 불가능해진 것은 이렇게 자본의 논리가 창작의 논리를 넘어선 이 지점에서 일찌감치 결판이 난 것이 아닐까 한다.
사실 한 편의 판타지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면 크게 흠잡기 어려운 영화였는데, 특히 Nicole Kidman의 Mrs. Coulter와 Dakota Blue Richard의 Lyra는 특이하고 매력적인 인물들이었다. 전 세계 티켓 판매도 3억 7천만 불로 나쁘지 않았는데, 문제는 그 수익 대부분이 "해외" 즉 미국이 아닌 나라에서 나온 것이라, 당시의 불리한 계약 상황으로 인해 New Line Cinema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결국 한 동안 잘 나가던 이 회사가 사라지는데 기여하게 되었단다.
원작을 읽고 나서야, 감독과 제작자들이 조금만 더 대담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겼을 뿐이다. The Lord of the Rings처럼 세 편을 동시에 촬영할 수 있는 환경이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궁금하다. 얼마 전에 BBC가 HBO와 함께 이 시리즈를 TV 드라마로 만들었는데 3편까지 완주를 했다고 하고, Warner Brothers에 흡수 합병되었던 New Line Cinema가 여기에도 참여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BBC덕분인지 영화에서와 같은 만행은 없었던 모양이다. 찾아보려면 어딘가 소위 OTT에 가입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런 일에 특히 게으른 작가가 머지않은 미래에 할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다.
하여튼, 이렇게 독자들을 완벽히 뒤흔들어 놓는 첫 권이 끝나면, 2권 The Subtle Knife에서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이는 곧 수많은 평행세계가 있음을 말해준다. 조금씩 힌트들이 더 뿌려지지만, 이 역시 준비 운동에 불과하며, 마지막, 3권인 The Amber Spyglass에서 펼쳐지는 진짜 이야기를 위한 떡밥 들일뿐이다. 무슨 이유로 Lord Asriel이 그런 악행을 저질렀는지, 그와 희대의 악녀 Coulter부인이 어떤 감동적인 최후를 맞게 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흔한 판타지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도대체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그런 진짜 이야기 말이다.
사실 문학적인 수준으로는, 좀 나쁘게 이야기하자면 종교적 팸플릿에 가까운 The Chronicle of Narnia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인물에 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마지막 충돌의 기대하지 못한 대형 스케일에서, 그리고 결국 파국과 종결을 이끌어가는 것은 다시 개개인이라는 점에서, 아동 문학이 이럴 수도 있구나 하고 놀라게 되는 이 삼부작의 성취는 The Lord of the Rings에 비견될 만하고 일견 유사하기도 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신, 천사, 사후 세계등을 이야기하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에 대한 오마쥬 혹은 차용이 적지 않다. 창세기에 따르면 노아 이전의 시대에 살다가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에녹의 이야기에서 모티브 하나를 가져왔고, 역시 창세기에서 그 정체가 가장 모호한 것으로 잘 알려진 다음의 구절에도 영향을 받은 듯하다:
When man began to multiply on the face of the land and daughters were born to them, the sons of God saw that the daughters of man were attractive. And they took as their wives any they chose. Then the Lord said, "My Spirit shall not abide in man forever, for he is flesh: his days shall be 120 years." The Nephilim were on the earth in those days, and also afterward, when the sons of God came in to the daughters of man and they bore children to them. These were the mighty men who were of old, the men of renown.
당돌하고 까칠한 여자 아이와 대장장이 철갑 곰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런 곳에 연결되는지 궁금하지 않다면, 독자께서는 아마 이 글 역시 읽고 있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여기서 이 시리즈의 내용, 특히 독자에 따라서는 1권의 마지막보다 훨씬 더 충격적일 수 있는 3권의 결말을 발설할 생각은 없다. 궁금하시면 일독하시라.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첨언하자면, 창세기의 내용이 한 줄도 빠짐없이 역사의 기록이라 생각되는 분들은 굳이 찾아 읽지는 않으시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