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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onica K Dec 22. 2020

유산 7,240원

화석 516

유달리 이놈의 동네만 발전이 멈췄다. 억세게 재수 없는 동네다.

볼일 없는 내 인생의 국도 앞에 가로수까지 쓰러져 있는 듯

30년이 지난 골목은 쌓인 쓰레기 더미와 무성한 잡초들만 나뒹굴었다.

한 발짝 도로 앞만 나가면, 빌딩의 옥상 꼭대기에는 디지털 시대와 4차 산업을 홍보하느라

광고판 문구들이 눈깔이 휘둥그레지게 번쩍거리는데, 이놈의 동네는

어찌 된 일인지 실망스럽게도 거지 나부랭이같이 너덜하다, 

비탈진 골목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다시 단발머리 먹먹한 중학생이 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무서웠다. 이층 마당까지 드리운 담벼락에 낀 늙은 소나무는 

잘려나가지나 않았는지 맨 먼저 궁금했다. 역시, 소나무 웃통은 잘려나가고 갈색에 가까운

늙은 몸통은 담벼락이 겨우 지탱해 주고 있었다. 


아버지는 퇴역군인 백수였다. 그러나 때깔 나는 백수이길 원했다.

아버지의 '품위유지비'를 지속적으로 상납하느라 엄마는

등꼴을 걸었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에겐 담벼락에 낀 늙은 소나무였다.

뜬금없는 자리에 낀 소나무, 제 역할을 못하는 소나무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며, 부러뜨릴 수도, 잘라내 버릴 수도 없는

버거운 소나무였다.  


소나무가 잘려 나갔다. 몸통은 색깔도 바래고

껍질도 벗겨져 예전의 기운은 소멸됐다. 내 기억보다 몸통이 얇았다.

또렷이 기억나 결코, 지워지지 않는 번지수... 철대문 옆에 대충 써 논 분필 글씨가 보였다.

1600의 516번지.



중학교 1학년인 나는 엄마가 없는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아니, 아버지만 있는 집이

무서웠다. 교회에서 기도하시느라 늦게 오시는 엄마, 그녀의 신앙심 앞에

내 눈물의 무게는 초경량일 뿐 그녀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주님이 항상 먼저였고 주님은 항상 승자였다.

아마도... 엄마도 아버지가 나처럼 끔찍하고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

퇴직금으로 마련한 고래 등 같은 이층 집은 어디에도 온기가 없었다.

농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는 우리 집 앞으로 후문이 나 있었다.

집 앞을 지나 골목을 내려가면 곧바로 버스 정류장이 나오기 때문에, 나의 하굣길은

언제나 농아들로 이중고를 겪었다. 수화로 피우는 대화의 꽃은, 그늘지고 은밀한 공간인

우리 집 대문 앞 다섯 개의 돌계단에서 내가 올 때쯤이면 만개했다.

바쁜 손놀림, 그러나 모퉁이를 돌아서야 대문이 나오는 구조상 나는 몇 명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리가 없었다. 이 좁고 냄새나는 길 모퉁이를 넋 놓고 들어설 때면

나는 이따금씩 소리를 칠만큼 자지러지게 놀란다. 하지만, 수많은 눈동자는 그저 

껌뻑거리기만 할 뿐, 두려움이 없다. 계단을 내줘야 집으로 들어가는데,

익숙해지지 않는 딴 세상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 강력한 손놀림은 열정과 분노와 실망으로 가득해 이따금 알 수 없는 공감이 내 두려움을 감싸주었다.

때로는 나도 거기에 앉고 싶을 만큼 분주한 그들의 얘기가 궁금했다.

사실 나는 그들보다 더 외로웠다. 잠시 농아들의 계단인 집 앞에 앉아 중학생인 나를 만났다.

그저 무서웠고 알 수 없는 슬픔과 공포가 늘 함께 했다.  제 자리에 있어야 할 그 모든 것들이 제 자리를 떠나는 순간 그것은 불안과 공포를 몰고 왔다.

그 시절 도둑이 든 담벼락의 철조망은 다 늙어 휘어져 있었다. 저 담을 타고 올라 와 2층 내방 창문을 연 그 도둑도 지금은 아마 저 철조망처럼 다 늙어 버렸을 거다. 죽었거나. 

모든 것이 추억이 아닌 기억으로 되살아 났다.

아버지는 이 집이랑 언제까지 살았을까? 우리가 떠난 뒤 얼마나?...

허리를 낮춰 철문 밑으로 눈을 집어넣었다. 잉어 몇 마리가 궁색하게 놀던 연못은

시멘트로 콘크리트를 쳐서 발라놓았다. 마당이 참 좁았다.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혹시나 장미가 드리워져 있나 다가가 보았다. 넝쿨이 보이지 않았다.

내 행복의 줄기 가 끊어지던 그 날, 옆집의 장미도 향기를 잃었고, 우리 가족이 궁색하게 놀던

이 곳의 작은 연못도 내 기억에 콘크리트를 쳤다.


나는 이층에 살았다.

우리 집이지만, 일층은 삼대가 사는 사람에게 세를 주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가 집을 샀다는데, 엄마는 기뻐하기는 커녕 부엌방에 와선

한없이 졸였다. 혹시나, 또 빚을 끌어오라고 할지 모를 일이라고 했다. 때아닌 반갑지 않은

선물이었다. 아버지는 그것으로 우리와 구구절절하게 꼬인 세월들을 퉁치려고 할 심산이었다.

어린 나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좋았다. 옆집 정원의 장미가 언제나 우리 집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 담벼락에 넝쿨채로 넘어왔다. 마치 우리 집의 정원처럼. 이리로 뻗어 내렸다.

국회의원이 사는 집이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어린 내 눈엔 어쩐지 귀품 있고 좋아 보였다. 정원을 잘 가꾼탓인지 오월이 되면 코를 찌를듯한

냄새가 우리 집 마당에 드리웠다. 이 곳을 찾아오기 전 나의 기억 속에선, 정원의 장미도

죽었고, 옆 집주인인 국회의원도 죽었다. 하지만, 죽지 않는 내 기억, 여전히 살아있을 아버지는

1600의 516번지 담벼락에 화석처럼 박혀있다.




P.S:  어느 날 공단에서 연락이 왔다. 당신의 아버지가 7.240원을 남기고 가셨으니 찾아가라는.

      그의 영원한 부재 통보가 마침내 도착했고, 더없이 건조하고 건조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그의 존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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