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 CON - DAY 02. fnt 이재민 디자이너가 보는 방식
5월 28일, '디자이너가 보는 방식'이라는 주제의 CA 컨퍼런스에 다녀왔다.
JTBC, 현대백화점, 명동 예술극장, 레코드페어 등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스튜디오 fnt 이재민 디자이너님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컨퍼런스는 이 세 가지 세션으로 진행되었는데, 이야기를 세션에 맞춰 딱딱하게 나눈 것이 아닌
이재민 디자이너님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도록 진행되었으며
'팀'으로써 바라보는 브랜딩 프로젝트, 개인이 진행한 공연 전시 등 다수를 위한 작업들,
소수를 위한 작업들을 진행하며 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 및 개인 작업물을 소개하면서
그 작업물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공유해주시는 자리였다.
스튜디오 fnt에 관한 소개로 첫 번째 세션을 시작했다.
스튜디오 fnt는 2006년부터 시작하였는데 처음엔 이재민 디자이너님이 혼자서 운영하셨으나, 혼자서 하기엔 벅차고 '여러 사람의 뷰'가 필요해서 2명의 파트너와 3명의 디자이너를 더해 총 6명으로 구성된 스튜디오로 운영하게 되었다고 했다. 팀원들이 채워져 여러 사람이 보는 뷰가 생기고 역할이 확장되면서 공연/전시 디자인부터 브랜딩 작업까지, 작업물에 대한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 같았다.
첫 번째 세션의 주요 포인트는 디자인을 하게 되면 우리의 작업물을 보는 사람은 불특정 다수이나, 그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상황과 브랜드를 고려하게 되는 교집합들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그 모두를 다 고려하게 되면,
엣지가 없어져 마모되고 둥글게 되어 어디에 넣더라도 다 들어맞는 디자인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처한 상황에 대한 교집합을 관철하게 되면 그 프로젝트에 맞는 포인트들을 찾게 된다.
라는 내용이 주요 포인트였다.
위 세션에서 자연스럽게 어떻게 보았는지를 이어서 설명하면서 브랜딩 사례를 소개하셨다.
그중 특히 더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자세히 공유하자면,
현대백화점은 '현대 = 컨템퍼러리'라는 브랜드 네임에 맞지 않는 다소 노후한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 이미지를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타사에서 브랜드 로고와 네이밍을 변경하기 시작하였으며, 스튜디오 fnt에서는 '새로운 로고'와 '현대백화점'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타사에서 진행한 로고는 세리프와 산세리프가 공존하는 sleek serif 형태의 'THE HYUNDAI' 영문 로고로,
이 로고와 현대백화점에 '기존의 현대와 새로운 현대가 같이 공존하는' , '백화점과 고객 사이' , '전통과 현대 사이' 등 두 개의 현대를 'Dual H'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부여하여 표현하였다고 한다.
아이덴티티를 심은 후에는 그리드 시스템을 설정하였고, 그 그리드 시스템 안에서 어플리케이션을 진행하였는데 슈퍼 사이니지부터 발레파킹 카드, 쇼핑백, 사원증, 선물 포장지까지 전반적인 오프라인 작업물의 디자인을 진행하였으며 다 Dual H 그리드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패턴을 넣어서 진행하였다고 한다.
그리드 시스템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두루뭉술한 부분을 구체화해줘서 브랜딩을 해야한다." 라고 하셨는데
그래픽 모티프 베리에이션이 명확한 근거 없이 진행되지 않게 시스템을 만들어 진행한 점이 인상 깊었다.
한 가지 더 인상 깊었던 부분은 '운영하면서 망가지는 영역을 어떻게 처음처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가이드라인을 내려주었다고 하시면서, 운영될 때 어떻게 운영할지(어떻게 워킹될지)를 처음에 잘 만져주면 그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오래 잘 유지될 수 있을 거라고 짚어주신 점 이었다.
브랜딩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fnt가 맞닥뜨린 환경은 fnt에서 만들지 않은 'THE HYUNDAI' 로고로
직접 만들지 않은 로고에 어떻게 아이덴티티를 부여할 것인가를 고민하였고,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포인트는 여러 가지를 담고 있는 '백화점'이라는 아이덴티티라고 했다.
현대백화점 브랜드 아이덴티티 : https://studiofnt.com/The-Hyundai
JTBC 브랜드 아이덴티티 프로젝트는 현대백화점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타사에서 만든 로고를 가지고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는 프로젝트였고, 기존의 로고는 정해진 컬러는 있지만 모티브로 삼을 형태가 없었어서 적용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존 JTBC 로고의 anatomy를 네 개로 나눠서 형태를 만들었고, 형태가 생기니 운동성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그렇게 생긴 오브젝트에 '드라마, 예능, 교양, 뉴스' 라는 아이덴티티를 부여했고 그 그래픽 모티브로부터 확장하여 어플리케이션에 반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JTBC와는 2012년부터 3년 정도 같이 일을 했는데, 2013년에 Set-up을 했고 2014년에 Tune-up을 하며 꾸준히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개발해왔다고 한다.
2013년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오픈했을 때에는 좋은 반응을 얻기 위해 레드닷같이 유명한 어워드에도 출품하여 디자인 가치를 높였다고 한다.
2014년에는 스포츠 카테고리가 추가되면서 하나의 오브젝트가 더 추가되었으며, 단색으로 나뉘어 있던 컬러를 콤비로 설정하는 등 브랜드에서의 니즈가 생겨 오브젝트와 새로 생긴 컬러 가이드, 모션을 이용한 화면들, 연령고지 화면 등에 디자인을 적용하였고 지금까지 잘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이후에 생긴 JTBC2 채널은 합쳐지고 + 쌓이고 + 펑 터지는 오브젝트와 모션들을 적용하여 예능 채널인 2채널이 가진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려고 하였으며, JTBC3 채널과 JTBC GOLF 채널은 스포츠 채널로, 활동성 있는 오브젝트와 컬러, 모션으로 스포츠 아이덴티티를 표현했다.
물건을 만든 사람(디자이너)이 있으면 쓰는 사람(클라이언트)도 잘 써야 하는데, JTBC는 그걸 잘 쓰고 개발하는 클라이언트 중 하나였다고 한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브랜딩은 전시 관련 프로젝트 중 가장 흥미로웠다.
프로젝트 진행 시 먼저 전시 내용을 파악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고 전시 내용이 어려워서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전시 설명들에서 나온 포인트가 되는 단어와 문구를 파악하여 시각화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았고 거기서 무대, Grid, 유령 등 시각화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 진행했다고 한다.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포인트는 2D인데 공간감을 부여하고 싶어 시차 스크롤 (Parallax scroll) 처럼 텍스트 위에 이미지가 띄워져 있는 느낌으로 운동감 있게 표현하려고 했고, 실제 웹사이트에도 시차 스크롤을 적용하여 전시의 기대를 높였다는 점이다.
2D 작업물이지만 공간이기 때문에 더 풍성하게 표현하려고 '아이덴티티' 에 '시차 스크롤'을 차용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재민 디자이너님의 개인 작업물들을 보면 어디서 영감을 얻고 어떤 경험을 통해 작업물이 완성되었는지 궁금했을 때가 많았는데, '보는 방식의 진화' 세션에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개인의 취향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8-90년대 일본 버블경제 때의 시티팝, 레트로 무드의 일러스트 등과 게임 팩 등을 소개하셨는데, 어린 시절 경험한 앨범과 게임의 다채로운 디자인, 다양한 경험들이 쌓여 그게 그의 그래픽 작업물의 근간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처럼 다양한 경험들이 쌓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캐치하는 눈썰미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경험을 해도 얼마나 잘 흡수하느냐에 따라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것처럼.
마지막 세션을 들을 때 '브랜드 경험'과 '사용자 경험'에 대한 경계가 부드러워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재민 디자이너님은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소비하기도 하는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에
자신이 봤을 때 편하고 좋다고 느낄만한 포인트 들을 캐치하고 그걸 작업물에 넣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 예로, 많이 꽂혀있는 LP판을 digging 할 때 일일이 꺼내보지 않아도 타이틀을 보고 바로 고를 수 있도록
LP앨범 아트웍 시 타이틀의 위치를 상단에 두는데,
그런 부분은 그가 만들기도 하고 사용해보기도 하면서 얻은 경험들이 반영되어 사용자가 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와 편의를 느낄 수 있어 많이 공감되었다.
우리의 작업은 보편적인 다수에게 보여질 때도, 특정한 소수에게 보여질 때도 있다. 보는 대상과 주제의 맥락(Context)을 생각하면서 문제를 발견하고 답을 찾는다. 팀으로 함께 보는 것 혹은 개인이 바라보는 것을 반복하고, 객관과 주관의 초점을 조절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보게 될 상을 그린다.
- 이재민
출처 : https://www.cabooks.co.kr/seeing_2
위의 이재민 디자이너님의 말처럼, 프로젝트의 맥락을 파악하여 모두가 디자인에 참여할 때도 있고,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소수만을 프로젝트에 참가시켜 그들만의 교집합을 가지고 또 다른 기하학적인 교집합을 만들어 프로젝트에 맞는 디자인이 나올 수 있도록 할 때도 있었고,
(기업이 아닌) 작은 단위의 작업물들은, 공감이나 취향의 문제가 있고 ‘이재민’ 이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프로젝트는 그 점을 동의할 수 있는 클라이언트와 함께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세 가지의 기조를 기본으로, 맥락을 파악하고 프로젝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일은, 내 생각보다 더 디테일한 뷰로 프로젝트를 바라볼 때만이 조율이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재민 디자이너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질의응답 시간까지 계속 느낀 건
그는 보는 뷰를 넓으면서도 디테일하게 보는 훈련을 평소에도 꾸준히 하여 디자인 근육을 키워왔고,
그것이 마치 악기 연주자가 악기를 연주하듯 자연스럽게 몸에 체화되어
그가 진행하는 모든 디자인 과정에 녹아들었겠구나 하는 점이었다.
때때로 보는 뷰를 한정 지어놓고 내 프로젝트와 관련된 레퍼런스만 찾는다던지,
보는 것 자체를 '일' 로 치부해버려 시야를 예민하게 다루는걸 게을리했을 때
나에게 주어진 다양한 기회들을 잘 수행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평소에 내가 어떻게 보느냐, 어떤 흐름을 유지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달라진다.
그 보는 뷰를 인식하며 디자인 근육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컨퍼런스였다.
이재민 디자이너님과 스튜디오 fnt의 작업물은 사이트에서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