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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전드 박편 May 11. 2020

싱어송라이터 조규찬의 겨울편지

취재 : 사운드캣 출판편집팀 레전드매거진

"벱베베베 베이베 기억하나요 벱베 마 베이베~" 


이 노래를 CD 플레이어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해서 들으며 그의 감성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자 했던 시절이 있었다. 벌써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니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을 시간이지만, 여전히 그의 노래는 감미롭고, 사랑스럽다.



안녕하세요. 싱어송라이터 조규찬입니다. 외투 사이로 찬 공기가 스미는 겨울의 한가운데서 여러분께 근황을 담은 짧은 편지로 제 안부를 전합니다. 저는 작년 7월부터 월에 하나씩 디지털 싱글을 발매하고 있어요. 오전 시간에는 생방송으로 9시부터 11시까지 KBS2 라디오에서 <매일 그대와 조규찬입니다>를 진행하고 있고, 경희사이버대학교의 전임교수로도 출강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겨울밤은 과거의 어떤 기억 속으로 우리를 안내해주는 것 같아요. 잠시 머무르고 싶은 소중한 순간들을 불러오기도 하고, 아픈 기억들과 마주하며 우리의 살아온 나날들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하죠. 저에게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입니다. 음악을 하시는 아버지께서는 늘 큰 상을 펴놓고 ‘총보’라는 악보를 그리셨고, 꼬마인 저는 그 곁에서 온돌 바닥에 엎드려 만화풍의 그림을 그리다가 잠이 들곤 했어요. 어쩌면 보랏빛 하늘에 어둠이 짙게 내릴 때까지 악보 위에 펜촉이 서걱서걱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나른하게 잠들었던 겨울밤의 기억들이 그때부터 제 안에서 음악적인 정서로 조금씩 자라났는지도 모르겠어요.


미대 지망생으로 서양화를 전공하기 위해 화실에서 종일 그림을 그리다가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면 아버지가 작곡과 편곡을 하실 때 사용하던 기타를 품에 안고 서툴게 연주하며 습작들을 만들었어요. 손이 꽁꽁 얼 정도로 추웠고, 새까만 어둠과 냉기가 방 안 가득 스며 창에 김이 하얗게 서리는 밤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순간순간의 주체 못 할 감정들을 담아 써 내려간 저의 노래들과 라디오를 통해 들었던 음악들, 없는 용돈을 고이 모아 샀던 LP앨범들. 유년기에서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의 겨울밤은 그런 기억들로 남아있었어요.



미술학도였던 제가 직접적으로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1989년도에 열린 제1회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였어요. 작은 형이 저에게 대회에 나가보라고 권유하기에 고등학교 때 만든 ‘무지개’라는 곡으로 2차 예선까지 합격한 후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된 본선 무대에 올랐어요. 난생처음 오른 큰 무대에서 금상, 지금으로 치면 대상을 받은 뒤 저는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술은 저의 삶이었지만, 음악은 이와 동등하거나 어쩌면 더 큰 무게감으로 늘 제 곁에 있었어요. 저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고, 슬픔과 아픔을 달래주고 안아주는 안식처였죠. 마음에 찾아오는 추위와 외로움으로부터 음악이 늘 저를 지켜주었기에 어렵사리 그 시기들을 넘어갈 수 있었고, 그래서 계기가 왔을 때 저 또한 음악으로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는 길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딛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크게 변한 게 없지만, 음악에 접근하는 마음은 조금 달라진 것도 같아요. 그때는 잘 몰랐기에 더 용감했고, 두려움이 없었거든요. 남들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았고, 제 음악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반면 지금은 한 가지 아이디어에 대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음악적으로 타진해볼 때가 많아요. 대중음악가로서 듣는 사람의 입장도 생각하고 있지만, 이에 앞서 창작자로서의 주체가 상실되지 않는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죠. 어쩌면 조금 더 영리해졌다고도 할 수 있을까요?

겨울 추위가 아무리 매섭다 한들, 마음에 찾아오는 추위만큼 무섭지는 않을 거예요. 지금도 가끔은 제 마음에 추위가 찾아오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음악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마음의 추위로부터 늘 저를 지켜주고 있다는 거예요.

지금부터는 인터뷰를 통해 음악에 대한 저의 생각과 라디오 디제이를 하며 느낀 점 들, 그리고 제가 살아온 혹은 살아갈 나날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이 글이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추운 겨울밤 먼 길 걸어 찾아온 반가운 손님과 마주 하는듯한 따스함으로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음악


Q. 뵙게 되어 너무나 반갑습니다. 좋아하시는 영화 한 편, 책 한 권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며 인터뷰를 시작해볼까요?

영화를 먼저 말씀드리자면 조디 포스터 주연의 1997년작 <콘택트>를 참 인상 깊게 봤어요. 영화 내용은 이래요. 1936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내보낸 올림픽 중계방송이 지구로 다시 수신되었는데, 그 프레임 사이에 수만 장의 디지털 신호가 담겨 있었어요. 해독해 보니 은하계를 왕래할 수 있는 운송 수단을 만드는 설계도였고 전 세계가 이 일로 인해 떠들썩해 지죠. 영화의 메시지를 삶에 빗대어 보니 우주와 세상과 삶은 반드시 정해진 일상과 주어진 제도권 하에서만 바라볼 문제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이를 초월하는 새로운 시각과 시선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에서 인간의 탐구영역이 지구로 한정되어 있다가 우주로 넓혀지는 것처럼요.


평소 책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밤의 원숭이>라는 단편 소설집을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삶에 대해 너무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가 에피소드 전반에 녹아있어요.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비관적인 시선으로 볼 필요 없다. 단순해지자. 있는 그대로의 것들을 인정하자. 하고 싶은 일은 세상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이런 생각들을 했어요. 단편들도 물론 마음에 들었지만 특히 서문이 좋았습니다. 서문에는 이런 내용이 있어요. 우리 안에는 우리 나름대로 어떤 이야기를 떠올릴만한 필연성이 깊은 숲 속에 숨어있는 들쥐처럼 존재한다는 것. 그 들쥐의 생각까지 우리가 전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우리들 나름대로 삶을 즐기고, 들쥐는 들쥐 나름대로 재미있게 살면 된다는 것. 책 전체를 관통하는 세계관이죠. 반드시 타자를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자기 삶을 살아가면 된다는 거요. 그런 생각들이 제 삶을 좀 더 여유롭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Q. 음악가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시나요?

두 시간 동안 진행되는 짧은 인터뷰 안에서 음악이나 음악가에 대해 온전하게 정의하는 건 제가 아닌 누구라도 하기 힘든 일일 거예요. 이야기할 수 있는 범위도 너무 방대하고, 평가 기준조차 무수히 많기에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음악가란 음과 박자, 악기의 소리, 보컬과 음향장치들을 활용해 누군가가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재미를 보여주는 존재에 가까운 것 같아요.


하지만 표현 자체에만 너무 매몰되다 보면 대중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게 될 수 있어요. 그래서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죠. 음악을 하는 것의 출발점은 즐거움을 찾는 데에 있잖아요. 내 삶이 즐거워지기 위해서 음악이 필요하다면 사용할 수 있고, 방해가 된다면 음악을 잠시 멈춰도 괜찮아요. 저는 쉴 때는 음악을 전혀 듣지 않아요. 음악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곡에 대해 분석을 하게 되거든요. 완전한 침묵 속에 저를 맡겨두는 것은 커다란 휴식이자 재충전의 시간이 되곤 한답니다.


Q. 싱글 앨범의 아트워크가 참 독특해요. 직접 작업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나요?

수채화 물감, 목탄, 오일, 아크릴 등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재료가 참 다양하잖아요. 저는 그중 연필과 파스텔만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원래 앨범 작업에 쓰이는 작업물들은 대게 디자인적인 측면이 강해서 전문적인 기능을 필요로 하기에 어딘가에 맡길까도 잠깐 생각해 봤었지만, 제가 한곡씩 발표하는 활동의 주목적이 사업적 이득을 취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디자인적 측면이 강조되는 커버를 쓰는 건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어요. 작업을 직접 하다 보니 그림 한 점을 완성하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물감을 사용할 때처럼 넓은 면을 한 번에 칠할 수도 없고, 얇은 연필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밀도가 높아지는데 명도 단계를 내기 위해 어둠을 표현하려면 얇은 선을 여러 번 겹쳐야 하니 작업 하나하나에 엄청난 시간이 들어가죠. 그래도 직접 하고 있어요. 아트워크도 제 음악 범주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전부 다 제가 그렸어요.


Q. 정규앨범을 발매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작년 7월부터 지금까지 발매한 디지털 싱글들을 모아서 정규앨범화 하려는 계획이 있어요. 그런데 아직 못 하고 있어요.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못 하고 있습니다. 사비를 들여 제작비에 투자하고 일정 수량 유통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시다시피 현 음악시장에서 하드카피 유통의 범위는 굉장히 제한적이잖아요. 또 발매 수량에 대한 고민도 있습니다. 앨범을 찍어내는 최소 단위에 맞출 자신이 없어요. 조금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발매해서 제 주변인들과 저와 관계된 일부 사람들만 소비하는 것이 음악 산업 시장에서 하나의 행위로 인정될만한 일일까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제가 9집 앨범을 발매한 뒤 일리노이 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는데, 다녀오고 나니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어요. 앨범을 내서 최소한의 결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일단 그 음악이 알려져야 하는데 지금의 음악시장에서는 음악이 알려지기까지 기회가 상당히 제한적이에요. 앨범을 일정 수량 제작하여 공연과 온라인으로 판매한다면 최소 수량을 소진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큰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음악 앨범 자체의 소장가치로서 구매하는 하드카피의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된 상황이니. 너무 냉소적이었나요? 물론 지금은 이런 생각으로 주저하고 있지만, 또 모르죠. 내년에는 생각이 바뀌게 될는지도.


Q. 발표하신 작품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앨범은 무엇인가요?

1집이요. 그때는 두려움이 없었어요. 자신감 넘치고 자존감이 강했던 젊은 날의 제가 남긴 무모한 지문들이 곡들의 행간에 잔뜩 묻어있죠. 의도였던 그렇지 않았건 음악적인 꾸밈이 덜한 날것에 가깝다고 할까요. 예를 들자면 전시장 조명 아래 덩그러니 놓인 커다란 원석 같아요. 만약 지금 그 원석을 놓는다면 마감처리, 디스플레이에도 신경을 많이 쓰겠죠. 하지만 그때는 그런 게 없었어요. 그래서 음악적 꾸밈이 덜하고 조금은 비어있는 1집 앨범에 애정이 많이 가요. 그리고 당시 만든 곡들을 통해 그 시간들을 가장 선명하게 추억할 수 있잖아요. 만약 앨범을 발매하지 않았다면 그때의 저는 지금의 제게 빛바랜 사진 속 희미한 얼굴 정도로만 남았겠죠.


가끔은 이론을 알고 나니 더 갇혀버리는 듯한 기분을 느껴요. 이론의 세계는 끝이 없잖아요. 지평선 저 너머 세계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되었는데 내 손과 내 발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드는 것 같아요. 반면에, 이론의 힘을 빌리면 내가 의도할 때 원하는 것을 만들 수가 있어요. 가령 슬픈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슬퍼하고, 괴롭고, 초췌해진 마음으로 곡을 쓸 필요가 없어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 밥도 잘 먹고, 컨디션도 좋은 상태에서 작업실에 앉아도 똑같은 결과를 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 때문에 감성에 대한 소중함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무감각해질 까 봐 경계하고 있어요.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감성의 소중함을 잃어버리는 건 조금 슬프잖아요. 이론은 표현에 대한 정립인데, 유학시절에는 제가 해왔던 것들과 나의 표현이 어떻게 정립되어 있는지를 규명하는 데에 집중했어요. 지금은 이론으로만 음악을 만들지 않는 서정성과 스토리텔링을 펼쳐놓고 그 위에 표현을 얹어가는 일들을 조금씩 실행해가는 단계인 것 같아요.



매일 그대와 조규찬입니다


Q.  라디오를 진행한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진행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언제였나요?
얼마 전에 1주년을 맞이했는데 마침 제가 올해 데뷔한 지 30주년에 접어들어 청취자 분들이 겸사겸사 저희 스튜디오에 방문해 주셨어요. 정성스레 준비해온 선물과 꽃다발을 들고 생방송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축하해주셨죠. 그분들 통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온기 넘치는 일인지 오랜만에 느껴봤어요. 음.. 그리고, 제가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성대모사를 한 적이 있었어요. 제가 봐도 애매하고 어색했거든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런데 청취자분들이 커뮤니티에서 재미있다며 웃어주시는 거예요. 어린아이 재롱부리는 거 흐뭇하게 봐주시는 듯한 느낌도 들고. (웃음) 그런 순간들이 참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남아있겠죠.

Q. 진행자로서 라디오라는 매체가 지닌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라디오의 매력은 소통에 있어요. 전파 너머에서 만나는 불특정 다수 분들과의 시간이다 보니 저 혼자 일방적으로 마이크 앞에서 주절주절 떠드는 것보다는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활자로나마 전해드리면서 청취자 여러분 사이의 소통에서 어떤 중간자가 되는 것이 진행자의 역할인 것 같아요. 또 그 역할을 통해 제가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나 저에게 오는 일들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배우기도 하죠. 그렇게 매일 배워가고 있어요.

Q. 생방송을 진행하실 때 돌발 상황이 생기지는 않나요? 어떻게 대처하세요?
그럴 때는 사람에게 기대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프로듀서, 작가, 엔지니어, 그리고 청취자에게 기대는 거예요. 나의 말재주로 순간적인 재치를 발휘해 돌발상황을 전부 수습하고 처리할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더 큰 실수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보다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믿음 하에 이들에게 기대어 가면 마치 물의 흐름에 편안하게 몸을 맡겨 배영을 하듯 그 상황을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어요.  

Q. 선곡이 중요할 것 같은데, 조규찬 님만의 선곡이 있나요?
진행자가 되기 전 가장 처음 한 일이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적는 거였어요. 80년대 뉴웨이브, 프로그래시브 락, <폴리스>, <레드 제플린> 등 좋아하는 음악 장르와 아티스트들을 쭉 적어서 리스트를 드렸어요. 그렇게 드린 뒤 제가 직접 선곡을 하지는 않고, 프로듀서에게 맡기기로 했어요. 저는 진행자로서 그곳에 있는 것이지, 제 음악적 취향을 방송 스태프나 청취자에게 전달하는 게 목적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갈등의 소지가 없어요. 또 워낙에 제작진이 선곡을 잘하시고 청취자의 마음을 잘 캐치하며 다양한 취향들을 끌어안고 계시죠. 작가분께서도 저를 잘 파악하고 계셔서 모두가 한 가족 같아요. 사람들에게 기대고 맡기며, 방송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어요.



현시대 대중음악인의 삶


Q. 한 발 먼저 걸어간 선배로서 현세대 음악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먼저 시작하면 선배고, 나중에 시작하면 후배라지만 음악적으로만 보자면 선후배는 없다고 생각해요. 말인 즉, 후배들에게 어떤 음악을 하라고 이야기하는 건 성립되기 어렵다는 거예요. 뛰어난 음악인들이 정말 많아요. 우연한 기회가 생기거나 혹은 방송을 하면서 젊은 음악인들의 음악을 듣게 될 때면, 연주도 잘하고 편곡도 잘하고 사운드도 잘 내고 노래도 너무 잘해서 감탄하곤 해요. 그런데 사실 너무나 완벽해서 조금 추울 때가 있어요. 약간의 빈 구석과 못난 구석이 있으면 어떨까. 본질 그대로를 조금 더 내비쳐주면 어떨까 싶은 거죠. 이건 그저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선배로서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요즘 음원시장 참 어렵죠. 생활도 어렵고 그러실 거예요. 어떤 선배들은 우리 때는 좋았는데 너희 땐 힘들어서 참 안됐다고 말씀하시기도 해요. 그런데 전 거기에 마냥 동의하지는 않아요. 어느 시절에나 젊은 음악인들은 힘들었고 결핍이 있었어요. 다만 그 결핍이 때로 아이러니하게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되기도 하죠. 결핍을 당연시하고, 체념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혹시라도 너무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좌절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차라리 지금의 현상에 대해 냉소적이건 긍정적이건 관찰자로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해요. 상황이 이렇고, 시장은 이렇다. 이런 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모든 걸 뭉뚱그려서 음악 하는 건 너무 힘든 거고, 먹고살기 어렵다. 옛날에는 참 좋았는데 지금은 어려워. 안됐지만 힘내. 이런 위로를 하는 선배가 있다면 듣지 마세요. 젊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나아갈 수 있고, 꽃 피울 수 있는 힘이기에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담인데 신인 가수에게 곡을 준 적이 있어요. 기타 하나로만 연주하는 포크 장르였는데, 믹싱 작업을 통해서 곡이 많이 바뀌었길래 제가 드렸던 소스가 맞는지 물어보았어요. 어쿠스틱 기타의 소리가 락 기타처럼 강렬하고 땡땡하게 바뀌었고, 전체적인 볼륨이 너무 커졌더라고요. 가만 보니 소리를 일정하게 키워주고 부스트 하는 컴프레서와 리미터가 많이 걸려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다 푸는 작업을 하고, 제가 의도했던 대로 작업을 다시 진행했어요. 엔지니어 분께서는 오랜만에 이런 걸 해본다고, 제작자 분들이 이런 곡에는 이런 방식의 작업을 할 수 있게 하면 본인도 너무 좋겠다고 하셨어요. 지금의 음악 시장에서는 대형 포털에서 음원을 발매했을 때 볼륨 자체가 갖는 임팩트가 커요. 첫인상에서 이겨야 경쟁이 되는 거예요. 커다란 접시에 여러 가지 음식들을 잔뜩 쌓아두고 양껏 드시라고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나름의 레시피를 갖춰 만들고 플레이팅에 공을 들이다 보면 아쉽게도 패배할 확률이 높아지는 거예요. 굳이 시장의 측면에서 승자와 패자를 나누자면 그래요. 그리고 어쨌든 상업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승자의 메커니즘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생산구조가 형성되죠.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 편곡자, 가수, 연주자 분들의 접근방식과 실력, 표현의 진정성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상품화되어 최종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메커니즘 속에서 음악을 만드는 이들이 어쩔 수 없이 경쟁과 시장성에 치중하게 되는 지금의 현상이 조금 안타까워요. 때로는 전주가 57초, 악기 간주가 40초, 곡 전체가 8분인 담담하고 미니멀한 곡들도 기다리고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문화의 흐름이 우리에게 있다면 어떨까 하는 거죠.

제가 하는 이야기가 얼핏 보기에 메인스트림을 공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런 의도는 전혀 아니에요. 그 구조속에 들어가는 연령이고 동일한 생산라인에 있다면 저도 그렇게 할 거예요.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어요. 어떤 주체도 지금의 메커니즘을 거부할 수는 없죠. 그걸 거부할 거면 혼자 방에서, 동굴에서 음악을 해야 하죠. 전제 자체는 인정하기에 누구도 비난받을 이유는 없어요. 이조차 문화적인 큰 흐름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유를 가져야만 누릴 수 있는 음악의 새로운 영역은 꼭 필요하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은 거예요. 그리고 그 영역이 숨 쉴 수 있는 자리를 내어 주시는 건 음악을 듣는 이들의 몫이죠.

Q. 듣는 사람들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음악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대안은 없을까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공연에 있어요. 그래서 저 또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공연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연은 복제가 불가능하죠. 음원으로 듣는 음악도 필요하지만, 음악의 본질 자체는 어쿠스틱에 있어요. 그 순간의 울림과 행위의 현재성. 이를 가장 복제 불가능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게 바로 공연이죠. 그러나 공연이 저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하고, 수많은 관계자들이 투입되죠. 또, 공연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많은 음악인들에게 주어지는지를 생각해 보면 회의적이죠. 저 또한 데뷔 이례 지금까지가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었는데, 이 정도 기간 동안 음악을 한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 언제든 공연을 할 수 있어야 하고, 하고자 한다면 공연 기획자가 나서야 하잖아요.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물론 제가 수소문한다면 공연기획을 원하는 분들과 만날 수 있겠죠. 다만 저는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하면서 공연 기획사 측에서 먼저 의뢰를 해서 공연을 진행해 왔고,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공연을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인들은 많은데 장소와 자본에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어쨌든 제가 보기에 지금 시점에서는 공연이 유일한 대안이에요.

Q. 유튜브는 어떨까요?
유튜브는 아주 좋은 툴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유튜브에만 전념하는 것은 로또 1등을 바라보고 투자하는 것과도 같아요. 유튜브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적인 메시지들은 있어요. 오늘 하루를 음악인으로 살아가기에 숨이 목까지 차오른 이들이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 이거라도 해서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하나씩 일궈나가는 모습은 참 멋지고 좋은데, 그들의 삶의 태도와는 별개로 이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 이루어지는지, 무엇이 담보가 되는지에 대한 문제는 또 다른 측면인 거죠.

Q. 이번에는 사용하시는 시스템에 대해서 여쭤볼게요. 마이크와 인터페이스 등 현재 사용 중이신 장비들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장비 쪽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아주 기본적인 사양만 설치해놓고 작업하고 있어요. 컴퓨터는 아이맥, 오디오 인터페이스는 RME사의 베이비페이스를 쓰고 있고 DAW는 로직프로X를 써요. 스피커는 Adam A5X, 마이크는 슈어 SM58을 사용하고 있어요. 조촐하죠? 악기는 마틴 어쿠스틱 기타를 오랫동안 아끼며 사용해 오고 있고요. 다이내믹 마이크는 사용한 지 15년이 넘어 헤드 부분이 찌그러져 있는데 지금도 그걸 사용하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보컬 수음에 있어 더 예민하고 파핑도 많이 잡아주고 음역대를 고르게 배분해주는 콘덴서 마이크를 사용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다이내믹 마이크로 녹음을 하기 때문에 콘덴서 마이크로 녹음한 것과는 질감이 조금 달라요.

Q. 오래 사용하셨네요. 마이크는 소모품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Q. 말로 못다 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하실 때가 있나요?
장인어른께서 지난 10월에 돌아가셨어요. 그분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글로 담을 수도 있고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겠죠. 그 말들을 아끼고 줄여서 멜로디로 표현해 11월에 ‘언젠가 우리’라는 음원을 발매했어요. 언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음악이 가지는 정말 고마운 기능인 것 같아요. 그래서 어쩌면 음악은 가장 직관적인 예술이 아닐까요.



끝으로


Q. 먼 미래에 어떤 음악인으로 대중들에게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솔직히 100년 뒤 먼 미래에는 대중들에게 제가 기억이 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만 대답하면 질문이 너무 무안해지죠? (웃음) 그냥 제가 어떻게 기억된다기보다는, 제 음악 중에 어떤 한곡이 누군가의 인생에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상상해봤어요. 중학교 졸업식 날, 늦겨울 추위에 떨며 언덕을 올라 불이 켜져 있지 않은 싸늘한 집에 도착하죠. 그때 무심코 켠 TV나 라디오에서 노래 한곡이 흘러나오는데, 우연히 들은 그 노래 하나가 당시의 한기와 외로움, 쓸쓸함과 슬픔, 고립감을 모두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따스한 온기를 지닌 울림으로 그 사람에게 오는 거예요. 제 노래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단 한 명에게라도 그렇게 남는다면 음악가로서 얼마나 보람된 일일까요. 어쩌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만든 음악에 그런 기능이 필요하다는 저의 일반론일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어떤 음악인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은 진심으로 말씀드리건대, 없습니다. 일관되고 멋진 모습으로 뭉쳐있는 삶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너무 잘 알기에, 멋진 말로 이런 음악인이 되기를 바란다며 저 스스로를 형상화하고 편집하는 건 위선인 것 같아요. 다만 제가 만든 음악이 사람들 곁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네요.

Q.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구독자들에게 마무리 인사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나날과 우리의 동선을 생각해보면 새로운 게 나타날 확률이 그다지 많아 보이진 않아요. 어쩌면 그래서 우리에게 음악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여러분은 저에게 저는 여러분에게, 새로움을 던져주고 일상을 환기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만든 음악과 여러분들의 이야기는 이 한정된 공간과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행복이 아닐까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행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날이 많이 춥습니다. 다들 추위에 지지 말고 튼튼하게 지내시다가 만나요. 마치겠습니다.



인터뷰 전문은 레전드매거진 11호[2019년 2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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