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떠돌이 Mar 08. 2021

동네 친구와 초고속 압축 썸 1

블랙홀 같아 짜증 났던 바로 그놈

내가 가장 벗어나기 어려웠던 연애는, 헤어지고도 질질 끈 아주 별로였던 장면을 연출하게 했던 연애는, 다름 아닌 나를 세상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줬던 연애였다. 상대에겐 내가 세상의 전부, 따라서 그의 지구는 나였으므로 나를 위해 내 주변의 세상이 돌아가도록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옆에 있는 상태를 쉽게 벗어나기란 어려웠던 것이다. 상대는 그만큼 나에게 모든 걸 다 해주었을 테니 미련은 없었을 테고, 나 혼자 미련이 남아 끝난 사이인걸 알면서도 쉽게 벗어나지 못했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과거의 나 한대 쥐어박고 싶다.


무튼, 나를 세상의 전부로 여기는듯한 그런 상대를 만나는 건 굉장히 어렵다. 어렵다는 말로는 충분치 않다.

보통 연인이 적당한 호감으로 시작한 사이에서 마음이 깊어진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나에게 사랑을 표현하며 굉장한 사랑을 퍼붓지는 않는다. 젊음의 뜨거움이 사라진 나이 때문 일수도, 성격 때문일 수도 있다. 결론은 좋아하는 마음으로 가까워지더라도 늘 사랑한다는 말과, 나의 장점을 칭찬하고, 나의 기쁨을 위해 몸 사리지 않으며 그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그런 사람을 만나는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연히 알게 된 동갑내기 동네 친구가 생겼다. 둘 모두 직업적으로 시간 조정이 비교적 자유롭기에 평일 낮에 만나 종종 식사도 하고 술도 열심히 마셨다. 나가기 싫은 날에도 "밥은 먹어야 하지 않느냐"며 불러 내 밥을 먹었고 그 자리가 술자리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만나는 시간이 길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다 했다. 적당히 낯설고 적당히 가까워 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기 중엔 내 마음 저 깊은 곳에 있던 이야기도 있었다. 이 친구 역시 솔직히 자신의 이야기들을 했고 나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주로 조언하는 쪽이었다. 연애를 해봤다는데 대체 어떤 연애를 해왔던건지 본인 위주의 일방적이어서 한심스러운 경험담들을 들으며 연애 상담도 해주었고, 선크림을 쓰고 비타민을 먹어라, 워터픽을 꼭 쓰라는 생활적인 조언과 성의 과학을 사서 읽어보라는 19금 조언도 해주었다. 이렇게 자주 본다면 정이 드는 건 당연하지만 나는 자신 있었다. 이 친구는 나에게 전혀 남자로 보이지 않았다. 알게 된 두 달 동안, 이 친구는 어플 소개팅으로 여러 여자들을 열심히 만났고 나는 이 친구와 열심히 밥을 먹었다. 무엇보다 결혼을 목표로 하는 이 친구에게 나는 처음부터 선을 확실히 그었고, 비혼 주의임을 밝혔다.




코로나로 9시가 되면 가게들이 일제히 영업 종료를 하던 어느 날, 이 친구 집에서 족발과 맥주를 열심히 먹고 마시며 티비를 같이 보고 있었는데, 몇 번 있었던 술자리에서 나를 거슬리게 했던 행동을 또 하기 시작했다. 내 볼을 만지며 "귀엽다"라고 하는 거였는데, 나는 정색하며 다시 한번 더 이런 행동을 하면 다시는 널 만날 이유가 없을 거라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이 친구는 내가 어떤 짓을 해도 절대 넘어가지 않을 것이므로 신경 쓰지 말라며 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해력이 딸리는 친구였다.

- 그게 아니라, 나는 그냥 네가 이러는 게 싫다고 이 병신아.

- 아~ 왜! 귀엽다는 건데, 왜?

- 어 싫어. 나 이 볼 돈 주고 만든 거니까 만지지 말라고.

- 왜? 네가 아무리 나한테 어떻게 해도 나 안 넘어가니까, 신경 쓰지 마

- 진짜?


그냥 싫으니까 하지 말라는 말을 이해 못하는 이해력이 딸리는 이 친구에게 내가 입술을 갖다 대며 말했다.

- 야 나 뻥 안치고 너 오분만에 꼬실 수 있어.

- 퐙 (큰웃음) 절대 안 될걸?


내가 이리저리 얼굴을 들이밀자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피하는 걸 보면서 아닌가, 내가 오해했나 싶었다. 얘는 그냥 장난이었네, 그래도 싫으니까 하지 말라고 해야지.라는 순간, 피하지 않은 입술에 내 입술이 닿는다. 급하게 몸을 떼려는 나를 살짝 끌어당겨 다시 입술을 대고, 내 입술을 애무하듯 더듬는 입술의 느낌이 싫지 않아 당황스럽다. 나는 어쩔 줄 모르고, 그냥 가만히 상대방이 하는 키스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느낌이 좋아서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아니 이거 왜 좋은 거야? 너무 오랜만의 스킨십이라 그런가? 아닌가?
내가 얘를 좋아했나? 


두 가지 생각이 반복적으로 든다.


그리고 아, 내일 어떻게 얘 얼굴을 보지 하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홍콩과 민주주의, 추억의 상관관계 下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