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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미테 Sep 09. 2021

내가 이 도시를 사랑하는 이유

- 서울에서 단어 줍기

MEGA


급하게 잡아 탄 택시는 위험하다.

아무 생각 없이 뒷좌석에 녹아내리면 미지의 장소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종단, 횡단하는 게 고향인 대전에 내려가는 2시간보다 더 걸리는 이 커다란 도시,

편도 KTX 티켓값 약 23,700원 이상의 출혈을 치르고도 광야에 떨어진 기분으로 한참 지도 앱을 줌, 아웃해야만 한다.


지도를 읽는 일은 스스로의 문과적 특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일이다.

앞으로, 옆으로, 뒤로 돌아보다가 방향성을 지정해주는 표시를 클릭하고 나서야 다음 스텝을 밟는다.

이도시의 중심인 내가, 출발지와 도착지를 다시 지정한다.

매일 안간힘으로 중심을 유지하며 여행을 떠난다.

보지 못한 풍경을 받아들일 두 팔을 벌려, 두려움의 방향성을 깜박이며


EXPRESS


야식을 참는 것은 고된 일이다.

새벽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04:00 AM, 서비스, 맛, 배달 속도가 완벽한 중국집의 배달 사정권 내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바나나와 채소, 계란 등으로 채워져 있는 냉장고는 유명무실 쓸쓸한 낮과 밤을 보내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생각의 게으름과, 생각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행동의 게으름, 그게 가능하게 하는

4차 산업/ 팬데믹/ 비대면 시대에서 비롯된다.

유일하게 손가락 움직이는 것만이 능동적이다.

마스크를 벗기 전에 탕수육을 끊을 날이 올까.


꽈배기


예전에 바벨이 생각날 정도로 경이로운 위치에 있는 집에 살았었다. 그와 다른 점이라면 오를수록 한없이 겸손해진다는 것이랄까. 매일 출퇴근하며 몸과 마음을 단련할 수 있다니 일거양득이었다. 학구열로 가득한 동네 분위기에, 물가는 어찌나 저렴하던지, 거주지를 물어보며 직장인의 정체성 운운하던  사람들은 무경험의 무지로 먹거리의 상아탑인 그 먹자골목의 돈가스를 평생 맛보지 못할 것이다.


빛을 가릴 필요 없는 아늑한 곳에 월세방을 만든 집주인의 안목 또한 탁월했다. 언제나 촉촉함을 유지하는 방은 피부미용에 이로웠고 커튼 한 장 사서 달지 않아도 낮에 푹 잠들 수 있으니 경제적이었다.

한평생을 살아도  모자랄 그곳에서 왜 더 오래 머물지 못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아쉽기만 하다.


낙지


삼겹살을 구워주는 이모가 있다는 말에 놀러 갔던 친구의 집. 하지만 이어진 난해한 성경공부와 이름 모를 교회 욕실의 물벼락은 삼겹살의 대가로는 과했다. 천당의 명부에는 가짜 주소가 적혔고 한 번만 더 교회에 가자 사정하는 친구를 냉혈한처럼 떼어내야 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은  부푼 풍선을  꼭 끌어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로도 다른 방식으로 몇 번이나 비슷한 이데올로기 해프닝을 겪어야 했고 폭죽처럼 풍선이 터져나갔다. 어느덧 폭발음은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처럼 귀에 맴돌고  마음의 평온을 불러온다. 자유로운 이 세상은 하릴없이 나를 강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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