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미테 Sep 23. 2021

작은 것에게

안녕하세요. 작은 것! 당신을 부정하고 싶지만 생각할수록 당신은 그대로의 제 모습이네요.


모험은 여전히 짜릿해요. 녹조로 가득한 하천에 뛰어드는 것. 커다란 박스 아래로 뛰어내리거나 평균대 위로 멀리 날아갔을 때처럼 피를 볼 일은 없지만요. 그야말로 철분의 맛으로 가득한 야만의 날들이었네요. 단식투쟁을 위해 이를 악물어 찌그러뜨렸던 수저들까지 생각하면요. 그런 무지성의 도전정신이 진화해 떡볶이 코트 단추를 수선하는 미래로 이어졌다니 놀라워요. 작고 하얀 떡볶이 코트가 몸에 맞지 않을 때까지 단추는 굳건히 달려있었어요.

어쩌면 손재주가 좋아서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사생대회에서 상도 탔었고, 늘 화가가 되고 싶어 했으니까요. 하지만 꿈은 평생에 걸쳐 뒤집히고 깨지고 다시 붙여질 거예요. 조금 처절한 모습이어도 소중히 하기로 해요.


두려움을 가지진 말아요. 어차피 때가 되면 세상이 당신을 겸손하게 할 거예요. 그래서 등굣길 30분이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이었던, 고민이라고는 오늘 어떤 아이스크림을 골라 외상 할까 밖에 없었던 귀여운 당신의 날들을 좋아해요. 그렇게 작은 것이었던 당신이 고마워요.

무방비함을 즐겨봐요. 모든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엉엉 울기도 하고 깔깔거리기도 하면서요.

어차피 작은 아메바인 당신은 모르는 것 투성이라 자극에 반응하는 방법은 그것뿐일껄요.


돌아가고 싶은 날이 하루도 없다고 말하면 실례가 될까요? 당신을 먹여 살린 수많은 날에 감사하지 않으면 배은망덕 한 사람일까요?


통근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어머니가 챙겨주던 삼시 세 끼.

생애 최초의 탈골을 아버지의 달리는 등에서 앓았던 것, 

매일 저녁 오빠와 쌓아두고 보던 만화책과 그 냄새, 

그런 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공기 중에 흐르는 사랑이었나 생각하게 될 지도요.



작가의 이전글 내가 이 도시를 사랑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