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rious Lee Apr 04. 2018

<소공녀>

빈혐(貧嫌)사회


 얼마 전 읽은 뉴스 기사의 내용 중에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작가 표범의 이야기다.

그는 집안 환경이 어려웠던 여중생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쳤다.
꾸미는 걸 좋아했던 학생에게 그는 생일 선물로 틴트를 선물했다.
단돈 3800원짜리 틴트에 기뻐하는 아이 앞에서 그는 민망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도 그를 민망하게 만든 건,
며칠 뒤 학생에게 듣게 된 얘기였다.
 
“학교 선생님이 애들 앞에서 ‘틴트 살 돈은 있나보다?’라고 하셨어요”
"..."

영화 <소공녀>를 보며 위의 이야기가 떠오른건, 내가 미소를 저 선생과 같은 눈으로 보았기 때문일까?
 
 미소는 가난하다. 떨어진 쌀을 살 돈이 없어 친구에게 빌리고, 추위를 막아주지 못하는 집 탓에 연인과의 스킨십도 포기했다. 인간생활의 기본 3요소를 누가 의식주라고 정해놨던가. 미소의 3요소는 누가 뭐래도 담배, 위스키, 남자친구다. 집이 없어도, 밥을 굶어도 이들만 있다면 미소는 행복하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가난이 행복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가난을 벗어나라고 도움을 주거나 무시하던 것을 넘어 혐오하기까지 하는 '빈혐(貧嫌)사회'. '가난은 죄가 아니다’라는 옛말은 무색해진지 오래, 현대 사회에서 가난은 주홍글씨로 가슴팍에 수놓아져 주변인들의 증오를 받는다. 초등학생들조차 거주하는 아파트로 서로를 평가한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언어적, 신체적 폭력의 합당한 대상이 되는것, 그것이 작금의 사회다.

 미소는 지금 이대로 행복하지만 주변은 그렇지 않다. 정미 언니는 미소에게 염치가 없다며 일갈한다. 록이 오빠는 집 없는 미소를 물건 취급하듯 대한다. 빈혐사회의 폭력적인 부분을 제유하는듯 하다. 이 와중에 남자친구마저 지긋한 가난을 벗어나자며 중동으로 떠난다. 집이 없는게 아니라 잠시 여행중일 뿐인데, 왜 주변은 이리도 냉담한가.



 사실 나도 정미와 같은 생각이다. 빚지기 싫다는 미소가 사랑하는 담배와 위스키를 지키기 위해 남의 집을 빌어 산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미소가 집을 버리기로 한것은 분명 '선택'이었다. 집 대신 담배와 위스키를 버리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호불호가 확실하다', '꿈을 잃지 않는 모습이 멋있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선택'을 했다면 '책임'또한 수행해야하는데, 그 책임의 방법이 '빚지기'라니. 정미의 말처럼 그 사랑, 염치가 없는게 분명하다.

 하지만 미소가 '가난'을 선택한 적은 없다. 양친이 없음도, 평생 약을 먹어야하는 백발증도 그녀는 선택하지 않았다. 그게 중요하다. 현대 사회의 그 누구도 가난을 선택한 적이 없음을. 낮은 경제성장과 높은 실업률, 인구 절벽 등의 이슈로 불안과 부정의 감정이 현대 사회에 가득하다. 모두가 불행하고 불안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기보다 누군가를 탓하는 것이 더욱 쉽다. 나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노력하는데, 살기에도 급급해 움직이지 못하는 가난에게 게을러 움직이지않는다며 칼끝을 내세우는것. 그것이 빈혐사회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가난은 죄가 없다.


 정미 언니는 미소에게 말한다. “본의 아니게 폭력적이어서 미안하다”. 하루빨리 침체된 분위기를 벗어나 빈혐사회를 이겨내고, 다시 한 번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