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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셔니스타 Mar 28. 2024

이별 연습 2

너와의 8년, 모든 순간이 좋았다

아버지의 자리

 스산한 회오리바람에 바싹 마른 낙엽이 춤을 추며 어지러이 흩날리던 11월 초 금요일이었다. 승윤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껏 신이 난 목소리였다.

“선생님, 저 오늘 수업 못 가요! 아빠랑 별 보러 가요.”

 아이의 까만 눈동자와 한껏 올라간 입꼬리의 미소가 보였다. 어찌나 신이 났던지 콩닥거리는 심장 박동마저 수화기 너머로 들릴 지경이었다.

 “승윤이 아빠랑 캠핑 가는 거 진짜 오랜만이구나. 잘 다녀와.”

 아이에게는 아빠와 보내는 시간도 중요하다. 특히 그맘때 남학생에게는 엄마의 애끓는 잔소리보다 아빠와 ‘남자 대 남자’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이의 정서에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이번 기회에 아빠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 예전의 승윤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내심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캠핑을 다녀온 바로 다음 주 승윤이는 학원을 그만두었다. 공부에 중요한 시기인 건 알지만 초등 마지막 학기만큼은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싶다는 승윤 부모님의 생각이었다. 그간 얼마나 고심하셨을지 알기에 나는 두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와 캠핑을 간 승윤이는 이런 모습이었을까?

 겨울 방학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이들은 정든 학교를 졸업했고 새 학교 새 교실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새 학년을 맞이했다. 승윤이의 빈자리는 다른 학생으로 채워졌다. 나는 가끔 같은 학교 아이들에게 승윤이의 안부를 물었다. 학원에서 아이들이 들고 나는 건 일상이다. 학원에 다니다 관둔 아이가 비단 승윤이뿐이겠는가. 하지만 이상하게 그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승윤이가 앉아 있던 자리에 유독 눈길이 오래 머물곤 했다.


 신록이 푸르른 5월, 중간고사가 끝나고 첫 수업을 하던 날 반가운 손님이 학원 문밖에 서 있었다. 반년 만에 다시 학원을 찾은 승윤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 나보다 한 뼘은 더 키가 컸다. 떡 벌어진 어깨 위 가늘고 곱던 머릿결은 뻣뻣한 빗자루가 되었다. 말끔하고 뽀송하던 피부마저 청춘의 상징인 여드름이 득실거렸지만, 꿈꾸는 듯한 깊고 까만 눈동자는 여전했다. 나는 너무 반가워 아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다시 만난 승윤이는 전보다 말수는 줄었지만 다정하고 잘 웃던 예전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영어를 완전히 놓았다가 다시 학원 생활에 적응하려니 힘겨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곧 자신만의 페이스를 되찾아 느리지만 성실하게 공부해 나갔다. 학교 성적은 좋았으며 교우 관계도 원만해 보였다. 어릴 때부터 만난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언제나 경이롭다.

 “너 여자 친구 생겼다며? 온 동네 소문이 쫙 났더라.”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예쁜 여자 친구와 다정하게 손잡고 가더라는 목격담을 듣고 슬쩍 던진 말에 승윤이는 귀까지 빨개져서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빡빡한 수업 중 숨 돌릴 곳을 찾던 아이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승윤이의 연애담을 듣고 싶어 했지만 승윤이는 프라이버시라며 끝내 털어놓지 않았다.


 작년 1월 마지막 월요일 아침이었다. 겨울 방학 특강이 있어 일찍 집을 나서는데 승윤 어머니에게서 문자가 한 통 왔다. 그저 수업을 못 온다는 연락인가 했는데 문자를 확인하고는 손이 부들부들 떨려 휴대전화를 떨어뜨릴 뻔했다. 승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였다. 바로 며칠 전 승윤 어머니가 코로나 이후 애들 아빠가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며 힘든 기색을 비치셨던 일이 떠올랐다. 한 번도 뵌 적은 없었지만 승윤이와 예지를 보면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짐작되었다. 분명 아이들에게 다정다감하고 듬직한 가장이셨을 것이다. 그런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가족의 슬픔이 얼마나 컸을까. 수업 중간 짬 내어 장례식장에 가 보려다 생각을 고쳐 조의금을 송금하고 어머니께 위로 문자를 보냈다. 일주일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어떤 얼굴로 맞이해야 할지 몰라 고민되었다. 다시 만난 승윤이와 예지는 의외로 덤덤했다. 우리는 마치 손으로 건드리면 툭 떨어질 것 같은 가냘픈 화초처럼 두 아이에게 조심스러웠다. 아무도 ‘아버지’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 승윤이와 예지는 훌훌 털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마음이라는 건 밖에선 잘 보이지 않으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선생님은 늘 여기 있어

 승윤이는 성적이 좋았음에도 기숙사가 있는 영주 항공고에 진학하겠다고 했다. 장학금도 받을 수 있고 빨리 취업해서 혼자 가계를 꾸리는 어머니께 도움이 되고 싶다는 속 깊은 이유에서였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는 다른 과목도 중요하지만 높은 토익 점수가 취업에 유리하다. 입학 전 미리 기초를 닦고 싶은데 혼자서는 도저히 못 하겠다며 좀 도와 달라는 아이의 부탁을 물리칠 수 없어 석 달 동안 함께 토익 공부를 했다. 빈출 단어를 암기시키고 혼동되는 발음을 들으며 받아쓰기하고 기본서를 두 번 훑었다. 처음에는 아무리 들어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며 푸념하던 녀석이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3개월 꼬박 매일 정해진 분량을 열심히 공부하더니 마지막 날은 맞추는 문제가 제법 많았다.


귀를 쫑긋거리며 집중하는 아이를 물끄러미 보았다. 승윤이의 뭉툭한 엄지는 다른 손가락보다 유난히 짧다. 손가락이 못생겼다며 타박하는 승윤이에게 그런 엄지를 가진 사람은 재주가 많으니 더 예뻐해 주라고 했다. 아이는 양쪽 엄지를 쭉 펴고는 ‘최고’라며 반달눈을 하고 웃었다. 아직도 눈에 선한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오르자 나는 그만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제 몇 분 후면 정말 이별이구나. 근사한 선물을 주고 싶었는데 뭐가 필요할지 몰랐다. 봉투에 약간의 현금과 짧은 편지를 넣어 건네며 아이를 한 번 안아 주었다. 아이도 나도 눈가가 촉촉해졌다. 승윤이는 잠깐만 기다려 달라며 밖으로 나가더니 따뜻한 커피 한잔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선생님께 커피 한 잔 꼭 사드리고 싶었어요.” 나는 끝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집에 오면 꼭 연락해야 해. 선생님은 늘 여기 있으니까 언제든 찾아와!”

 잘 자라줘서 고마운 승윤이, 멋진 어른으로 성장해 갈 승윤이의 앞길에 요정 대모처럼 마법 지팡이를 휘둘러 고운 금가루를 뿌려주고 싶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승윤이가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이의 깊고 까만 눈동자가 호수 위를 떠다니며 출렁거렸다. 승윤이가 떠난 교실에 홀로 남았다. 나는 그만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빠져 엉엉 울어버렸다. 수많은 아이를 떠나보내도 이별은 언제나 힘이 든다.

 밖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다음 시간 무서운 중등부 아이들이 문을 열고 인사하며 왁자지껄 들어왔다. 나는 얼른 눈물을 훔치고 마스크를 꼈다.

 “자, 시험 칠 준비 다 했겠지? 책상 위에 아무것도 없게 다 집어넣자.”

 “아! 쌤, 제발요. 5분만 더 시간 주세요!”

 투덜대며 책상 위에 있던 자료와 책을 가방 속에 넣는 아이들에게서 사랑스러운 승윤이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승윤이는 낯선 환경에서 3월을 잘 적응하고 이번 주 대구에 온다고 연락 왔어요. 주말에 모교인 OO중학교 배구 동아리에서 배구 한 게임 신나게 하고 오면 애들 불러 시원한 빙수 한 그릇 사 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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