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세월이 흐르고 내 이름을 건 작은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까칠한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대구 변두리에 동네 학원을 열자 이상한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대형 학원에서 일할 때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부류였다. 웬만한 글은 의미를 파악하며 줄줄 읽어 내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학교는 결석해도 학원 과제만큼은 절대 빼먹지 않는 성실 끝판왕들만 만나다가 알파벳 음가조차 모르면서 해맑게 웃는 6학년 학생을 만나자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난감했다.
곧 중학생이 되는데도 아무런 준비 없이 공부와는 담쌓고 지내던 아이들은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수업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늘어지게 하품하며 시계만 하염없이 보았다. 교재를 챙겨 오지 않아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과제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수업이 끝나고 남기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수업하느라 진빼고 남겨서 또 진을 빼고 나면 영혼이 탈탈 털렸다. 잠시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 덩치 큰 중학생 녀석들끼리 장난치다 시비가 붙어 학원 통유리를 와장창 깨뜨린 사건도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이상한 아이들만 오는 걸까? 도저히 손 쓸 수 없는 지경의 아이들이라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자 마침 동네 물정 모르고 덜컥 학원을 차린 초짜 선생에게 보내 간 보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 아이들과 부대끼며 긴 시간이 지나자 알게 되었다. 과거 내가 근무했던 대형 학원에 다니던 우수한 학생들은 내가 잘 가르쳐서 탄생한 결과물이 아니었다. 참을 인을 새겨가며 기초부터 튼튼하게 가르친 누군가의 노력에 아이들의 피와 땀이 더해진 결과물이었다.
알파벳 ABC부터 가르치며 맨땅에 헤딩해 보니 그때서야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딴에는 여러 학원을 전전하며 경험했다고 자랑한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수업 40분을 못 참고 몸을 꽈배기처럼 비비 꼬는 아이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했다. 엉성하게나마 몰입하며 반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학습 교구를 제작했고 어떻게 하면 덜 지루하면서도 빨리 음가를 깨우쳐 단어와 문장을 읽힐 수 있을지에만 온 정신을 집중했다. 한글을 막 깨친 아이들이 엄마와 마트에 갈 때 상점 간판만 보이면 틀리건 말건 신나게 읽는 것처럼 거리 곳곳에 보이는 영어 간판을 더듬더듬 읽기 시작하면 얼추 성공한 셈이었다.
상담 도중 간판에 적힌 영어 단어를 읽더라며 신기해하는 어머니들의 제보를 들으며 나는 차츰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시작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한번 믿기 시작하면 웬만해선 학원을 바꾸지 않는 어머니들 덕분에 아이들은 내 품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엄마 손 잡고 코를 훌쩍이며 학원 문 열고 들어서던 꼬맹이들이 어느새 중고등학생이 되었다.
주말에 줄기차게 불러내도 싫은 티 하나 없이 나와 의젓하게 시험공부에 몰두하는 진지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뿌듯하다. 시험이 다가오는데 to 부정사 문제만 나오면 자꾸 틀린다며 도와 달라는 아이, 문제 하나를 쥐고 끙끙대다 도저히 못 풀겠다며 자정에 카톡으로 질문하는 아이, 문제 푸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응용하여 다른 문제로 확장하는 아이. 이들의 기특한 노력을 보고 있자니 20년 전 교수님이 내게 던진 질문이 문득 생각났다.
“영주 씨는 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나요?”
주차장에서 내려 건물 뒤편으로 걸어갔다. 벚꽃이 물러가자 화려하게 물든 연산홍이 수줍게 무리 지어 피었고 라일락 연분홍 향기가 바람결에 흩날렸다. 꽃이 진 자리에 연둣빛 어린 나뭇잎이 하나둘 오르더니 풍성한 초록을 이루었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월요일 출근길. 신이 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가는데 저만치 앞에 온 세상 시름 다 짊어지고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월요일마다 세상이 무너진 듯 고개를 툭 떨어뜨리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학원에 오는 2학년 승현이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편안한 주말을 보내고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는 생경한 월요일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죽상을 하고도 의무감 때문에 죽어도 오기 싫은 학원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짠했다. 내가 바로 뒤에 있는 줄도 모르고 승현이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무거운 발걸음을 디뎠다.
“승현이, 안녕! 주말 잘 보냈어?
아이가 천천히 뒤돌아 입을 쭉 빼고 나를 보는 표정에 원망이 그득했다. 마치 자유로운 영혼의 날개를 꽁꽁 묶은 간수를 대하듯 올려보았다.
앞에서 아무리 웃기는 이야기를 하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춘다 해도 시큰둥하기만 한 아이를 살살 달래 가며 알파벳 음가를 복습했다. 엘엠엔오피에서 딱 멈춰버린 기억을 붙들고 저도 답답한지 제 머리통을 손으로 쿵쿵 치는 승현이에게 다른 친구들이 힌트를 준다고 야단법석이었다. 흥미만 조금 붙으면 누구보다 신나게 수업에 몰입하는 아이라 물꼬를 터 주는 게 중요했다. 다가가서 직접 알려주기보다 조금만 시간을 주면 스스로 해 낼 것을 알기에 기다려주었다.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떨며 얼굴을 힘껏 찡그린 채 한참 생각하던 승현이가 다음 글자를 가까스로 기억해 냈는지 “이거?” 하며 조심스럽게 q라고 썼다.
“우와. 해 냈구나! 역시!”
아이들과 손뼉 치며 큰 소리로 환호해 주자 아이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방방 뛰었다. 그 작은 성취감 하나로 승현이는 남은 시간 동안 씩씩하게 수업에 참여했고 수업이 끝날 즈음에는 조금만 더 하자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영주 씨는 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나요?”
교수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20년이 넘어서야 하게 되다니. 대단한 질문에 걸맞게 누구라도 수긍할 만한 멋진 대답을 하지 못해 부끄럽다. 그저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원대한 미래를 우리 아이들이 꿈꾸었으면 좋겠다.
영어 인터뷰도 유창하게 하는 프리미어 리그 축구 선수 주현이,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 세미나에서 명의들을 모아놓고 새로운 치료 사례를 발표하는 의사 진우, 미래의 새싹들을 사랑으로 품어주는 선생님 소율이, 방탄소년단 후발주자로 케이팝을 온 세계로 퍼뜨릴 슈퍼 아이돌 규리, 대한민국을 5차 산업혁명의 중심지로 이끌 미래의 과학자 승현이가 수업에 참여하고 과제를 제출하고 시험을 준비하는 지난한 과정은 힘들지만 지루한 반복과 연습으로 어제보다 단단한 실력을 쟁이며 꿈을 차곡차곡 이루어 나간다면 정말 좋겠다. 급하게 앞서는 마음과 달리 걸음이 더뎌져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주저앉기보다 훌훌 털고 한번 더 일어설 용기를 품는다면 좋겠다.
아이들을 만나는 여정은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내가 맡은 역할은 자전거 탈 줄 모르는 아이를 안장에 앉혀 안전모와 무릎 보호대를 씌워 주고 중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시합 중이지만 앞사람과의 경쟁에만 너무 몰두하지 말고 주변의 꽃과 나무, 들판의 아름다운 풍경을 둘러볼 여유도 우리 아이들이 가졌으면 좋겠다. 힘들지만 어제보다 조금 더 달린 자신이 뿌듯했으면 좋겠다. 그러다 넘어지면 곧바로 일으켜 세우기보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다고, 넘어진 자리가 많이 아프고 쓰라리겠지만 또 한 번 중심 잡고 페달을 밟아 보자고 격려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고 싶다.
작은 동네 학원을 운영하며 내 최대 단점이던 조급함과 딱딱한 사고가 조금씩 말랑거린다. 아이들 덕분이다. 겉보기에는 멈춘 듯해도 내면은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는 걸 예전에는 왜 몰랐을까. 느리지만 천천히 함께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훌쩍 자란 아이들이 보였다. 아무리 즐거운 여정에도 정체기는 끊임없이 닥친다. 그러면 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교수님과 왜 아이들을 가르치냐는 그분의 질문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훗날 우리 아이들도 인생에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나와 함께 했던 순간을 떠올릴까? 멈춘 듯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을 자신을 믿고 각자의 꿈을 나침반 삼아 계속 도전하기를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올 때 보다 한결 발걸음 가볍게 걸어가는 승현이가 보였다.
“승현아, 내일 보자!”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나는 내일도 작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