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패셔니스타 Oct 26. 2023

우리, 이름이 닮았네

닮아도 너무 닮은 엄마와 딸의 좌충우돌 성장기

 딸아이는 연애 7년, 결혼 7년 만에 찾아온 귀한 아이였다. 우리 부부는 딸에게 예쁜 이름을 직접 지어주고 싶었다. 시댁 문중의 항렬자 ‘영’ 앞에 부르기 쉽고 느낌 좋은 글자란 글자는 모조리 붙여보았다.

 주영이, 가영이, 다영이, 아영이, 자영이, 나영이, 우영이, 지영이, 하영이….

 ‘영’이라는 글자에 이응이 있으니 앞 자에는 받침이 없어야 부드럽게 읽혔다. 그런데 생각나는 이름들은 주위에 너무 흔했다. 학원 학생 중에 다영이, 나영이, 지영이가 있었고 고등학교 절친 이름도 주영과 자영이었다. 얼마나 귀하게 찾아온 아이였는가.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흔한 이름은 싫었다. “OO아!” 부르는데 너도나도 “응?”하고 돌아보는 상상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우리, 흔한 이름은 빼자.”

 처음엔 몇 시간만 고민하면 뚝딱 만들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웬걸. 아이 이름 짓기는 우리의 장기프로젝트가 되었다. 아이를 품고 있던 열 달 내내 눈이 마주칠 때마다 각자 생각해 왔던 이름들을 늘어놓으며 품평회를 했지만 서로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퇴짜를 놓기 일쑤였다. 그 ‘뭔가’는 ‘흔하다’, ‘이름을 부를 때 발음이 자연스럽지 않다’, ‘이름과 분위기가 매치가 되지 않는다’ 같은 사소한 이유였다. 출산예정일은 다가오는데 마음에 드는 이름을 정하지 못하니 점점 조바심이 들었다.


 “작명소 간판에 ‘누가 함부로 이름을 짓는가?’라고 쓰여 있던데 그 말이 맞나 봐. 이름 짓는 거 정말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네.”

 “그냥 장인어른께 부탁드리거나 작명소에 맡길까?”

 “아니야. 아이 이름은 우리가 제일 많이 부를 건데 우리가 지어야지.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누우려는데 남편이 새로운 이름 하나를 후보로 올렸다.

 “자기야, 서영이 어때?”

 “서영이? 주서영!”

 발음하기도 쉽고 무엇보다 어감이 예뻤다. 연이어 불러보니 순하고 착한 이미지가 담기는 것 같아 마음에 쏙 들었다. 주서영, 주서영, 그런데 계속 부르다 보니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었다.

 “자기 이름이랑 비슷하구나. 엄마 이름이랑 닮았다니 더 특별한 것도 같고. 자기 생각은 어때?”

 내 이름 석 자 안에 딸 이름을 품고 있으니 우리는 아주 특별한 모녀지간이 될 거란 생각마저 들었다.


 서영이는 어느새 자라 어엿한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서영이는 내 모교에 다닌다. 그러니 나는 서영이의 고등학교 선배도 되는 셈이다.

 서영이는 알람이 울리면 기계 인간처럼 일어난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6시 반에 일어나더니 요즘은 6시만되면 벌떡 일어나 화장실 갔다가 몸무게를 측정한다. 아침 식사 챙겨 먹고 양치하고 교복을 입는다. 이윽고 7시가 되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고 집을 나선다. 저녁에 집에 와서도 다르지 않다. 저녁 식사를 하고 운동가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서영이의 일상은시계처럼 정확하게 흐른다.


 일상의 순서를 바꾸는 일, 이를테면 화장실 갔다가 몸무게를 재야 하는데 아침밥을 먹고 몸무게를 재는 일 같은 작은 변수도 불가하다. 가끔 돌발상황이 일어나 일상의 순서가 조금이라도 바뀌면 어쩔 줄 몰라 한다.

 요즘 체중 관리하느라 매일 한 시간씩 밖에 나가 걷는데 몸이 아프거나 학교에서 운동을 많이 하고 온 날도 어김없이 운동하러 나간다. 몸이 힘든 날은 건너뛰어도 괜찮다고 아무리 말려도 기어이 운동을 마쳐야 들어온다. 이렇게 융통성 없는 서영이가 답답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좋은 습관을 들이도록 도와주면 의욕적으로 건강한 삶을 일궈갈 수 있을 테니 나쁘지만은 않다.


 서영이는 다행히 신체적 장애는 없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여느 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보통 사람들 틈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평범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서영이 특유의 행동이 드러나면 “하지 마”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그렇게 걷지 마.”

 “왔다 갔다 뛰어다니지 마.”

 “손으로 생선 뜯지 마.”

 “징징거리면서 말하지 마.”

 주눅이 들었던 건지 어린이집에 다닐 때 자주 멍한 상태로 초점 없이 갈 곳 잃은 눈동자로 허공을 주시하며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도 한쪽 고개를 약간 갸우뚱하게 기울인 채 눈을 가늘게 뜨고 곁눈질로 주위 사람들을 한참 쳐다본다. 처음에는 아이가 왜 그런 자세로 주변을 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이상하게 여길까 싶어 “서영아, 고개 똑바로 해야지.”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자세를 바로 잡아주곤 했다.


 서영이는 우리와 감각 처리 방식이 다르다는 걸 차츰 알게 되었다. 보통 사람들의 뇌는 필요한 정보를 증폭시켜 사람이나 중요 정보를 강화하고 나머지 정보는 주변 정보로 약화한다. 반면 자폐인의 뇌는 사람이라도 그저 100개의 사물 중 하나로 인식하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특이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물 인식력에 비해 사람에 대한 안면 인식력은 낮을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서영이가 사람들과의 눈맞춤이 어려웠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시각적으로 너무 많은 정보가 한 번에 들어오니 눈을 맞추고 가까운 사람에게 집중하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 서영이의 행동에도 전처럼 강하게 제약을 가하지 않게 되었다.


 나도 부모인지라 또래 평범한 아이들을 보면 자꾸만 우리 아이와 비교하게 된다. 가끔 우리 학원에 다니는 서영이 나이와 엇비슷한 학생들을 보며 상상해 본다. 친구들과 밤늦도록 수다 떨다 그만 자라고 잔소리 듣고, 사춘기가 한창일 때 큰 소리로 문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는 서영이, 남자 친구를 사귀고, 대학이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서영이의 모습을.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상상 속의 서영이는 왠지 내 딸이 아닌 것 같다. 영리하고 똑 부러지고 자기 할 말 다 하는 야무진 아이들보다 어수룩하지만 늘 긍정적인 태도의 서영이가 내딸답다.


 서영이는 뭐든 정말 열심히 한다. 들이는 에너지에 비해 그만큼, 아니 그 절반만이라도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니 속상할 때가 많다. 서영이는 100점 한번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시험지를 뒤적이며 1시간 넘게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을 생각을 하면 그마저도 기특하다. 매일 저녁 신문 기사 한 토막을 읽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는 노력도 가상하다. 발달센터나 학습지, 미술 수업 과제도 한 번을 밀린 적이 없었다.


 6학년 때였다. 학예회 준비로 춤 연습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막상 무대 위에 올라가니 몸치가 따로 없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싶지만 같은 반 친구들의 대화에 서영이는 좀처럼 끼어들지 못했다. 다이어트에 성공해 미니스커트 입고 싶은데 세상엔 먹고 싶은 음식이 너무 많다. 매일 체중 관리를 하고 간식을 줄이고 운동을 하지만 몸무게는 늘 그대로이다.


 생각해 보면 이제껏 살아온 내 삶도 다르지 않았다. 잠안 자고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은 늘 그저 그랬다. 대학 시절 클럽에 가면 친구들처럼 기막힌 웨이브를 과시하며 현란한 춤을 뽐내고 싶어 구석 거울 앞에서 열심히 연습했지만, 몸치를 벗어나지 못했다.

 요즘은 또 어떤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 의견을 잘 전달하고 싶은데, 소수 정예의 독서 모임에 참여해서도 너무 긴장되어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린다. 그놈의 다이어트는 오십 평생을 하는데도 아직 적정 몸무게에 한 번도 도달한 적이 없다.


 엄마와 딸이 닮아도 너무 닮았다. 아마도 내가 지은 이름 때문인가 보다. 우리가 이렇게 닮은 꼴이니, 서영이는 분명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빵점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