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은 아무나 하나
망해버린 미역국을 되살릴 조치가 필요했다. 마늘을 넣으면 맛이 깊어진다는 어머님 말씀이 생각났다. 마침 냉동실에 찧어 얼려 놓은 마늘이 있었다. 나는 꽁꽁 얼려 놓은 큼지막한 큐브 모양 마늘 두 조각을 꺼내 국 속에 집어넣고 휘저은 다음 또 맛을 보았다. 어째 뭔가를 넣으면 넣을수록 맛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제야 처음 꺼냈던 정체불명의 간장 생각이 났다. 나는 사이다 페트병에 든 간장을 한 국자 더 부으며 제발 맛있어지라고 주문을 외웠다. 다행히 간이 되었는지 미역국 비슷한 맛은 났지만, 너무 짰다. 오래 끓인 데다 간장끼리 화학반응이라도 일으킨 모양이었다. 물을 추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을 한 대접 가져와 부으니 안 그래도 많던 국이 냄비 표면까지 올라와 찰랑거렸다.
“어디 잔치라도 해?”
남편이 빈정거리듯 낄낄댔다. 의기양양했던 표정이 걷힌 것도 모르고 나는 불안한 속내를 애써 감춘 채 아무렇지 않은 듯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어머님이 만들어 두신 밑반찬과 김을 꺼내고 국이 넘칠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끓는 동안 잽싸게 솜씨 부린 계란말이와 콩나물무침을 곁들여 밥을 한 공기씩 퍼냈다. 국은 빨리 해치워야 하니 큰 대접 세 개에 최대한 많이 담았다.
가뜩이나 미역국을 싫어하는 딸아이는 식탁에 앉아 마늘 파편이 둥둥 떠다니는 국을 보자마자 질색했다. 남편도 양이 너무 많다며 작은 국그릇으로 국을 덜었다. 하루라도 빨리 미역국을 끝장내고 싶었던 내 본심을 들켜버린 것 같아 괜히 머쓱해졌다. 맛을 평가할 시간이 다가왔다. 남편과 딸아이가 한술 뜨자마자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맛있어?”
“... 으응.”
뼈 때리는 질문과 눅눅한 대답 사이, 지루하게 벌어진 찰나의 틈이 머쓱한 내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무어라 말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그 짧은 시간을 영원으로 느꼈을 남편이 애처로웠다. 요리에 일가견이 없는 아내가 어머님 안 계신 빈자리를 채우려는 노력으로 몇 시간이나 미역국과 사투를 벌였으니 당연히 칭찬은 해 줘야 마땅했으나, 생전 처음 맛보았을 미역국이 하얀 거짓말을 불렀을 것이다.
“한 번 먹는다고 맛이 느껴져? 건더기도 팍팍 좀 먹어 봐.”
음식의 호불호가 확실한 딸아이는 아예 국그릇을 밀어내며 안 먹겠다고 선언했다. 남편은 평소에는 손도 대지 않는 마른반찬만 깨작거리며 겨우 밥 한 공기를 비웠다. 내 할당량은 오기로 어떻게든 꾸역꾸역 채웠지만 남편과 딸아이가 남긴 국은 결국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그냥 있는 반찬으로 한 끼 때우면 된다는 남편의 만류에도 내가 끓인 따뜻한 국 한 그릇 먹이고 싶어 무리수를 두었다. 앞으로 며칠 동안 내 차지가 될 미역 다발을 보고 있자니 저걸 어떻게 해치울까 싶어 한숨부터 나왔다.
어머니는 며칠 전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넘어지셨다. 휑한 바람 속 몸을 잔뜩 움츠리고 걷다 인도에 움푹 파인 곳을 미처 보지 못하셨단다. 들고 있던 장바구니가 방어막 역할을 해 주었기 망정이지 정말 아찔한 상황이었다. 찰과상은 물론이고 손목이 눈에 띄게 부어올랐는데 그까짓 것 약 바르면 괜찮으니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우기셨다.
몇 해 전 친구 어머니가 시골 재래식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다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셨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거뜬히 농사짓고 아들딸네 김장까지 도맡아 해 줄 만큼 건강하셨던 분이다. 대퇴부 골절 진단을 받고 대학 병원에서 수술 후 회복하던 중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돌아가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건강하셨다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수술도 벅찼을 테고 뼈가 붙으려면 내내 누워 계셔야 했으니 다른 신체 기능이 서서히 약해졌던 것 같다고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구는 퉁퉁 불어 터진 눈으로 내게 읊조렸었다.
남편과 나는 어머니를 억지로 병원까지 모시고 가서 기왕 병원에 간 김에 여러 가지 검사까지 마쳤다. 의사는 손목뼈에 금이 간 건 문제가 안 되지만 미세하게 부서져 다른 조직에 박힌 뼛조각은 염증의 소지가 될 수 있으니 빨리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간단한 수술이니 안심하라는 의사의 친절한 설명에도 어머니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수술 후 어머니는 수술 부위가 아물 때까지 3일 동안 입원하셨다. 링거병이 주렁주렁 달린 주삿바늘을 꽂고 침대에 누워 있으려니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어머니는 좀이 쑤신다고 푸념하셨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가 어떤 분인가. 병동에 입원한 지 겨우 몇 시간 지났을 뿐인데 옆에 누워 계신 할머니의 가족관계며 아들딸 며느리가 뭐 하는 사람인지, 하다못해 할머니네 집 숟가락 개수가 몇 개인지까지 알아내는 어머니의 친화력에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술 다음 날부터 어머니는 링거병을 달고도 병원 안을 줄기차게 활보하며 조금씩 기력을 회복하셨다. 반면 나는 죽을 지경이었다.
집안일과 요리에는 워낙 젬병인 데다 가뜩이나 다음 해를 준비하는 바쁜 시기에 어머니가 안 계시니 이런 난리가 따로 없었다. 손이라도 빠르면 퍼뜩퍼뜩 해치우겠지만 나는 느려터진 데다 쓸데없이 꼼꼼하기까지 해 설거지 한 번 하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싱크대에 놓아둔 그릇에 세제를 묻혀 닦다 보면 여기저기 자꾸만 더러운 이물질이 보였다. 설거지를 끝내면 그릇 건조대가 눈에 거슬리고 다음은 기름때가 잔뜩 낀 가스레인지와 후드 차례였다. 딸아이 아침밥을 챙겨 등교시킨 후 오전 내내 주방을 쓸고 닦았지만, 일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침 겸 점심 한술 뜨고 출근하여 밤늦게 귀가하는 올빼미 생활을 20년 넘게 하다 보니 집안일은 늘 어머니 차지였다. 손끝 여물지 못한 며느리가 미안한 마음에 주말 아침 걸레 들고 설치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일 벌이지 말고 좀 쉬라며 안쓰러운 얼굴을 내보이셨다. 책갈피 사이까지 일일이 먼지 한 톨 안 보이게 털고 책 정리할 때도 키 맞춰 나열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성미 급한 어머님 눈에는 꽤 답답했을 것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시작한 청소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어느새 점심때가 되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이맘때면 주방에서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주방으로 언제 건너가셨는지 어머님이 노릇노릇 막 구운 먹음직스러운 김치전을 후후 불어 입 안에 넣어 주셨다. 말이 필요 없는 그 맛에 마법처럼 이끌린 나는 하던 일 내팽개치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막걸리 한 통을 꺼내 식탁에 앉았다.
어머니와 마주 앉아 막걸리 한 사발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김치전을 곁들였다. 어머니는 간이 맞는지 물어보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따끈한 김치전을 한 입 베어 물고 우물거리느라 미처 말할 새 없이 고개만 빠르게 끄덕여 보였다. 어머니는 만면에 흐뭇한 표정이셨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