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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내조의 여왕[2]

살림은 아무나 하나

by 패셔니스타

망해버린 미역국을 되살릴 조치가 필요했다. 마늘을 넣으면 맛이 깊어진다는 어머님 말씀이 생각났다. 마침 냉동실에 찧어 얼려 놓은 마늘이 있었다. 나는 꽁꽁 얼려 놓은 큼지막한 큐브 모양 마늘 두 조각을 꺼내 국 속에 집어넣고 휘저은 다음 또 맛을 보았다. 어째 뭔가를 넣으면 넣을수록 맛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제야 처음 꺼냈던 정체불명의 간장 생각이 났다. 나는 사이다 페트병에 든 간장을 한 국자 더 부으며 제발 맛있어지라고 주문을 외웠다. 다행히 간이 되었는지 미역국 비슷한 맛은 났지만, 너무 짰다. 오래 끓인 데다 간장끼리 화학반응이라도 일으킨 모양이었다. 물을 추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을 한 대접 가져와 부으니 안 그래도 많던 국이 냄비 표면까지 올라와 찰랑거렸다.

이미지출처 - 블로그 미미

“어디 잔치라도 해?”

남편이 빈정거리듯 낄낄댔다. 의기양양했던 표정이 걷힌 것도 모르고 나는 불안한 속내를 애써 감춘 채 아무렇지 않은 듯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어머님이 만들어 두신 밑반찬과 김을 꺼내고 국이 넘칠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끓는 동안 잽싸게 솜씨 부린 계란말이와 콩나물무침을 곁들여 밥을 한 공기씩 퍼냈다. 국은 빨리 해치워야 하니 큰 대접 세 개에 최대한 많이 담았다.


가뜩이나 미역국을 싫어하는 딸아이는 식탁에 앉아 마늘 파편이 둥둥 떠다니는 국을 보자마자 질색했다. 남편도 양이 너무 많다며 작은 국그릇으로 국을 덜었다. 하루라도 빨리 미역국을 끝장내고 싶었던 내 본심을 들켜버린 것 같아 괜히 머쓱해졌다. 맛을 평가할 시간이 다가왔다. 남편과 딸아이가 한술 뜨자마자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맛있어?”

“... 으응.”

뼈 때리는 질문과 눅눅한 대답 사이, 지루하게 벌어진 찰나의 틈이 머쓱한 내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무어라 말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그 짧은 시간을 영원으로 느꼈을 남편이 애처로웠다. 요리에 일가견이 없는 아내가 어머님 안 계신 빈자리를 채우려는 노력으로 몇 시간이나 미역국과 사투를 벌였으니 당연히 칭찬은 해 줘야 마땅했으나, 생전 처음 맛보았을 미역국이 하얀 거짓말을 불렀을 것이다.


“한 번 먹는다고 맛이 느껴져? 건더기도 팍팍 좀 먹어 봐.”

음식의 호불호가 확실한 딸아이는 아예 국그릇을 밀어내며 안 먹겠다고 선언했다. 남편은 평소에는 손도 대지 않는 마른반찬만 깨작거리며 겨우 밥 한 공기를 비웠다. 내 할당량은 오기로 어떻게든 꾸역꾸역 채웠지만 남편과 딸아이가 남긴 국은 결국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그냥 있는 반찬으로 한 끼 때우면 된다는 남편의 만류에도 내가 끓인 따뜻한 국 한 그릇 먹이고 싶어 무리수를 두었다. 앞으로 며칠 동안 내 차지가 될 미역 다발을 보고 있자니 저걸 어떻게 해치울까 싶어 한숨부터 나왔다.


폭풍의 시간을 잠재운 해결사

어머니는 며칠 전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넘어지셨다. 휑한 바람 속 몸을 잔뜩 움츠리고 걷다 인도에 움푹 파인 곳을 미처 보지 못하셨단다. 들고 있던 장바구니가 방어막 역할을 해 주었기 망정이지 정말 아찔한 상황이었다. 찰과상은 물론이고 손목이 눈에 띄게 부어올랐는데 그까짓 것 약 바르면 괜찮으니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우기셨다.


몇 해 전 친구 어머니가 시골 재래식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다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셨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거뜬히 농사짓고 아들딸네 김장까지 도맡아 해 줄 만큼 건강하셨던 분이다. 대퇴부 골절 진단을 받고 대학 병원에서 수술 후 회복하던 중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돌아가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건강하셨다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수술도 벅찼을 테고 뼈가 붙으려면 내내 누워 계셔야 했으니 다른 신체 기능이 서서히 약해졌던 것 같다고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구는 퉁퉁 불어 터진 눈으로 내게 읊조렸었다.


남편과 나는 어머니를 억지로 병원까지 모시고 가서 기왕 병원에 간 김에 여러 가지 검사까지 마쳤다. 의사는 손목뼈에 금이 간 건 문제가 안 되지만 미세하게 부서져 다른 조직에 박힌 뼛조각은 염증의 소지가 될 수 있으니 빨리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간단한 수술이니 안심하라는 의사의 친절한 설명에도 어머니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수술 후 어머니는 수술 부위가 아물 때까지 3일 동안 입원하셨다. 링거병이 주렁주렁 달린 주삿바늘을 꽂고 침대에 누워 있으려니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어머니는 좀이 쑤신다고 푸념하셨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가 어떤 분인가. 병동에 입원한 지 겨우 몇 시간 지났을 뿐인데 옆에 누워 계신 할머니의 가족관계며 아들딸 며느리가 뭐 하는 사람인지, 하다못해 할머니네 집 숟가락 개수가 몇 개인지까지 알아내는 어머니의 친화력에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술 다음 날부터 어머니는 링거병을 달고도 병원 안을 줄기차게 활보하며 조금씩 기력을 회복하셨다. 반면 나는 죽을 지경이었다.


집안일과 요리에는 워낙 젬병인 데다 가뜩이나 다음 해를 준비하는 바쁜 시기에 어머니가 안 계시니 이런 난리가 따로 없었다. 손이라도 빠르면 퍼뜩퍼뜩 해치우겠지만 나는 느려터진 데다 쓸데없이 꼼꼼하기까지 해 설거지 한 번 하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싱크대에 놓아둔 그릇에 세제를 묻혀 닦다 보면 여기저기 자꾸만 더러운 이물질이 보였다. 설거지를 끝내면 그릇 건조대가 눈에 거슬리고 다음은 기름때가 잔뜩 낀 가스레인지와 후드 차례였다. 딸아이 아침밥을 챙겨 등교시킨 후 오전 내내 주방을 쓸고 닦았지만, 일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아침 겸 점심 한술 뜨고 출근하여 밤늦게 귀가하는 올빼미 생활을 20년 넘게 하다 보니 집안일은 늘 어머니 차지였다. 손끝 여물지 못한 며느리가 미안한 마음에 주말 아침 걸레 들고 설치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일 벌이지 말고 좀 쉬라며 안쓰러운 얼굴을 내보이셨다. 책갈피 사이까지 일일이 먼지 한 톨 안 보이게 털고 책 정리할 때도 키 맞춰 나열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성미 급한 어머님 눈에는 꽤 답답했을 것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시작한 청소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어느새 점심때가 되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이맘때면 주방에서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주방으로 언제 건너가셨는지 어머님이 노릇노릇 막 구운 먹음직스러운 김치전을 후후 불어 입 안에 넣어 주셨다. 말이 필요 없는 그 맛에 마법처럼 이끌린 나는 하던 일 내팽개치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막걸리 한 통을 꺼내 식탁에 앉았다.


어머니와 마주 앉아 막걸리 한 사발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김치전을 곁들였다. 어머니는 간이 맞는지 물어보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따끈한 김치전을 한 입 베어 물고 우물거리느라 미처 말할 새 없이 고개만 빠르게 끄덕여 보였다. 어머니는 만면에 흐뭇한 표정이셨다.

이미지 출처 - 사옹원 바삭한 김치전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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