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른아이 Jan 30. 2021

'엄마'의 'Mom'이라는 것

10. 10달을 품은 너를 만난 시간



10. 10달을 품은 너를 만난 시간




한번 터진 양수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쏟아졌다. 새벽이고 급작스런 상황에 잠깐 황당한 남편과 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남편과 달리 나는 곧 침착함을 찾았다. 온몸이 떨렸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남편도 멘붕인 상태인데 나까지 허둥지둥 대다간 내 멘을 잃을 것 같았다. 몸을 감싸는 두려움에 잠식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올 순간이었어.' 스스로를 마인드 컨트롤하며 분만실에만 챙겨가야 할 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하는 동안 배가 살살 아파왔지만 진한 통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양수가 터졌는데 통증은 미약했다.


분만 후기들읽어봤을 때 이슬이 비치고 분만을 시작하고 진행을 빠르게 하기 위해 양수를 터트리던데.. 나는 순서가 다르구나. 순산할 수 있을까. 새벽 2시의 뿌연 하늘을 바라보며 남몰래 걱정을 삭혔다.



-



분만실에 도착했을 때의 공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긴장이 풀어지고 아늑한 공간이길 바랬는데 스산한 새벽 날씨처럼 간호사들 역시 너무 차가웠다. 늦은 시간이라 피곤해서 그렇겠지.. 싶어도 옷깃을 여 밀정도로 찬 공기를 내뿜던 사람들. 분만실 자체도 익숙하지 않고 불편한데 간호사들까지 이러니 마음까지 불편해졌다.


출생신고 시에 필요한 주소, 직업, 전화번호를 묻고 분만에 대해 설명하는 간호사의 목소리와 표정은 기계적이고 냉소적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예전 병원에서 일할 때 내 모습이 생각났다.


'나도 이랬으려나.'


병원 자체가 공포였을 환자들에게 내 설명과 내 태도가 심리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을까.


간호사임에도 불구하고 '산부인과' '분만'에 대해선 무지하다. 졸업한 지 시간이 많이 흘렀고 산부인과 병동에 있지도 않았을뿐더러 출산 자체가 처음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역지사지가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



새벽 2시에 입원해서 담당의가 출근할 때까지 줄곧 분만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양수가 너무 많이 터져서 화장실 가는 것 빼곤 움직이지도 말라고 했다. 가만히 누워있는데도 패드가 젖는 게 느껴졌고, 특히 내진을 하고 나면 양수가 더 왈칵 쏟아지는 느낌이 크게 들었다.


새벽 2시부터 아침까지 자궁경관은 2cm에서 변동이 없었다. 아침 7시경, 교대 전 마지막으로 내진을 한 간호사가 나에게 말했다.


"원래 양수가 터지면 분만 진행이 빠른데.. 더딘 것도 그렇고 내진 상 속골 반도 좁은 편이니 수술도 염두하세요. 무엇보다 양수가 터진채 간을 끌다간 아가 위험하니까요."


그 말에 불안감이 엄습해져 왔다. 술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온갖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사실 38주부터 제왕절개를 할까, 싶은 생각도 잠깐 들었다. 막달이 되면서 몸도 힘든데 언제 나올지 모를 아기를 기다리는 시간마음까지 힘들게 만들었다. 마 숱한 출산 후기 속 생생하게 묘사된 출산의 고통이 너무너무 두려웠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주까지 온 이유는, 열 달을 품은 아기의 탄생을 직접 마주할 수 있다는 점, 회복력이 빠르다는 점, 엄마의 산도를 통해 나오면서 아기가 면역체계를 얻고 태어난다는 점. 앞으로 살면서 큰 수술을 할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가능한 몸에 칼을 대고 하고 싶지 않았다


8시가 넘어서 담당의가 회진을 왔고 하필 토요일이라 수술을 하게 되면 2시 이후에는 당직의 에게 수술을 받게 된다고 했다. 담당의도 나의 자연분만 의지를 느꼈는지 촉진제를 쓰며 좀 더 지켜보자 했다. 그런데 분만실 수간호사로 보이는 사람이 난리였다.


"이렇게 지체하다간 엄마만 힘들 거예요, "

"물론 아기도 뱃속에서 힘들 거고요."


그녀의 말투에서 수술을 강요하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이 말은 꼭 덧붙였다.


"결정은 엄마가 해요."


그녀의 태도에 안 그래도 불편한 마음에 조급함까지 곁들었다.



-


시간이 흘러도 진행이 더디자 수술할까? 싶은 생각이 여러번 들었다. 차라리 누군가 안된다. 수술해라. 라고 강하게 말해줬으면 싶어 남편에게 물어봤지만 남편은 오롯이 나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했다.


결국 담당의가 퇴근하는 2시경까지 나는 수술을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촉진제를 쓰면서 배는 아파오는데 진행이 더디니 나 역시도 죽을 맛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약해지긴 했지만, 쉽사리 포기가 되지 않았다. 결국 담당의가 퇴근하는 2시까지 자연분만 의사를 피력했다.


아직 수술을 하지 않겠다는 내 말에 수간호사의 낯빛이 바뀌며, "저녁 6시 이후에는 수술 안 돼요. 응급상황 아니고 산모가 아파서는 수술 안 됩니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 말이 어찌나 기분이 나쁘던지. 


수간호사의 태도에 남편은 수술을 시키기 위해 시간이 지나도 진행이 2cm 밖에 안된다고 말한 거 아니냐며 말할 정도였다.


다행히 퇴근 전 한번 더 회진을 온 담당의나의 상태를 관찰하곤 불안한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내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일단 저녁까지 있어보고 저녁 이후에도 진행이 없으면 수술합시다. 양수가 터졌으면 24시간 내에 분만해야해요. 당직의 에게 저녁이라도 수술을 해달라고 부탁해놨으니 마음 편히 가지세요."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


4시경, 촉진제를 맞는 도중 수축 그래프가 100을 찍으며 통증이 찾아왔지만 분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버티다 진통제를 한 대 맞고 얕은 잠을 청했다.


주기적으로 내진을 하기 위해 내 방을 들락날락하던 수간호사는 자연분만 의지가 강한 내가 내심 딱했는지 그제야 해보자며 공포의 내진이란 말답게 밑을 미친 듯이 휘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 6시가 넘어서까지 진행이 더 결국 수술을 했다. 계속 진행이 안되니 진이 빠졌고 더 이상은 아기에게도 좋을 것 같지 않았다. 16시간을 분만실에 있는 동안 여러 산모들의 비명소리 함께했다. 처음엔 산모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나를 공포에 몰아넣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분만한 산모들이 너무 부러웠다.


고심 끝에 수술을 한다 하니 그제야 친절해진 간호사들. 

히 내 속을 뒤집었던 수간호사는 수술실에 가는 나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엄마는 할 만큼 했어요."


병 주고 약 주나, 싶으면서도  한마디에 마음이 울컥했다.


수술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수술실로 가는 순간까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이 보고 싶어 하반신 마취를 물어보니 응급상황이라 전신마취만 가능하다 하질 않나 남편이 탯줄 자를 수 있냐니 지금 코로나고 감염위험 때문에 어렵단다.


정말 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구나. 싶어 속이 많이 상했다. 16시간 동안 꼬박 내 곁을 지킨 남편도 내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지 않을까. 또 아들 둘을 자연 분만한 시어머니도 둘째는 양수가 먼저 터져서 병원을 갔는데 수술 얘기를 듣고 다른 병원에 가서 자연분만했다고 한다. 그런 얘길 들으니 병원이라도 바꿨어야 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오롯이 엄마만이, 진행이 늦으면 더 고생하지 말고 수술하는 말을 해주었다.


내 자식이 지 새끼 놓는다고 고생한다며 엄마는 카톡으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 글자 한 글자 읽을수록 지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엄마의 말이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쏟아졌다.


목소리까지 들으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 국 수술 전 전화 대신 짧은 카톡으로 마에게 인사했. 엄마 역시 통화하면 눈물이 날 것 같은지 전화를 걸지 않았다. 



-



드디어 수술실 안.

수술실 침대 위 대자로 누워 수술 전등에 비친 나를 보았다. 꽤 담담하게 들어왔지만 막상 수술한다니 두려움이 몰려왔다. 수술도 염두에 뒀으면 이 공포가 덜했으려나. 출산 후기도 자연분만 위주로 읽었는데..


여러 생각을 하는 동안 수술을 집도할 의사가 들어왔다. 열 달을 진료 봤던 의사가 아닌 난생처음 보는 의사 얼굴에 더욱 무서워졌다.


이 의사는 수술을 잘하는 의사일까? 내가 산부인과를 제대로 선택한 게 맞나?


내 속을 알 리 없는 의사는 내 몸에 차가운 소독약을 바르며 말했다.


"수술 부위 절개는 15~20센티 정도 될 겁니다."


흉터 길이가 그렇게나 크다니.. 애써 부여잡고 있던 멘탈이 흔들리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수를 확인한 간호사는 나를 안심시키기 바빴다.


"엄마, 왜 이렇게 심장이 빨리 뛰어요?"

"무서워요? 괜찮아요. 곧 잠들게 해 줄게요."

"심호흡해봐요. 자고 일어나면 다 끝나 있을 거예요."


나를 다독이던 그녀의 목소리. 내가 좀 진정되는 듯 보이자 그녀는 내게 아기의 태명을 물어보았다. 그녀와 대화하자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고 노곤함이 느껴졌다. 힘들었던 16시간, 이젠 얼른 자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태명의 뜻까지 친절히 물어봐주던 그분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Mom'이라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