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아프다면서도 할머니는 어제오늘 진종일 호태산에 있었다. 달래며 냉이, 씀바귀, 고비 등 가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봄나물들을 모조리 캤다. 나는 아무리 봐도 안 뵈는데 할머니 눈에는 그 쬐끄만 것들이 잘만 보인다. 할머니는 눈이 어두워 바느질은 못하지만 나물 찾아내는 데는 선수다. 오죽하면 옆 집 은숙이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한테 나물 귀신이라고 할까.
전에는 산에서 마구잡이로 캐 온 나물을 그냥 내다 팔았다. 근데 언젠가부터 할머니는 캐 온 나물을 방에 넣어놓고 또 일을 했다. 요즘은 종류별로 갈라놓지 않은 나물은 사람들이 사가지 않는다면서.
오늘도 일찌감치 저녁 먹고 늦게까지 나물을 손질할 게 뻔하다. 내일이 산성시장 장날이니까. 할머니는 나물 손질할 때마다 나를 옆에 붙들어 앉혀둔다. 나물에 묻어온 덤불이나 잡풀을 가려내라고. 다른 때 같으면 몸이 배배 꼬일 정도로 하기 싫은 일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할머니 옆에 딱 붙어서 심부름도 하고 풀이며 돌을 열심히 고를 거다. 할머니가 하라는 대로 군소리 없이. 그래야 내일 장에 따라간다고 말을 붙일 수 있으니까.
요즘 은숙이 계집애 머리에서 번쩍번쩍 빛이 난다. 눈이 부실 정도로 초롱초롱한 빨간색 반짝이가 가운데 박힌 분홍 리본 머리핀. 우리 마을 아이들 누구도 그런 머리핀을 갖고 있지 않다. 지난번 은숙이네 집에 모여서 봤던 테레비 연속극에 나오는 서울 아이 머리통에서나 본 것 같은 머리핀이었다. 슬쩍 물어보니 지난 장날 아버지가 산성시장에서 사다 줬다고 했다. 갖고 싶다. 너무 갖고 싶다. 내 기억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무언가를 이렇게 간절하게 가지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나물을 팔고 나면 할머니를 졸라 나도 내일 기필코 그 머리핀을 갖고야 말리라. 그러려면 오늘 나는 순이가 아니고 할머니 입속의 혀가 된 것처럼 굴어야 한다.
근데 왜 벌써 눈꺼풀이 턱밑까지 내려 오냐.. 낯에 호태산에서 진달래 찾는다고 너무 돌아다녔나...
1975년 4월 어느 날
달력을 보지 않아도 금강교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산성시장 장날을 알 수 있다. 자전거에 짐을 잔뜩 실은 할아버지들이 유독 많이 다니고, 화사하게 꽃이 핀 화분이며 꽃보다 더 싱싱한 대파며 찬거리로 가득 찬 손수레를 돌돌돌 끌고 다리를 건너는 할머니들이 많이 보이면 그날이 바로 산성시장 장날이다.
산성시장은 상설시장이다. 언제든 가면 물건을 살 수 있다. 하지만 매 1, 6일이면 시장이 배로 커진다. 아니, 배로 커진다는 계산은 시장의 공간적 규모만 따진 계산이다. 상설시장을 중심으로 주변 사방에 노점상이 들어서면서 바깥쪽 상점들과 한 덩어리로 뭉쳐져 시장이 확장되기 때문이다.
유통 규모로 보자면 배 이상이다. 장날이면 어김없이 상설시장 안쪽 통로를 따라 좌판들이 끝도 없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나물이며 채소들을 조랑조랑 펼쳐 놓고 자리 잡은 할머니들은 다들 어디서 오셨는지. 물건을 펼쳐놓고 앉아계시는 어르신들도 많지만 파는 물건도 가지가지다. 올망졸망 알감자에 아직도 싱싱한 꽃이 붙어있는 오이, 소복한 흰 꽃이 함빡 피어있는 대파와 금방 밭으로 달려갈 것 같이 싱싱한 상추며 고추에 호박에, 이름을 다 알 수 없는 나물 천지다. 작년에 다녀간 채식주의자 큰 조카 녀석은 이곳을 두고 베지테리언의 성지라며 좋아라 했다.
한 번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 장날이었는데 시장 안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다가 어느 할머니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할머니 앞에 놓인 채소가 그 주변에서 가장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할머니의 손이 많이 간 듯 보였다. 비가 오니 파전이나 부쳐 먹을까 싶어 쪽파와 꽈리고추를 사면서 할머니와 말을 섞었다.
“어르신! 비도 오고 날도 쌀쌀해서 얼른 다 팔고 들어가셔야겠어요. 근데 아직 많이 남아서 어쩌죠?”
“괜찮아유. 오늘 다 못 팔면 내일 팔면 되고, 그래도 남으면 집이서 반찬 해 먹으면 되쥬.. 장에 나오면 사람들은 우리 물건 구경하는 재미고 우리는 사람 구경하는 재미지유 뭐..”
쿨한 어르신은 식구가 단출해 더 많이 팔아드리지 못하는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해 주셨다. 가지고 나온 채소들이 제법 남아있었는데 다 팔고 가볍게 들어가셨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