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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일장춘몽 Jun 17. 2022

무령왕릉에서 떠올려 본 옛날이야기

낯선 눈으로 보고 쓰는 공주

  

송산에 와서 연꽃무늬 벽돌을 만들기 시작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무령왕이 승하하시고 달포가 지나고부터 시작했으니 이곳에서 먹고 잔 지 두어 달이 더 됐다.     


요즘 송산 일대는 장관이다. 돌아가신 왕의 무덤을 만드는 일이니 왜 아니겠는가. 각지에서 한다 하는 솜씨 좋은 사람들이 다 모였다. 벽돌 만드는 기술자만 해도 그렇다. 나 같은 연꽃무늬 벽돌공, 민무늬 벽돌공, 동전무늬 벽돌공, 빗살무늬 벽돌공 해서 벽돌 만드는 기술자만 해도 서른은 거뜬히 넘긴다. 거기에 배수로 파가면서 바닥 까는 이, 벽돌 쌓아 묘실 만드는 이, 금은 세공하는 이, 각각을 감독하는 이 등등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각지에서 모아 온 무덤 만들 재료며 껴묻거리는 또 어떻고. 웅진 일대 좋은 흙이란 흙은 다 퍼오고 좋은 나무란 나무는 다 잘라왔다. 왕의 관을 만들 나무는 바다 건너오느라 아직 도착도 못했단다. 지난번 얼핏 본 껴묻거리도 엄청나게 많은 것 같았다. 뭐가 들었는지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장정 열댓 명이 끙끙거리며 옮기는 모습을 봤다.     


왕의 무덤을 만드는 것도 분에 넘치는 황송한 일이고 돌아갈 때 섭섭지 않게 품삯을 쳐주는 것도 좋지만 집에 혼자 두고 온 각시 걱정에 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지금쯤 배가 더 많이 불렀을 텐데. 여기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서너 달 안에 돌아가기란 애저녁에 그른 것 같은데 혼자 애 낳을 각시 생각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애먼 짓을 하게 된다. 아까도 각시 생각하다가 벽돌에 찍은 연꽃잎이 뭉그러져 혼쭐이 났다.     


그나저나 이놈의 장마나 빨리 끝나야 일이 착착 진행될 것인데...



                                                                                                        523년 7월 어느 날               






공주는 무령왕의 도시다. 공산성 앞 로터리에는 360도 회전하는 무령왕 동상이 웅장하게 서 있고 매년 6월이면 공주시장을 제관으로 하는 무령왕 추모 제례를 지낸다. 만약 공주에 무령왕릉이 없었다면 지금의 국립공주박물관은 규모나 위상이 지금보다 훨씬 작았을 것이다.     


1971년 7월. 1448년 전에 봉인된 백제의 타임캡슐이 열렸다. 그것도 너무나 어이없게. 무령왕릉은 폭우가 연이어 쏟아지는 장마 중에 송산리 5, 6호분의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배수로를 파다가 우연히 발견됐다. 발굴 순서로 따지자면 무령왕릉은 송산리 7호분이다. 일제의 무자비한 문화재 약탈과 도굴을 굳건하게 견뎌온 무령왕릉이었지만 준비 없는 발굴과 취재경쟁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무덤의 입구를 여는 순간 견고한 벽돌로 쌓이고 다져진 흙과 풀뿌리로 단단히 봉합되어 있던 1400여 년 전의 왕릉에 당시와는 전혀 달라진 환경과 습기마저 잔뜩 머금은 장마철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들어가면서 내부가 심각하게 망가졌다. 게다가 무분별하게 취재 경쟁을 벌이던 기자들로 인해 유물이 훼손됐다. 결국 한반도 고대사의 비밀과 가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대단한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무령왕릉 발굴은 고작 이틀 만에 모두 끝나버렸다.

이 무슨 어이없는 일이란 말인가.     


중국 시안에 있는 진시황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무령왕릉과 비슷한 시기에 발견된 진시황릉은 지금까지도 열지 않고 있다.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보고 오는 것은 진짜 진시황릉이 아닌 릉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다. 현재의 기술로는 고대의 릉을 훼손하지 않고 발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적당한 시기가 되기 전까지는 발굴 조사도 시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왜 그런 느긋함이 없을까. 뭐가 그리 급해서 조건이 하나도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발견하자마자 문을 열어버리고 떼로 몰려 들어가서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손으로 유물을 훼손했을까. 앞으로 한두 세기 안에 다시없을 고고학적 대 발견이었다면서.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 고분군과 국립공주박물관은 한옥마을을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다. 산책로를 통해 걸어서 갈 수 있는 모양인데 공사 중이라고 길이 막혀 있었다.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부장품들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무령왕릉에는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여러 부장품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동물 모양 꾸미개와 유리 동자상, 은허리띠 드리개였다. 앙증맞은 동물 모양 꾸미개와 유리 동자상은 신라의 무덤에서 출토된 토우와 비슷한 의미인 것으로 보인다. 은허리띠 드리개는 아름답고 정교한 백제의 세공술뿐 아니라 도깨비, 백호, 주작 등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두꺼비 장식이 가장 마음에 든다.     


무령왕릉은 볼거리 면에서 좀 아쉽긴 하지만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 고분군은 산책하기에 좋은 장소다. 사람은 올라갈 수 없는 백제의 무덤 위를 마음껏 뛰어다니는 고라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숲이 좋아 어쩌면 공산성보다 산책하기 더 좋을 수도 있다. 아니, 숲이 좋은 사람은 송산리 고분군으로 강이 좋은 사람은 공산성으로. 공주는 걷고 산책하기 좋은 도시임에 분명하다.                                        


무령왕릉 내부 모형.  원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하필 공사 중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무령왕릉의 무령왕릉 내부 전시


공주박물관의 무령왕릉 내부 전시


동물 모양 꾸미개


유리 동자상


은허리띠 드리개


나의 공주박물관 최애템 두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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