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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일장춘몽 Jun 20. 2022

정안천에서 떠올려 본 옛날이야기

낯선 눈으로 보고 쓰는 공주


아, 매나 다행인가 몰러. 쩌기 우성 끝자락이나 사곡만 허드라도 날이 가물어서 모내기는커녕 밭에 심어둔 풀떼기도 픽픽 쓰러진다고 허는디 우리는 보물 겉이 귀헌 정안천 덕분에 올해도 옳게 모내기를 허게 생겼잖여.     


예전 언젠가 정안천도 쪼그라 붙을 정도로 지독한 가뭄이 들었을 때는 벼농사고 밭농사고 폭삭 망해 부러서 고생고생 내 평생 그런 개고생이 읍섰다니께. 애고 으른이고 간에 해만 뜨면 금강변꺼지 가서 물을 길어 와 줘도 티도 안나, 작물들은 바짝 바짝 타들어가, 오죽허믄 자다가 헛소리가 들렸다니께. 비가 오시는 줄 알고 반가워서 벌떡 깼다가 김새서 날 밤 샌 적도 많었어.     


농사꾼이 농사일 허는디 뭐니 뭐니 해도 제일 큰 복은 물이여. 아무리 존 종자를 아무리 존 땅에 심어도 물 읍스믄 암 껏도 안된다니께. 물이 있어야 종자의 싹이 트고 물이 있어야 땅의 영양을 빨아먹고 작물이 크잖여. 안그려?      


신관 일대가 금강 인근이라 물이 좋지만서두 여름에 큰 비라도 오믄 홍수 질라 걱정이고 조만간 그리로 신작로가 난다니께 복잡혀서 거그는 글렀어. 평생 농사꾼 농사짓고 살기에는 정안천 가차운 여그가 딱이여. 딱.


              

                                                                                                  1971년 5월 어느 날                    






벚꽃 피는 봄도 좋고 단풍 드는 가을도 좋지만 정안천은 뭐니 뭐니 해도 여름이 최고다. 길게 이어지는 메타세쿼이아가 푸른 터널을 이루고 지천으로 피는 연꽃이 우아한 아름다움을 뽐내기 때문이다.     


정안천과 제민천은 금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제민천이 공주의 흥망성쇠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그 모든 시간을 함께 했다면 정안천은 공주 일대 사람들과 함께 묵묵히 굳건히 흘러왔다고 할 수 있겠다. 공주는 오랜 시간을 두고 제민천을 기준으로 대부분의 관공서와 학교, 시장, 상가들을 조성했다. 반면 정안천 주변은 별 게 없다.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는 게 전부다. 자연히 공주를 찾는 사람들의 관심은 제민천 일대로 몰리지 정안천까지 돌아보지 않는다.      


대신 정안천은 찐 공주사람들이 찾는다. 정안천은 제민천보다 폭이 넓고 유량이 많다. 물도 더 깨끗하다. 정안면, 의당면 사람들은 정안천의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짓고 월송동, 신관동 사람들은 정안천에서 산책하고 운동한다. 신관동 일대 정안천에는 생태공원이 꾸며져 있다. 원래 농공단지로 사용하다 버려진 곳을 지역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자연을 되살리고 공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여름에 정안천을 산책하려면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제민천은 주변에 상업시설이 많아 별 준비 없이 나서도 걷다가 볕이 너무 뜨겁거나 목이 마르면 인근 카페에 들어가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며 쉬어갈 수도 있고 화장실이 급할 때도 걱정이 없다. 하지만 정안천은 지극히 자연친화적이다. 공원이라고 해도 물 한 병 살 간이매점도 없다. 제민천에 촘촘히 이어지는 다리도 전혀 없다. 천변이라 그늘도 별로 없다. 아무런 준비 없이 나갔다가는 얼마 걷지 못하고 되돌아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안천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 좋은. ‘우리끼리’만 아는 ‘우리 꺼’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정안천에서는 느릿느릿 걸으면서 풀꽃을 보고 나무를 보고 연못을 보고 흐르는 물을 보기에 좋다. 다른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눈에 한가득 하늘을 담고 산을 담기에 좋다. 꾸미고 세련된 맛이 없어서 더 좋다.     


정안천에도 제민천처럼 오리 가족이 살고 있다. 정안천에 사는 오리들이 제민천 오리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건 내 눈에만 그런가?                         







공주 IC 방향 서울 가는 길. 서울 가고 싶다!   엄마한테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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