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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유인간 Apr 21. 2020

발전욕 수련하기

백수가 된 지 7개월째의 일기

대부분의 사람은 발전하고 싶어 한다.


‘OO를 보면 항상 나도 그렇게 발전해야겠다는 영감을 받는다,’  

‘힘들었지만 지난 1년 간 많이 성장했음을 느끼고 뿌듯하다.

와 같은 말들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으며 서점의 베스트셀러는 자기개발서가 잠식한 지 오래됐다.


너무나 흔하고 당연한 문장인데, 요즘의 나는 이런 말이 묘하게 거슬린다.


식욕, 성욕, 명예욕 따위의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 중 하나로 ‘발전욕'이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발전'이라는 것은 때때로 ‘사랑’처럼 그 자체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로 여겨진다.

그런데 과연 발전이란 그 자체로 추구되어야 하는 가치인 것일까? 아니면 행복이나 사랑과 같은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인 것일까? 왜냐하면 행복이나 사랑과 달리, 나는 가끔 발전의 끝에서 허탈함을 느껴봤기 때문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목표하던 바를 열심히 이룬 그 끝에서는 '이제 다음 단계는 뭐지?', '내가 뭘 위해서 이렇게 노력했던 것이지?'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어쩌면 발전하고 싶다는 욕구를 넘어, 발전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변질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때로 발전하지 못하고 시간만 지나가고 있음에 괴로워한다.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숱하게 보냈다.


하지만 인간의 욕구란 마음 가는 대로 두면 안 되는 것이 보통이다. 식욕이 시키는 대로, 성욕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인간은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간에게는 항상 욕구가 있었고, 문명이 발달할수록 다양해졌지만, 이성으로 어느 정도 다스려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발전욕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돌아보면 이 발전욕만 다스리면 나는 더 행복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 많았다. 


여전히 답은 확신하기 어렵다.
이런 내 생각은 정체되어 있는 자의 자격지심인 걸까?
그런데 발전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발전한다면 과연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얼마나 발전해야 만족할 수 있을까? 아니, 만족이란 것이 가능한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일종의 발전인 것일까?


여전히 내 주변 사람들은 잘 나가고 나만 정체되어 있다. 친구들은 회사에서 높은 직급으로 출세하거나, 좋은 곳으로 이직한다. 새로 회사를 차려 사장님이 되기도 한다.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도 잘한다. 상을 받기도 하고, 책을 쓰기도 한다. 그들의 부동산과 주식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른다. 

정체되어 있으면 가만히 수준을 지키는 게 아니라 뒤쳐지는 것 같다. 그 격차를 언제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게 바로 내가 본 '발전욕'의 일부이다. 

나는 이것을 똘똘 뭉쳐서 '발전욕'이라는 공 안으로 넣어버리고 내 마음 한 구석에 고립시킨다. 그리고 그 공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발전하기가 쉽지 않듯이 발전욕을 다스리는 것도 쉽지 않다. 한 번은 공감했을 지라도 외부 요인에 의해 발전욕은 항상 자극되곤 한다. 항상 꾸준히 생각하고 운동을 하듯이 수련해야 한다. 그리하면 결국 그 끝엔 매번 평온함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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