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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May 20. 2023

치유의 밤

에세이

잠 못 드는 밤에는 축복이 있으리라.


좀처럼 밤에 잠들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밤에 시간을 때우려고 노력을 부단히 했는데, 보통 게임이나 인터넷 세상을 들여다볼 때가 많았다. 그럼 거기엔 나 같은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비슷한 처지의 잠 못 드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비대면으로 정을 쌓다 보면 안타깝게도 대부분 감정은 더 공허해졌던 거 같다. 물론 이미 구멍 난 우물에 물을 채운다고 채워질 리가 없었다. 나는 쓸데없이 갈구하는 마음만 커져갔다. 사람에 대한, 사랑에 대한. 그리고 치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치유를 위해서 나는 기도하고 책을 읽었다. 수행자처럼. 그런데 그게 효과가 딱히 크진 않았다. 더 많이 알고 더 염세적으로 구는 회의주의자가 됐을 뿐.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시간이 지금 와서 꽤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지금 그때 그 시간들은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아주 멀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행동했던 내가 지금의 나와 얼마나 닮았을까? 전혀 닮지 않았다. 한 치도 닮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의 나의 감정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그런 감정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침잠하던 순간의 내가 느꼈던 마음 어딘가의 그 꼬릿 한 감정, 쉰 내 나는 듯한 그 감정, 그러면서도 참으로 아련한 그 감정을 가끔 느낄 때면 나는 생경한 기분이 든다.


어떻게 지금의 나는 그것과 멀리할 수 있었나.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들여다봤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한이 있더라도 그 마음을 붙잡고 싸웠다. 인생에서 해결한 문제가 있나, 당신이 낸 성과가 있나?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우물쭈물거렸다.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마음과 씨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사회적인 성과와 조금 거리가 멀다. 그러나 마음을 붙잡고 놓지 않는 사람들, 결국 치유해 내는 사람들이야 말로 인생의 엄청난 업적을 만든 거나 다름없다. 그러니 당장 잠 못 드는 밤을 조금 보낸다 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 


잠 못드는 밤에는 치유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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