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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감감무 Dec 11. 2024

그날부터

설거지를 하려 했었다. 보통 밤 열 시에서 열한 시에 그날의 마지막 설거지를 한다. 밤늦게 퇴근하는 동생이 집에 와서 간단한 한 끼를 하고 난 다음이 그즈음이다. 동생이 아직 퇴근하지 않았지만 쌓인 설거짓거리가 많아서 미리 좀 해놓을 마음을 먹었다. 설거지하는 동안 보고 들을만한 것 없나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제일 위에 뜬 대국민담화 발표라는 썸네일을 보게 됐다. 이 시간에 무슨 발표지 하는 미약한 의문 정도만 들었다. 그래도 궁금하니 재생을 했고 그대로 굳은 채 그가 하는 말을 다 들었다.


말의 어처구니없음이 지나쳤던 탓일까, 처음에는 그냥 인용하는 식으로 다른 어떤 말을 하는 건데 내가 잘못 알아들은 건가 하는 착각도 했다. 아니었다. 뉴스와 다른 라이브 영상을 밤새 찾아봤다. 국회의원의 진입을 막는 군·경이 보였고 그들에게 항의하거나 담을 넘는 이들이 보였다. 교과서에 있는 역사이자 흉터가 아닌 현장에서 벌어지는 중인 상처이자 폭력이었다. 모든 것이 실제였다.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것은 소극적으로 찬성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이승우의 문장이 뒤통수를 갈기듯 생각났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소극적으로 동조하는 것이었던 것 아닐까. 인생에서 가장 큰 부끄러움을 내 방구석에서 느꼈다.


촛불집회에 다녀왔다. 응원봉을 들고 웃고 떠들며 노래를 틀고 행진하는 군중들은 질서정연하기까지 했다. 해야 할 행동과 말해야 할 말을 아는 그들은 당당하고 건강해 보였다. 얼마 있지도 않았는데 피곤함을 느낀 나는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SNS를 켜봤다. 사람들은 평소와 같이 술을 마시고 운동을 하고 친구를 만나는 것을 올려놓고 있었다. 인간이 다중적이기에 세상도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다중성이 내게는 혼란과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누구는 폭력을 가하고 누구는 그에 저항한다. 누구는 이쪽에 동조하고 누구는 저쪽에 동조한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방구석에서 그걸 구경만 하고 있고 누군가는 그러든가 말든가 한다.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내가 있다. 쓸쓸하고 한심하고 쪽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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