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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 Feb 15. 2019

죽어버린 낭만을 애도함

캐리 브래드쇼와 알렉산더 패트로프스키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아마도 섹스 앤 더 시티의 시즌 6의 어느 에피소드였을 것이다. 전형적인 미국 여성 캐리는, 문화적 풍토가 달라도 너무 다른 러시안 아티스트와 데이트를 하게 된다. - 물론 미국인과 러시아인의 정서적 차이가 극과 극에 있다고 하기에는 비약이 있으나, 이 극의 작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성향'을 상징하는 장치로 미국과 러시아를 선택, 대조하고 있다 - 캐리는 그가 시를 읽어주고, 그녀를 위한 피아노 곡을 연주하는 것에 그동안의 남자 친구들에게서는 겪어보지 못한 감동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나치다 싶은 그의 낭만에 오글거림을 동시에 느낀다. 어쩌면 캐리가 느낀 그 오글거림은 현대를 사는 누구에게나 적용될 미학적 세대차이와 같은 것이리라. 나는 어릴 때 시를 쓰는 것을 좋아했는데, 친구들에게 내가 쓴 시를 읽게 한 적은 없었다. 시라는 것은, 그러니까 문학적 낭만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멜랑콜리의 감상을 두서없이 나열해둔 것은, 어쩌면 담백한 유머와 심플한 개그코드가 관계에 있어 더욱 설득력 있는 미학적 경지로 인정받는 요즘에는 참기 힘든 오버 필링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캐리와 러시안 아티스트 남자 친구 페트로프스키의 낭만뿜뿜 에피소드는 내심 어린 날, 나 스스로의 주체할 길 없는 시심이 누구에게 내보이기 문득 쑥스러웠던 지점, 그 지점을 떠올리게 한다. 



맥도날드에서의 캐리와 알렉산더


캐리는 완벽한 드레스를 입고 그와 함께 오페라를 보러 갔다가 완벽한 순간에 완벽한 왈츠를 추는 장면에서 지나치게 전형적인 로맨스의 정점에 다다르고, 헤어날 수 없는 오글거림에 기절을 하고 만다. 결국 그 에피소드는 두 사람이 느끼함의 끝자락에서 도망치듯 맥도날드로 피신해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하면서 키스를 나누는 것으로 장식되며 현대적(?) 로맨스를 찾는다는 데에 안도하는 것으로 접점을 찾는다. 완벽한 배경과 로맨스 서사의 마침표로서의 왈츠가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의외성을 가진', 그래서 '얼마든지 있을 법한', 공간에서의 신낭만주의적 댄스(?)가 보통의 현대인에게는 더 받아들이기 쉬운 귀결이 된다는 것. 디즈니 동화에나 나올 법한 'Happily ever after'의 감성은 아무래도 견디기 힘든 진부함이 되어버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음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한 일말의 향수를 함께 내비치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전형적이고 클래식한 낭만에 대한 새삼스러움과 비현실적이라는 거리감을 적절한 양의 현실성으로 희석하여.




문득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이 드라마의 이 에피소드가 굳이 생각난 것은 도무지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나 자신도 정확히 설명하기는 힘들다. 다만 모든 정보가 카드 뉴스나 동영상 클립처럼 빠르게, 짧게, 핵심만 요약되어 편집되고 큐레이팅 되는 - 또는 그렇게 되길 요구받는 - 요즘 같은 시대에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숨 가쁘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이 그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새로움을 찾다 찾다 때로는 감정을 소비하고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까지 세련되고 힙한 것을 운운하게 되는데, 그게 진짜 세련되고 힙한 것인가 난 잘 모르겠기도 하고.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은 과하다 싶은 촌스러운 낭만을 아무래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 맨 정신에는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을지언정 그래도 사랑의 시를 쓰고, 낭만의 노래를 부르고, 달콤한 춤을 추는 그런 감성을 여전히 동경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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