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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숲 May 12. 2022

시가 있는 저수지

- 포천 고모리저수지

고모리 저수지에서 ‘시’를 만나다.

하늘이 시커멓게 가라앉아 있다. 미세먼지에 공장 연기까지 더해진 듯 시꺼멓고 뿌연 하늘이지만 오월의 비는 하늘색도 아랑곳하지 않고 밖으로 손짓을 한다. 어서 나와서 촉촉해진 대지의 냄새를 맡으라고.


포천의 고모리저수는 이름부터 특이하다. 고모리. 포천시 소홀읍 고모리에 있는 저수지이니까 고모리 저수지라 불렀을 테지만 여기엔 또 아릿한 내력이 있다.


고모리 저수지는 농업용수를 끌어오기 위해 판 저수지이다. 포천의 또 다른 저수지인  산정호수를 냉면 그릇이라 한다면  고모리저수지는 간장 종지만할까.  


저수지이지만 호수로 부르겠다.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고 주변에는 크고 작은 카페들과 레스토랑들호수를 에워 싸고 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풍경에 봄날의 정취가 가득하다.



제철을 만난 철쭉이 둘레에 붉은 수를 놓고 있고, 데크를 따라 작은 야생화들이 나도 좀 봐 달라며 손짓을 한다. 비가 내리는 날은 마음도 촉촉해지고 부드러워진다. 갓 구워낸 카스테라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싱그러워보인다.


주민 자치회와 함께 만들어 낸 호수공원



고모리 호수공원은 소홀읍 주민들의 손때가 가득 묻어 있다. 호수공원을 찾는 이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상징물을 세웠다. 나뭇잎 모양의 호수공원 상징물은 500년 동안 온전한 자연의 모습으로 보존된 원시자연림인 포천국립수목원을 의미하며 원형 상징물은 맑고 푸른 호수를 상징한다.


공원 안에는 선사시대의 고인돌을 연상케하는 거대한 바위를 포개 놓은 조형물이 보인다. 김종삼 시인의 시비이다.



포천과 김종삼 시인

시비의 윗돌에는 ‘김종삼 시인의 시비’라고 적혀 있고, 아랫돌에는 그의 시들이 새겨져 있는데 조각가 최옥영의 작품으로 글씨는 서예가 박양재가 썼다.우리나라 시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비로 평가받는다.


위돌에는 시인의 작품 중 순수문학의 시 세계를 대표하는 ‘북치는 소년’이, 아래 돌에는 분단문학의 대표시인 ‘민간인’ 가 새겨져 있다.


시비 우측에는 고천상병,  신경림, 김광림 시인 등 9명의 서명이 담긴 시비록이 있다.


이 시비가 호수공원에 세워지기 까지는 마을 주민들의 노력이 있었다.

시비는1993년 시인의 사후 9년 후에 만들어져 광릉수목원 근처의 수목원가든에 18년간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광릉수목원 주차장 조성으로 사업부지로 수용되면서 이전이 불가피해졌다.


마을 주민들은 시비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주민자치위원회 이제승 위원장이 지역 유지들과 유족들을 설득하고, 포천 시청에 이전 경비 지원을 요청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시인의 시비는 타 지역이 아닌 포천시 고모리 호수공원으로 이전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북치는 소년


내용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광장의 호수가에 그의 대표작을 적은 나무 시비가 걸려 있다. 시 하나씩 하나씩 꼼꼼하게 읽으며 나간다 어차피 비도 오니 딱히 할일도 없다.


처음 읽는 시였지만 마음 속에 그대로 들어 앉는 느낌이다. 먹먹한 느낌 때문에 비오는 호수 공원에서 한참이나 뱅글뱅글 맴돌았다. 빗방울이 시가 적힌 나무를 데구루르 굴러 떨어지다가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나무 밑에 데롱데롱 달려 있다. 시인의 시에는 어떤 절망이나 슬픔 같은 것이 느껴져서 대놓고 하는 위로가 아닌 보이지 않는 위로가 느껴졌다. 어쩌면 이 시인의 팬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달구지길>

평범한 이야기


<물통>

희미한

풍금 소리가

툭툭 끊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에 대해

다름아닌 인간을 찾아다니며

물 몇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고


머나먼 광야의 한복판 얕은

하늘 밑으로

영롱한 날빛으로

하여금 따우에선


<나의 본적>

나의 본적은 늦가을 햇볕 쪼이는 마른 잎이다.

밟으면 깨어지는 소리가 난다.

나의 본적은 거대한 계곡이다.

나무 잎새다.

나의 본적은 푸른 눈을 가진 한 여인의 영원히 맑은 거울이다.

나의 본적은 차원을 넘어다니지 못하는 독수리다.

나의 본적은

몇 사람 밖에 안 되는 고장

겨울이 온 교회당 한 코퉁이다.

나의 본적은 인류의 짚신이고 맨발이다.


시인과 포천의 인연은 거의 없어 보인다. 시인은 1921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평양 광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도요시마 상업학교를 졸업했다.1953년 신세계에 원정을 발표하여 등단. 과격한 졸임과 건너띰이란 시의 본질을 꿰뚫는방법으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창조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약 200편의 시를 남겼다.1983년 대한민국 문학상을 수상했다.


<민간인>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묵화>

물먹은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시인과 포천의 인연은 포천의 부인터 공동묘지에 그의 부모님들의  묘가 있다.


<어머니>


나는 속으로 치열하게 외친다.

부인터 공동묘지를 향하여

어머니 아직 나는 살아있다.


 포천은 시인의 영혼의 마지막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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