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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신애 Jan 26. 2022

어떤 특별한 시작,

새해를 위해 유서를 써보자

늘 잘 살고 싶었다. 성공하기 위해 애도 많이 썼다. 브라보를 외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긴장 속에 안간힘을 쓰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할 때가 더 많았다. 온몸이 노곤할 정도로 나 자신을 혹사시키기도 했다. 즐거운 때도 있었지만 고뇌와 좌절이 극심해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때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참고 견딘 것은 언젠가 반드시 성공해서 잘 살겠다는 목표와 집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게 인생을 산다.


그 와중에 찾아오는 새해는 설렘과 희망의 상징이다. 지난해 망쳐버린 시간들, 달성하지 못한 목표와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대한 속 쓰림을 만회할 또 한 번의 기회이니 참 다행스럽다. 어제를 뒤로 하고 새 마음가짐으로 깨끗한 새 달력과 다이어리를 들고 위안을 얻는다. 새해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금세 머릿속에 들어찬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너무 많은 할 일들 때문에 머리가 복잡하고 겁도 난다. 사실 새해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는데 말이다. 어제 다음의 오늘일 뿐인데, 인간의 사고는 참으로 놀랍다. 하루하루 자체는 딱히 새로울 것이 없는데, 그 경계도 없는 시간에다 말뚝을 박아 일, 월과 해를 나누고 시작과 끝을 정해두었다. 참으로 놀라운 상상력이다. 이러한 정함이 없었다면, 우리 인생은 끝도 없는 ‘뫼비우스의 띠’위에서 시작도 끝도 알 수 없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늘 제자리에 머무는 것에 지나지 않아 그 자체가 비극이다. 계절이 한 바퀴를 돌아 새해를 맞으면서 어제의 실패를 안고서도 희망찬 내일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위대하고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그 희망이 가득해야 할 새해가 희망보다는 무거움으로 다가온다. 송년회를 했는데도 어깨의 짐이 가벼워지지 않고 내일에 대한 고민이 더 커진다. 세상 돌아가는 모양이 예전과 다르고,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 속에 내가 차지할 영역이라고는 한 평 땅덩어리도 안 되는 것 같다. 잘 살아온 것일까,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까. 은퇴가 멀지 않은 경우라면 더 많은 속 깊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닐까. 나는 지금 무엇을 하면 좋을까.


내 인생의 긴 여정을 한눈에 내다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라톤을 할 때처럼 중간중간 마일스톤이 있어서 지금 어느 구간을 지나고 있다고 알려준다면 지금 힘들어도 조금 더 지나면 평탄한 구간이 올 것을 알고 더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마일스톤을 세우는 좋은 방법이 유서를 써보는 일이다. 새해에 유서라니 뜬금없다. 우리 사회는 유서를 쓰는 것 대신 친족 중심의 상속 문화를 가지고 있다. 민법에 떡하니 법정 상속자를 순서대로 정해두었다. 그러니 굳이 유서를 쓰지 않는다. 오히려 유서를 쓰면 ‘저치에게 지금 무슨 일이 있나’로 확대 해석을 한다. 멀쩡한 사람이 곧 죽을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유서를 쓰는 것은 좀 뜬금없다고 여긴다. 사실 우리 선대들 대부분 물려줄 돈이 많지 않았고 부자나 양반집을 빼고는 상속할 것도 없었으니 유서를 쓰지 않는 것이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누구나 집 한 채나 작은 통장 꾸러미라도 남겨 줄 것이 있게 되었고 이제는 잘 물려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볼 때가 되었다.


유서를 써야 하는 이유와 유용함에 대하여

유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유서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갖는 오해가 크다. 흔히 유서는 임종 직전에 내 재산이 누구에게 갈지를 적어놓는 문서라고 생각한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언젠가 다가올 생의 마지막 날을 염두에 두고 쓰는 것은 맞지만, 잘 죽을 것을 준비함과 동시에 남은 시간을 더 잘 살도록 삶을 정리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서의 핵심은 ‘잘 남기는 것’이다. 무엇을 잘 남길 수 있을까?


남겨져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어야 하고, 재산이 아니라 인생이 되어야 한다. 살면서 필요한 돈을 추구하느라 우리들을 정말 소중한 나 자신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한다. 결국 남는 게 돈뿐이고 나에 대한 기록 없이 기억만 남게 된다면 얼마 되지 않아 그 잔상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불편하지만 죽음 앞에 설 때 비로소 우리는 진실해진다.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들을 발라낼 수 있다. 버릴 것들을 잘 버려야 중요한 것들이 챙겨진다. 껍데기는 날아가고 정수만 남는다. ‘잘 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려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는데 유서를 쓰는 일은 참으로 유용하다. 우선, 차분히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다. 나를 객관화해도 좋고, 주관적이라 해도 나에 관한 내 얘기니 괜찮다. 나 자신이 죽음 앞에 있고 현재 내 모습이 마지막이라 생각한다면,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알 수 있게 된다. 평소 수많은 인간관계를 맺고 살지만 정작 내게 소중한 이들은 따로 있다. 사랑하는 가족, 동고동락했던 친구와 동료들, 나를 지지해준 이들,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믿고 도와준 이들, 나와 가깝게 지낸 이들 등등 내 마음이, 그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현재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이 있다. 내가 일군 재산과 아끼던 물건들, 내가 추구했던 가치, 열정을 다해 사랑했던 일들 등등. 이렇게 소중한 것들을 가리다 보면 중요한 것에 대한 우선순위가 생긴다. 평소 소중히 여기고 시간과 열정을 다 기울였다 해도 막상 죽음 앞에서 버려질 것들이라면 우선순위는 아니다. 죽음이라는 거름망에 삶을 올려두고 쥐어짜고 남은 것들이 진짜 내 삶이다. 가장 유용한 깨달음 중의 하나는 그렇게 쥐어짜고 남은 것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내가 평생을 그렇게 힘들게 애썼는데, 남길 것이 고작 집 한 채와 통장 두어 개, 보험이나 연금이라니 참 허망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소중한 사람들이라도 남아 있으면 다행이다. 어쩌면 나는 엉뚱한 곳에 내 일생을 갖다 바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나는 그 많은 시간을 어디에 다 쓴 것일까. 이것을 깨달으면 유서 쓰기의 소기의 목적을 어느 정도 이룬 셈이다.


유서도 유서 나름이다. 좋은 유서는 따로 있다. 그런데 단번에 써지지 않는다. 반복해서 쓰다 보면 더 잘 써지게 된다. 내가 유서를 쓰게 된 것은 직업 경험이다. 그리고 지난해 ‘나는 새해가 되면 유서를 쓴다’는 책을 출간했다. 펀드레이저(fundraiser)라는 직업을 오래 하면서 평범한 기부자들과 부자들을 만나고 기부금과 유산을 받는 동안 돈과 인생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었다. 평생 사업에 매진해 성공한 기업가가 환갑을 앞두고 암에 걸리고 수술대에 누우면서 고백한 이야기, 유학을 앞둔 딸을 갑작스러운 사고사로 떠나보낸 부모의 이야기, 나이가 들어서야 잘못된 길에 들어선 자식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이야기, 평생 봉직한 직장을 떠나면서 남기는 이야기 등 그 속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돈과 인생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돈과 인생에 대한 바른 원칙 없이 ‘돈을 버는 것’만이 성공의 기준이 되었을 때 그 부작용은 매우 컸다. 유서를 쓰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삶을 한 번 훑어서 정리해 보면서 앞으로 남은 시간이 더 가치 있고 소중하게 살아지도록 하는 재설계 과정이다. 정말 남겨져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나의 뿌리와 삶의 이야기이다.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내 부모와 형제에 대하여, 수많은 고난과 곡절 중에도 지키고 싶었던 것에 대하여, 타이밍을 놓쳐버린 사죄할 일들이나 간직하고 싶은 추억들에 대하여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말할 틈을 찾지 못해 미루어 둔 모든 것들이 내 마음에는 살아있다. 그런데 남기지 않으면 사라지고 만다.


유서를 잘 쓰는 방법

유서를 쓰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일기처럼 가볍게 나의 글을 써보는 것이다. 먼저, 내가 누구인지를 적어보자. 가족관계, 친구와 직장, 신앙공동체 등에서 내가 누구로 살고 있는지 적는다. 나의 성장기와 연애와 결혼, 육아와 직업, 사회봉사에 대해서도 적어볼 수 있다. 또 내가 도전하고 이루고자 했던 것들과 성취한 것들, 내가 기여해 온 사회적 역할들도 적어 본다. 내가 죽기 직전에 겪을 수도 있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배우자를 위한 부탁, 장기기증 서약이나 연명치료에 대한 결정, 요양생활에 대한 의견, 반려동물에 대한 뒤처리, 내가 원하는 장례 방식, 장례식에 꼭 부르고 싶은 사람들 등에 대해서도 적는다. 이 정도 적으면 절반 정도 마무리가 된다. 그다음에는, 현재 내가 가진 것들의 목록과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나누어 줄지의 목록을 적는다. 재산의 종류와 금액, 그리고 소중한 물건들을 분류하고 각각을 누구에게 줄지에 대해서도 정해야 한다. 사실 이 대목에서는 생각이 많아진다. 남길 것이 별로 없는 것은 차라리 괜찮다. 은퇴가 멀지 않았는데 노후준비가 안되었거나, 재산상태가 복잡하거나 관리가 제대로 안된 경우, 부채가 많은 경우,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소비 패턴이 못 미덥거나 가정생활이 불안정할 때는 뒤따라 오는 고민이 더 커진다. 유서를 쓰다 보면 이렇게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고민들이 툭툭 튀어나오기 때문에 유서를 일찍부터 써보는 것이 좋다. 현재 내 삶을 가볍게 진단해 보고 이후에 어떻게 더 잘 살 수 있을지 원하는 방향을 정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내 인생의 의미를 적어본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나 자신에게, 가족에게, 타인에게 어떤 의미 있는 존재였는지 가급적 선명하게 적자. 이 문구는 내 묘비에 기록되어도 좋은 글이다. 그런데 만약 여태껏 살아온 중에 내세울 의미가 크지 않다고 느낀다면,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또는 사회적 대의를 위해 내가 남길 것의 일부를 사회에 기부함으로 남겨보자. 이제 마지막으로 내가 남기고 싶은 마지막 말을 적어보자. 스크루지 영감처럼 자기만을 위해 지독히 애쓰다가 죽은 사람으로 남기보다는 가족들과 사회에도 헌신적이고 사랑이 넘쳤던 사람으로 살았다는 기록이 우리 인생의 엔딩 스토리가 되면 참 좋겠다.



결국 유서를 쓰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인생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언젠가 다가올 그날에 소중한 이들과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금부터 찬찬히 준비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내가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마블 영화 속 티노스의 핑거스냅 한 방에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 같은 모양새는 정말 별로다. 언제가 내 마지막 날일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떠나는 이에게나 보내는 이에게나 더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겨질 수 있도록 새해에는 유서를 한 번 써보자!


코리안리(RE: INSURANCE) 2022.1st(통권 21호)_와이드뷰 코너 기고문

http://webzine.koreanre.kr/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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