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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신애 Mar 04. 2023

튀르키예 지진 성금으로 보는 재난기부금의 진실

[모금하는사람들] 


느닷없이 들이닥친 2월의 비극. 튀르키예 지진 피해 현장을 담은 사진과 영상 앞에 무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린 딸의 손을 잡은 채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한숨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집을 잃고, 이젠 추위를 피할 곳도 잠을 청할 수 있는 공간도 없는 이들에게 과연 ‘다행이다, 희망을 품자’는 말을 꺼낼 수 있을까. 우리는 허망함으로, 그리고 미안함으로 조용히 입을 닫는다. 그 와중에도 생명을 위한 시간 싸움은 계속된다. 무너진 건물 잔해를 치워가는 동안 기적적으로 살아있는 이들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는 한 줄기 희망이란 것을 느끼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돕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고, 그것이 작은 행동으로 이어져 기부하게 된다.


지진 피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국제구호 NGO의 사무실은 비상 체계로 돌아간다. 지진 발생 6시간, 12시간, 24시간, 48시간, 7일 등 시간 흐름에 따른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조치에 대해 수시 회의가 진행된다. 지진의 강도와 피해 정도가 심할 수록 재난 카테고리 등급이 올라간다. NGO들은 현지 소식을 수시로 모니터링하면서 가장 필요한 조치를 선별한다. 우선 보유하고 있던 긴급지원금 예산에서 일차적으로 보낼 수 있는 지원금 규모를 결정하고 국제본부로 송금한다. 재난발생국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재난지원센터의 전문인력과 자원공급 물류창고를 통해 어떤 경로로 어떻게 지원할지, 타 단체의 네트워크와 현지 사업 강점을 파악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민간 국제구호단체들이 각자 따로 일하고 각자 따로 모금하는 것 같지만, 현지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 어린이를 위해, 부상자를 위해, 의료지원을 위해 여러 방식으로 공동전선을 펼친다. 누가 더 많이 지원했느냐는 식의 자랑은 중요하지 않다.


세계 각 국가의 정부들은 외교 프로토콜에 따라 재난국과 국제기구의 요청을 받으면 재난지원을 위한 대책 회의를 구성하고 국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한다. 재난구호팀과 의료지원팀, 필요시 군인과 부대 및 지원동력 등을 구성해서 현지에 파견하고 민간 지원책과의 공조를 위한 민관 공동대책회의를 구성한다. 인도주의, 생명을 구하고 보호하는 일에는 국경도, 여야도, 민간과 정부의 벽도 허물어지게 된다.


긴급구호 모금 활동으로 모인 재난 성금의 대부분은 전문기관들에 의해 재난지원 프로토콜에 따라 현지로 전달된다. 이렇게 봇물 터지듯 모금 활동이 활성화되다보면 간혹 물을 흐리는 사기 행각들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행정안전부에서는 모금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부금품법에 의한 기부금품 모집등록을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한다. 한편 모집등록 없이 모금하거나 꼼수를 쓰는 기관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함으로써 국민들의 선량한 참여와 기부를 독려하려고 애쓴다.


재난은 한순간에 일어나지만, 재난 복구는 긴 시간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재난 발생 직후 며칠간은 구조와 피해 축소, 재난피해자와 피해지역 돌봄에 집중한다.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공급되어야 할 물자가 갑자기 필요해지기 때문에 초기 상황은 긴급 물량 공급이 엄청나게 이루어져야 한다. 물도, 식량도, 숙소도, 옷가지도 모두 다 부족해서 대량 물자 공급이 필요하다. 이후에는 제대로 된 돌봄이 필요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온 사람들, 가족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한 사람들, 신체와 감각을 상실하고 불구가 되는 사람들, 재산과 집과 가족 등 모든 기반을 잃어버린 사람들, 놀이터와 학교와 병원과 동네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트라우마와 절망이다. 장기간에 걸쳐서 심리치료와 함께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조금씩 조성하고 되찾아주는 노력을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회복할 수는 없지만 무너진 건물들의 잔재들을 걷어내고, 새로운 건물을 짓고 일터, 학교, 병원, 생활 커뮤니티 등을 온전히 재건하고 복구하려면 짧게는 3~4년, 길게는 10~15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


돕는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내가 하는 기부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시시콜콜 현장의 이야기를 캐물으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원하는 단체가 어떤 모양과 형식으로 재난 현장을 지원하고 일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기다려줄 수 있고 오래도록 후원할 수 있다. 모금단체들은 단지 홍보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대충이라도 설명해야 한다. 만약 기부자의 질문에 답변할 수 없다면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2023.2.20.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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